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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독 365_느헤미야서 읽기

성경통독 365_느헤미야서 읽기


365 성경통독 느헤미야서 읽기


느헤미야서는 에스라서의 이야기를 이어받아 유다 포로들이 바벨론의 속박에서 풀려나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유다 땅에서 여호와께 드리는 예배를 재건한 일을 이야기한다. 느헤미야서는 느헤미야가 수많은 좌절과 곤경을 겸으면서도 그것들을 헤쳐 나간 일을 서술하고 있다. 느헤미야도 에스라처럼 바사 제국에서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이다.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왔지만 느헤미야는 바벨론에서 동쪽으로 300킬로미터쯤 떨어진 대도시 수산에서 왔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가기로 결심한 때는 주전 445년 봄이었을 것이다. 이 해는 에스라가 예루살램으로 간 때로부터 약 13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예루살렘 귀환과 성곽 건축 (1:1-7:73)

  •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소식 청취 (1:1-11)
  • 느헤미야의 청원 승인 (2:1-9)
  • 예루살렘 성곽 수축 공사 완성 (2:10-7:4)
  • 바벨론에서의 귀환자의 명단 (7:5-73)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종교개혁 (8:1-13:31)

  • 율법책 낭독 (8:1-18)
  • 회개의 모임(9:1-37)
  • 개혁을 위한 서약 (9:38-10:39)
  • 거주지 배정(11:1-36)
  • 예루살렘 성곽 봉헌 (12:1-47)
  • 성별과 성전 청결 (13:1-31)



01 02 03장


01장 |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소식 청취


느헤미야서는 우리에게 여호와께서 거룩한 성올 튼튼한 요새로 바꿀 수 있는 구속자(redeemer)를 어떻게 세우시는지 말해 준다. 이 일올 위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느헤미야는 바사 궁정의 높은 자리에 있는 신하였다. 물론 그가 포로 중에 있는 유대인으로서 유일하게 궁정에서 높은 지위를 얻는데 성공한 자만은 아니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그리고 스룹바벨이나 모르드개역시 그와 마찬가지의 성공올 거둔 자들이었다.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의 성벽올 다시 쌓도록 조처하시기 위해 왕의 술잔올 따르는 이 관리를 택하였다. 느헤미야는 그의 형제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이 페허가 된 상황을 들었다. 그때에 그는 간절하고 깊은 기도로써 여호와께 자신의 심정올 토로하였다(느 1:4-11). 느헤미야는 먼저 여호와께서 주시는 경고를 생각했다(8). 그러나 그는 또한 재빨리 여호와의 약속올 언급(9)했다(신 30:1-5).  


[신명기 30:1-5] 1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2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4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조상들이 차지한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네게 다시 그것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너를 네 조상들보다 더 번성하게 하실 것이며


느헤미야의 기도는 모세의 율법, 특히 신명기에 있는 말로서 시작되었다'. 10절의 “주께서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과 같은 구절을 통해 우리는 아주 오랜 옛날에 이스라엘이 사용했던 말을 기억해 낼 수 있다(구속하신 이라는 말의 실제 의미는 도로 가지고오다, 되사다 라는 뜻).


포로 2-3세대인 그가 이처럼 하나님의 율법에 정통하고 그것을 근거로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통찰하고 해석하는 영적분별력을 가진 것은 마치 에스라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하나님은 가장 어두운 시기에 소리없이 자기 백성들을 이끌어 낼 경건한 지도자를 친히 예비하신다.


느헤미야는 포로 생활에서의 귀환이 실제로 두 번째의 출얘굽올 의미한다는 것올 알고 있었다. 단지 이번에는 애굽에서가 아닌 바벨론에서의 귀환이었다. 그들은 그들과 “심히 가까이 있는"(신 30:14)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만 했다. 그들은 회개하고 언약의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했다. 느혜미야가 죄를 고백한 것은 그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얼마 있지 않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겸손함을 다해 그들 조상의 하나님의 성읍인 예루살렘 성의 완전한 회복을 구해야만 했다.


느헤미야는 메시아의 기업과 구원 그리고 언약의 성취를 붙잡으려고 분투하였다. 우리는 그의 용감한 일에 대해 읽을 때 이러한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느헤미야의 이야기는 바사 왕의 겨울 궁전에서부터 시작되는 모험척 이야기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이 믿음으로 행동한 것에 대한 기록이다.



02장 | 느헤미야의 청원 승인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은 술 관원인 느헤미야가 수심이 깊음을 보고 그 이유를 물으며 예루살렘 성 재건을 허락한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한 것은 그가 예루살렘 성벽에 관하여 들은 보고 때문이었던 것이 분명하다(1:1-11) 이 보고는 십중팔구 사마리아인들의 선동으로 말미암아 성벽 공사를 중단한 일(스 4:7-23)을 언급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적자 산발랏과 도비야가 근심하게 된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이르러 삼 일이 지나 몇 사람을 데리고 비밀리에 예루살렘 성벽 야간 시찰을 나간다. 무너진 성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 재건에 대한 계획을 제사장들과 귀족들과 방백들에게 고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본 것올 그들에게 알리고 왕의 태도가 바뀌었음을 말해 주었다.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이 일 가운데 분명히 보였다. 그리하여 성벽을 계속 재건하려는 결정은 즉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물론 이 일은 예루살렘 주변에 살고 있는 민족의 지도자들에게 격렬한 미움올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유대인의 성벽 재건 계획을 반란으로 해석하고 그것올 방해하는 음모를 꾸였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나타나 성 재건을 방해한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저항에 부딪쳤다고 해서 그 자신이 해야 할 일올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는 담대하게 이렇게 주장하였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도 없다"(20).



03장 | 성벽재건이 시작되다


느헤미야 3장에는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된 사실이 요약되어 있다.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기사는 성벽 북쪽에 있는 ‘양문’에서부터 시작되어 시계의 반대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산발릿은 느헤미야의 계획에 대적하였지만 결국 성벽과 성문 재건 공사가 시작된다.  말씀은 예루살렘 성의 열 개 성문과 함께 그 성문 재건을 책임진 사람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 수리에는 적절한 사람들이 투입되었으며 정해진 한 문을 기점으로 그리고 정해진 다른 한 문을 중간지점으로 하여 성벽공사가 진행되었다. 제사장, 레위인, 상인, 그리고 평민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공사에 참여했다. 

공사지역에 따른 투입인원과 공사구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성벽과 성문의 상태와 봉사자의 여력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어떤 봉사자는 두 구간공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반면에 5절에 언급된 드고아 귀족들은 공사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느헤미야 3장을 통해서 예루살렘의 성벽과 성문의 수리공사는 협력하여 이루어진 결과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 선한 일은 탁월한 지도자도 필요하지만 그와 마음으로 동역할 동지들도 필요하다. 교회는 결코 카리스마틱한 지도자 사람의 역량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고자 하는 동역자들의 함께 함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에베소서 2:20-22]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04 05 06 07장


04-05장

4장과 5장은 하나님을 향한 느헤미야의 언약적 충성이 귀환 공동체가 대내외적인 곤경 가운데서도 그분 뜻을 이루어 가는 원동력이 됨을 보여준다. 대적의 압박(4장)과 이방문화에 젖어든 귀환 공동체 지도자들(5장)의 근원적인 문제를 직시한 느헤미야는 그러한 상횡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는 탁월한 해법을 공동체에게 제시하고 실행에 옮긴다


04장 | 외부적인 문제

성벽과 성문의 재건에 반대하는 외부인들의 움직임이 점차 커져 간다. 예루살렘이 재건되면 그 대적이 될 수 있는 이들의 반대가 특히 심하였다. 느헤미야는 재건 공사를 훼방하려는 반대자들의 계획올 알아차리고 무장 경비병들올 세워 반대자들의 습격에 대비한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일에 있어 반대와 조롱은 항상 있어왔고 또 있을 것이다. 눈 앞의 현실에 사로잡혀 두려워 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할 때(9) 하나님의 도움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특별히 눈을 열어 하나님의 도우시는 선하신 손길을 볼수 있고 알아채는 것과 선한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4-5, 느헤미야의 기도)


[열왕기하 6:16-17]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야고보서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If any of you lacks wisdom, let him ask God, who gives generously to all without reproach, and it will be given him.



05장 | 내부적인 문제

4장에 나타난 외부적인 환경의 어려움 외에 역시 내부적인 어려움도 있었다. 성벽 재건을 계속하면서 반대자들의 기습을 방비하는 일은 고된 노동을 요구하였고 이로 인해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회적인 문제와 악습(abuses)이었다. 먹을 곡식이 부족한 상황에서서 어떤 유대인들은 가난한 형제의 저당잡힌 땅올 취하였고 형제들에게 빌려준 돈의 이자를 지불하도록 부당하게 강요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유대인 노예를 매매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 어려운 상황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챙긴 자들에게 그들이 받은 이자 그리고 담보로 잡은 재산과 물건을 돌려주겠다 는 맹세를 요구하여 기어이 그 약속을 받아낸다(6-13). 느헤미야는 자신이 이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 주고자, 진수성찬을 맛볼 수 있는 바사 총독의전통적 권리를 포기한다 느헤미야는 동포의 곤궁한 처지에 동참하려 했던 것이다.


느헤미야의 이러한 단호한 조치는 단순한 인도주의적 조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동족의 신앙과 삶에 대한 선지자적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리더는 공동체의 외부적인 문제와 내부적인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의 시각으로 살펴 단호하게 해결하는 통찰력과 결단이 필요하다.


[출애굽기 22:25-26] 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레위기 25:36-37] 36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37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 


[잠언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Whoever oppresses a poor man insults his Maker, but he who is generous to the needy honors him.


[디모데전서 6:17-19]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06장 | 성벽재건을 마치다.


성벽 재건을 반대하는 움직임은 이제 다른 곳에서 이어진다. 산발랏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요새삼아 아닥사스다에게 반역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헛소문을 퍼뜨린다. 또한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나 느헤미야에게 목숨을 위해 성전에 관한 율법을 어기도록 권면한다. 느헤미야는 제사장이 아니었다. 그는 아마 환관(eunuch)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는 법을 어기면서 성전에 들어가 성전올 더럽힐 수는 없었던 것이다. 

느헤미야는 두렵고 불리한 소문들과 회유에 괘념치 않고 성벽 재건을 밀어붙인다. 여기서도 그의 기도와 결단이 함께 나온다.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을 신뢰하는 중요한 표지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책망과 비난이 아닌 이상 낙심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도 없고 그것이 하나님의 칭찬이 아닌 이상 우쭐할 필요도 없음을 느헤미야는 그의 섬김을 통해 보여주는 사람이다.


[느헤미야 6:7]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O God, strengthen my hands.


[느헤미야 6: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주전 445년 10월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었다. 성벽 재건에는 52일이 걸렸다(6:15-19). 


[참조 01]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관원’이었다(1:11). 그러나 구약성경의 헬라어번역인 70인역은 이를 ‘환관(내시)”로 번역하고 있다. 그가 환관이었는지의 여부는 분명치 않다. 다만 그가 왕을 아주 가까이에 모실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었던 것만온 분명하다.


[참조 02]

느혜미야는 주의 백성올 인도하시는 변힘없는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한 빛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유혹을 면할 수 있었다. 스마야로 인한 사건에서 우리는 느혜미야가 그 선지자의 말올 다른 예언들의 기준에 비교하여 점검해 볼만큼 충분히 알고 있었음을 살펴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선지자의 망토를 걸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순수한 예언의 말씀올 말한다고 볼 수는 없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요새 안에서 조차도 대적이 없는지를 경계해야만 한다[반더발 성경연구, 코넬리우스 반더발, 550] 





07장 | 돌아온 포로들의 명단


그 모든 방해와 장애에도 불구하고 성벽 재건 공사는 만 52일 만에 완성되었다. 7장에서 우리는 느헤미야가 증가하는 인구를 보살피기 위해 조처를 취한 것을 보게 된다. 종교적인 절기들도 충실하게 지켜 행하였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완성하고 성문을 달고 지도자들을 세운다. 여기서도 동역과 협력의 자세가 나타난다.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의 리더의 중요한 자질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구약과 신약, 그리고 오늘날에도 동일하다. 


그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기습공격에 대비하여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성문을 열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 결과 적이 들키지 않고 성안을 미리 정탐하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이제 예루살렘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성 내부 특히 주민들이 살 집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느헤미야는 주택재건의 사전 단계로서 성안에 사는 사람들을 확인하기로 한다. 


그런데 5절에서 알수 있듯이 이 일은 하나님의 그의 마음을 감동하셔서(my God put it into my heart ) 결심하게 된 일이다. 마음 안에 일어나는 모든 감동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은 아니라도 어떤 감동은 하나님으로 온 것임을 하나님의 사람들은 알 수 있다.


느헤미야는 거주자 등록 과정에서 스룹바벨과 함께 돌아온 포로들을 만나게 된다(7:4-72; 2:1-70 참조). 에스라서의 명단과 느헤미야서의 명단 사이에는 소소한 차이점이 있다. 이것은 명단이 본디 통일한 자료를 인용하였으나, 자료 속에는 조금씩 달리 해석될 있는 약자나 부자 그리고 부적격한 부정한 자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이것을 걸러내었다.



08 09 10장



08장 

구약에서, 신앙부홍이나 종교개혁은 흔히 사람들에게 율법책을 읽어 주는 것과 연관 되어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바벨론 포로기 이전인 요시야 왕 시대에도 사람들 앞에서 ‘율법책’ 을 읽은 일이 있었는데(왕하 23장) 이것 역시 종교개혁과 연관되어 있었다. 이제 다시 여기서 에스라가 똑같은 율법책을 읽고 있다 본문이 말하는 ‘읽기’는 단순히 사람들 앞에서 그 율법을 읽은 행위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그 ‘읽기’는 분명히 에스라와 한 무리의 레위 사람들이 그 율법의 의미와 그것이 암시하는 바를 상세히 설명한 것까지 포함하는 말이대(8:1-18). 사람들은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8:12) 알게 되었다. 


[느헤미야 8:8-9] 8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헤미야 8: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because they had understood the words that were declared to them)


잊혀진 하나님의 말씀을 재발견하고 다시 귀를 기울이고 풀어 가르쳐진 메시지에 자신을 비춰보고 깨닫는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 안에 회복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제받지 못한 마음은 죄로 기울어질수 밖에 없고 악인의 꾀, 죄인들의 길, 오만한 자들의 자리로 갈수 밖에 없다는 다윗의 고백을 회복한 것이다(시편 1:-2)


[시편 1:1-3]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but his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on his law he meditates day and night)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건물성전만 재건되고 성벽만 새롭게 세워지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성전인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게 채워져야 한다. (골로새서 3:16) 그래야 우리 안에 서로 가르치며 권면하는 일들이 회복되고 찬양이 터져나오고 감사가 회복된다. 우리 신앙의 좋은 습관을 재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는 일이야 말로 신앙회복의 길이다.


[골로새서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런점에서 먼저 말씀을 읽고 연구하여 준행하며 가르치기로 결심하는 직분자와 리더의 존재는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말씀의 직분자인 목사뿐만 아니라 가정과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읽고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는 평신도 성경교사들이 여전히 많이 필요하다.


[에스라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For Ezra had devoted himself to the study and observance of the Law of the LORD, and to teaching its decrees and laws in Israel.




09장 


8장의 말씀사경회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에 감동을 받아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여호와께 예배하게 된다(9: 1-3). 특히 4절부터 이어지는 기도는 말씀에 대한 반응에서 시작된 것이다. 참된 기도는 말씀에 깊이 감동된 사람의 심장으로부터 시작되어 그들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온다


여기서 백성들이 올린 광범위한 기도 내용은 상세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5-8). 이 기도는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하여 출애굽과 광야유랑, 가나안정복을 거쳐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개관하고 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이 자비로우시며 당신의 약속에 철저히 신실하시다는 점을 강력하게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이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계속하여 죄를 범하였음을 숨김없이 철저하게 자복하고 있다.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거늘, 그 백성들은 그분을 떠나 반역하고 불순종하였다는 것을 자백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면 하나님 편에 서는 일과 하나님을 대적하며 불순종하며 사는 일의 극명한 차이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 편에 서게 되기를, 그렇지 못한 시간들에 대한 슬픔과 회개가 수반된다.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고 말씀의 통제를 받으며 눈과 마음이 열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다시 꺠닫게 되면 그것이 가능해진다. 마치 시편 1편처럼.


[시편 1:4-6]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10장


10장 앞부분은 이 인을 친 자틀의 명단이다(1 ~27). 명단에 빠진 이들도 다 모였다. 모여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단하고 하나님 앞에 서약한다(28~39). 이방인과 결혼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킬 것을 약속한다. 성전이 엉망으로 방치되지 않도록 할 것을 서약한다. 이를 위해 성전세를 내고 성전 직무를 맡은 제사장틀과 레위인들을 돌볼 것을 서약한다. 이렇게 자신들의 죄를 살핀 백성의 지도자들은 개혁과 갱신에 헌신할 것을 합의하고 이를 글로 기록한다(9:39-10:27). 


이 합의 속에는 중요한 헌신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이방인들과 통혼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들어있었다(30). 이방인들과 통혼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이방인들과 계속하여 통혼한 유다 사람들을 이전에도 혹독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던 에스라에겐 중요한 관심사였다(스 9:1-15). 하지만 이 순종 서약의 범위는 이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그 서약 속에는 성전과 그곳에서 봉사하는 자들을 부양하는 데 헌신하겠다는 다짐까지 포함되어있었다.(31-39),


가슴만 뜨거워져서는 안된다. 뜨거워진 가슴과 고백을 지켜줄 성벽과 같은 새로운 습관의 형성과 결단이 요청된다. 이들이 서약하고 맹세한 것은 이들의 새로워진 심령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가겠다는 실질적인 고백과 결단 그리고 실천의 표현이다.


제임스 K. A. 스미스는 그의 습관이 영성이다”(spiritual power of habits)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훈련을 반복적으로 하여 새로운 습관 형성되게 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갈망, 말씀으로 새롭게 일어난 경건한 욕망이 지속되고 그것을 추구하려면 무엇보다 습관의 형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어떤 습관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의식적으로 반복할 것인가? 아는 것이 많다고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사는대로 생각하게 때가 많다. 그러므로 사는 방식을 의식적으로 바꾸는 일이 좋은 영성형성의 지름길이다.



11 12 13장



11-12장 | 백성들의 명단과 성벽봉헌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들(11:1-24)

*마을과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는 백성들(25-36)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12:-7)

*대제사장 예수아의 자손들(8-11)

*제사장의 족장들(12-21)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에 관한 기록(22-26)

*느헤미야가 성벽을 봉헌하다(27-43)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준 몫(44-47)


명단들

이제 이야기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읍으로 다시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데 관심을 쏟는 장면으로 돌아간다. 11장부터는 7:4-5부터 예전에 한 인구조사 목록과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하는 장면을 삽입하느라 잠시 중단된 느헤미야의 회고담이 계속된다.

성벽과 성문들이 재건되었다. 이제는 한때 파괴 되었던 그 성읍에 다시 사람들이 살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먼저 성안으로 옮겨와 살기로 동의한다 이들과 함께 제비 뽑기로 뽑힌 가족들이 성안으로 이주하는 대열에 합류한다. 

이렇게 뽑힌 사람들은 유다의 시골 촌락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읍에 거주 하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 몇몇 가족들이 자원하여 예루살렘에 정착하게 되자 대다수의 사람들 역시 그들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말씀은 솔선수범하여 예루살렘에 정착한 유다 사람들의 이름(11:3-36)을 제사장들 및 레위인들(12:1-26)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유다 땅으로 이주한 지도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 다시 그 성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딸린 식구들과 생활터전을 고려할 때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그들은 제비 뽑아 결정된 사항에 기꺼이 순종했다.


성벽봉헌식

27절부터는 성벽 봉헌식을 기록하느라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그 성벽은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그 분의 보호하심에 힘입어 완공됐다. 이제 그것을 완공했다고 해서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두 행렬을 지어 성벽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돌면서 하나님을 찬송했다. 이 중 에스라가 한 행렬을(12:36) 느헤미야가 다른 한 행렬을 인도했다(12:38). 이 때에도 성 안에서 기뻐하는 소리를 먼 곳에서 까지 들을 수 있었는데 이는 이 행사가 온 가족이 다 참여한 행사였기 때문이다(12:43). 

본문의 분위기는 능력과 통일과 안전과 기쁨으로 가득하다. 그 비결이 43절에 설명된다: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그 분은 지금도 동일하신 분이시다. 또한 이는 스가랴서 1:17, 8:4-6의 예언의 성취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지는 곳에 하나님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임한다


[느헤미야 12:43]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for God had made them rejoice with great joy).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스가랴 1:17]  그가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 하니라 


[스가랴 8:4-6] 4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남자들과 늙은 여자들이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가 많으므로 저마다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5 그 성읍 거리에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여 거기에서 뛰놀리라.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야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 다음에는 성전 곳간을 관리할 사람틀과 찬양을 담당할 사람들을 임명했다(44-47). 그의 관심은 단순히 성벽을 재건하는데 있지 않고 예배의 회복이 일어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13장 | 느헤미야의 최종적인 개혁


봉헌 축제는 느헤미야에게 있어서 그의 직무를 끝낼 좋은 기회였다. 그는 예루살렘 총독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수 없었다. 그의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이 성에서 12년을 보낸 후 그는 자기가 섬기던 왕에게 돌아갔다. BC 433-432년 사이에 다시 아닥사스다의 궁궐로 돌아간 것이다.

몇 년 후에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 보니 그 성의 백성들은 다시 타락해 있었다. 자신이 세운 규정들이 조롱거리로 전락하였음을 알게 된다.

엘리아십 제사장이 산발랏의 친구인 암몬사람 도비아에게 성전 안에 있는 방올 제공하였던 것이다.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을 하나님의 총회에서 제외하라는 신명기 23:3-6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신명기 23:3-6] 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the assembly of the LORD) 들어오지 못하리라. 4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네 평생에 그들의 평안함과 형통함을 영원히 구하지 말지니라(You shall not seek their peace or their prosperity all your days forever.


느헤미야는 성전을 깨끗이 치우도록 조처하였다. 그리고 언약을 갱신할 바로 그때 자신들이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에 바쳐야 할 것에 대해 성실하지 못했음올 발견하였다. 그는 바로 그러한 점도 바로 잡았다. 또한 그는 안식일을 범하는 것에 대하여 조처를 취해야 했다.


또한 이방인과의 결혼이 다시 유행하였다. 그리하여 이방인의 말은 하면서도 유다의 말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느헤미야는 교회의 문제가 그러한 통혼에서 생겨난 것임올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위대한 솔로몬 왕도 바로 그러한 일로 인하여 몰락하게 되었음올 기억하였다. 심지어 대제사장의 손자까지 산발핫 집안의 자손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런 사람이 어찌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느헤미야는 그를 쫓아 내었다.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라는 말로서 느헤미야서는 끝난다. 그것은 일종의 개혁올 기록함과 동시에 개혁의 실패를 기록한 책이다. 우리는 어떤 인간의 힘으로도 그 부패를 전적으로 막을 수 없음을 안다. 그의 평생을 드린 최선과 안타까움이 함께 묻어나오는 고백이다.   


[느헤미야 13:31]  ...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포로 생활에서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들이 그토록 심각하게 율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저지른다면 미래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회복된 예루살렘의 첫 시대가 그토록 많은 일탈로 얼룩졌다면 과연 새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의 법을 신실히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알거니와 인간의 죄가 지닌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반역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설령 하나님을 섬긴다 해도 기껏해야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그럴 뿐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5 문 : 당신은 그 모든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있습니까? 

5 답 :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과 내 이웃을 미워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포로기 이후 처음 몇 년 동안의 예루살렘 역사는 죄가 인간의 본성에 얼마나 깊이 뿌리 박혀 있는지 보여 준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온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알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차치하더라도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신실함을 지킬 수 있는가가 시급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런 의문들이 하나님이시요 구세주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오시게 된 배경이 되었다. 


느헤미야도 메시아는 아니었다. 그 역시 사단의 활동올 정지시킬 수 없었다. 그렇지만 과거의 자신의 사역이 헛된 것으로 돌아간 것올 발견했을 때 그는 다시금 개혁이 시작되어야 하며 또한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올 선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제사장 에스라와 제사장이 아닌 느헤미야의 최선과 그럼에도 불구한 그들의 무력함은 열 두 지파로 구성된 새 백성의 위대한 선지자요 제사장이시며 왕이신 분의 능력으로 극복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미래의 일이었다. 성경의 이야기는 이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오기 전에 머물렀던 수산으로 옮겨간다. 우리는 이제 에스더가 겪은 사연과 바사 제국에 남아 있던 유다 공동체가 맞게 운명을 살펴보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