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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예배와 주일 예배

안식일 예배와 주일 예배


글: 안환 목사


문제제기


최근에 토요일 안식일 예배와 일요일 주일 예배에 대한 관심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관심의 요점은 이것이다. 우리는 구약의 4계명대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주일을 지켜야 하는가? 토요일 안식일 예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구약의 4계명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이 있고, 일요일은 콘스탄틴 황제가 일요일을 휴일로 제정하면서 태양 숭배일을 기독교에서 예배로 지키게 했기에 성경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안식일 논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그 역사가 꽤 깊다. 예수님 당시로 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논쟁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안식일을 신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1. 안식일의 기원


안식일이란 유대인들이 안식하고(일을 하지 않고) 예배드리는 날을 의미한다. 여기서 ‘안식’이라는 용어의 성경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자. ‘안식’은 성경에서 ‘쉰다’는 개념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않고 쉬는 날로 인식해 왔다. 구약시대부터 신약시대까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강조되어 오던 개념이다. 그러나 ‘안식’의 의미는 단순히 ‘쉰다’는 의미로만 해석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연관해서 봐야 할 내용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마지막 날에 ‘안식’하셨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의 의미도 ‘쉰다’는 표현이지만,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것이 단순히 인간이 안식한다는 것과는 다른 내용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지만 인간이 노동을 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안식’은 인간의 ‘쉼’과는 다른 것이다.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만드신 모든 곳을 보시고 만족하시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과 연관을 지을 수 있다. 창세기에서의 안식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마치신 후에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이광호, <안식과 주일: 언약적 의미와 영광의 실천적 주일>) 그러나 이것이 안식일 준수를 법제화 한 것은 아니다.(양용의, <예수님과 안식일 그리고 주일>, p32-36)


그 후에 출애굽기 20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즉 그의 백성들에게 안식할 것을 명하셨다. 하나님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명령하신다.(출 20:8-11) 신명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속하신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신다.(신 5장)


안식일이 다른 날과 구별된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범죄함으로 인해 가리게 된 후에 구별된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다.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창조섭리와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감사하며, 찬양하며, 기억하고 예배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언약의 표이며, 언약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장치이다.(성기문, <안식일 논쟁: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 결과로 안식일을 어긴 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자로 간주되어 사형에 처해졌다.(출 31:12-17)


그 외에도 안식일의 규정과 특징에 대해서는 구약성경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를 통해서 볼때 안식일은 거룩성과 그 날이 하나님의 영광과 언약을 기억하기 위해서 제정되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특별한 제사와 축제가 함께 되었다. (양용의, 같은 책 p67)


2. 안식일의 의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안식일의 의의는 하나님 자신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과 인간에게 주어질 축복(구원)에 목적이 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스스로 영광을 받으시므로, 인간이 다른 목적으로 안식일을 보내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찬양하는 데 사용하게 한다. 그 축복으로 인간은 쉼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이정현, <성도와 주일성수>)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안식일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인자가 안식일에 주인’(마 12:8)이라고 하셨다. 예수님 시대에 많은 안식일 논쟁의 중심에는 늘 예수님이 계셨다.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던 제자들,(마 12:1-8) 안식일에 손마른 사람을 고치신 일,(막3:1-6) 그리고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일(요 5) 등등. 이 모든 일은 안식일의 주인이 누구이신지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위함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안식일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그 형식만을 지키며 살고 있었다. 안식일 하루를 지키기 위해 많은 율법을 만들어서 그것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전부라고 여겼다. 그것이 언약의 성취요 완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안식일은 창조의 완성을 축하하는 날이다. 엿새 동안의 창조의 모든 일들이 완전히 이루어져서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축제의 날이다. 다만 인간의 범죄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후에 인간은 참안식을 얻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안식일의 형식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이것이 유대인의 모습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안식일 명령은 하나님의 영광을 기억하고, 그분의 구속하심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날이다. 그 때 비로소 인간은 참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은 태초의 하나님이 누리셨던 창조의 완성을 기뻐하며 영광을 받으셨던 것을 기뻐하며, 종말에 우리에게 올 영원한 안식에 대한 언약을 기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처럼, 종말에 이루어질 새창조를 고대하는 것이다. 인간의 죄로 인해서 고장난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심으로 다시 회복되는, 인간의 죄가 해결되고 창조와 완전한 충만이 회복되는 때, 그때를 기다리며 안식을 누리라는 명령이다.(김세윤, <안식일에서 주일 성수까지>)


안식일은 단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날이 아니라 ‘생업’을 중단하고, 나만을 위해 살던 모습에서 벗어나서 나의 모든 삶의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예배하는 날이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나아가서 온전한 관계의 회복을 이루는 날이다. 이것이 진정한 안식일을 지킨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파괴되고 고장난 것을 스스로는 결코 회복할 수 없는 율법을 완성시키심으로 진정한 안식일의 주인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사건이다. 불완전한 율법의 마침이 되심으로 이제는 더이상 율법의 매임에 얽매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으로 온전한 회복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안식일의 근본 정신인 것이다.


3. 안식일과 주일의 관계


그러면 초대 교회가 세워진 이후에는 안식일과 주일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가?


예수시대의 유대교는 안식일의 수많은 규정들을 확대하고 문자적 준수를 강조한다.(양용의, 같은 책 p77) 이것은 안식일의 근본적인 의의인 창조의 완성에 대한 축제와 언약에 대한 기억의 의미를 많이 퇴색시켰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신약은 안식일의 주인이 그리스도라는 이해가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은 구약의 내용과 상반되는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구약에서 말하고자 하는 안식일의 근본적인 의미에 대해서 더욱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전하여 주는 안식일의 원의미에 대해서 불편한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의 관심은 ‘어떻게 안식일을 지킬것인가?’이었고, 예수님의 관심은 ‘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에 있었기 때문이다.(양용의, 같은 책 p365)


예수님 시대부터 있어온 안식일 논쟁은 초대교회가 세워진 후에는 안식일과 주일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의 문제로 남는다. 과연 유대교가 지켜온 안식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예배하는 주일과 어떠한 관계를 맺느냐의 문제이다.


초대교회의 기록을 담고 있는 사도행전에 보면 기독교인들은 안식일을 여전히 지킨 것으로 보인다.(송광택, <역사적 관점에서 본 주일신학>) 그렇다고 안식일만 지킨 것은 아니다. 안식 후 첫날에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며 정기모임을 가졌다.(행 2:46; 20:7, 11) 주님이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보이실 때(요 20:19)를 기억하며 모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님이 안식 후 첫날(일요일)에 부활하셨다는 역사적 확증이 있을지라도 그것만으로 해서 주일의 기원이 되어서 주일 모임이 전통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성기문, <안식일 논쟁>)


다만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던 초대교인들은 유대인으로서 안식일 예배를 드리고, 후에 따로 기독교인들끼리 모여서 안식 후 첫날에 모임을 병행하며 가졌던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인 유대교의 안식일 모임과 차별성을 두려고 안식 후 첫날에 모임을 가졌다. 그러므로 안식 후 첫날(일요일)이 정기적인 모임으로 고정되어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주로 모이는 이방지역의 교회는 상황이 달랐다. 유대인이 아니기에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믿는 이유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이 그들이 모이는 더욱 중요한 이유였다. 사도 바울도 이 부분에 대해서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하기를 ‘날과 달과 절기와 해’에 대해 언급하며 이것을 지키는 것은 바울이 가르친 것을 헛것이 되게 한다고 말한다.(갈 4:10) 여기서 언급한 율법적인 날들은 안식일과 유월절과 희년들을 언급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에게 걸리는 것이 되지 않게 하라는 당부이다. 또 골로새 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라고 언급한다. 구약의 율법은 그림자와 같은 것인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완성이 되어 실체를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것을 조심하여 헛된 일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한다.


바울의 편지에서 보듯이 이방인들은 오히려 유대인들과는 다르게 안식일에 대해서는 덜 중요하게 여기며 안식후 첫날 모임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방인들에게 있어서는 주일예배의 모임이 그들의 신앙에 더욱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1-2세기, 교회 교부들에 의해서 다스려지던 때에는 유대인의 안식일 준수와 기독교인의 주일에 대한 차별성이 점차 커져 가기 시작한다. 이후 교회 교부들의 글에서 안식일적인 개념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나타난다. (양용의, 같은 책 p361-362) 그 이유는 신약시대에 나타나는 율법주의적 성향이 극심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이와 구별된 기독교모임을 위해서 안식일의 준수가 정죄되고, 주의 날(안식 후 첫날)이 그 대안으로 강조되었다.


소아시아의 총독을 지낸 플라니가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서신에 보면(플라니 서신, 10:96) 황제의 칙령에 따라 모든 일요일 저녁 집회를 금지하고 기독교인들도 저녁식사로 모이는 것을 그만두었다고 보고한다 (성기문, <안식일 논쟁>) 이후에 일요일 저녁 집회는 사라지고, 결과적으로는 일요일 아침 집회로 모이게 되었다. (유광덕, <교회사 밖에서 만나는 재미있는 교회사 이야기>, p216-217) 이후에 콘스탄틴 대제의 칙령(321년)에 의해서 일요일이 휴일로 공포가 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기독교인들은 예배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유세비유스의 시편 91편 주석에 의하면, 예배적인 측면에서 옮겨진 것이지 안식(쉼)의 측면은 아니었다. 휴일이 되고 예배를 드릴 수는 있었어도 여전히 일에 대한 부담은 있었다. 일요일에 쉬는 안식의 개념까지 강조되면서 지켜진 것은 6세기 이후의 일이다.(양용의, 같은 책 p380)


이상의 내용에서 우리는 구약적 안식일, 유대교적 안식일, 기독교적인 주일의 개념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지금 현재 우리가 지키고 있는 주일은 청교도적인 주일성수주의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어느 부분에서는 성경적인 안식일의 근본 정신과 바울이 말하는 안식일의 개념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4. 결론


처음의 문제제기로 돌아가서, 우리는 토요일 안식일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아니면 일요일 주일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해보자.


첫째, 하나님이 안식일을 만드신 근본정신은 창조의 완성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목적과 구원하신 것에 대한 언약을 기억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재창조의 완성을 이루셨고,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언약을 주셨다.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근본정신을 기억하며 축제의 날로 만드는 것은 주일이 더 합당하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구약의 안식일(토요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근본정신은 잊어버린 채 형식만을 붙잡으려는 노력에 불과하다. 오히려 주일날 드리는 예배가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과 그 의미를 기억하고 기념하기에 맞는 날이다.


초대교회부터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시작된 주일예배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 물론 일요일 한 날만을 예배의 날로 정하고 나머지 6일을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 없이 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7일 모두가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날이어야 할 것이다.


둘째, 안식일과 주일은 전혀 다른 의미의 날이다. 안식일이 오늘날에 와서 주일로 변한 것이 아니다. 여전히 안식일은 토요일이다. 다만 중세를 지나면서 주일을 마치 안식일처럼 지켜야 한다는 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주일은 안식일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지켜지는 날이다.


셋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일요일이 휴일로 지정되면서 태양신의 숭배일을 그리스도인들이 지키게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미 사도행전 시대부터 안식후 첫날인 주일에 그리스도를 기념하며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사도바울에 의해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들은 오히려 안식일보다는 주일에만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태양신을 숭배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넷째, 주일을 구약시대의 안식일처럼 지켜야 한다는 율법적인 주장은 주일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생각이다. 물론 7일 가운데 일요일만이 거룩한 날은 아니다. 날과 날들 사이에 차이는 없다. 모든 날들이 주님의 날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의미는 우리에게 속한 모든 날이 그리스도께 속한 날이어야 한다는 의미이지, 우리가 그리스도의 재창조와 구속의 사역을 기념하고, 예배하는 주일예배를 부정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하루라도 구별하여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나머지 6일을 그리스도께 속한 날로 드리기에 도움이 된다. 우리가 하루를 구별하여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주일예배는 축제의 예배와 기쁨과 감사의 예배이지, 구약의 안식일처럼 율법적인 의미에서 지켜져야 하는 날은 아니다. (지면의 제약으로 인해 충분한 논의를 하지 못했다. 본문에 삽입된 참고문헌을 참조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