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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BOOKS BREAD/BIBLE

성경통독 365_열왕기상 읽기

성경통독 365_열왕기상 읽기


1장

왕자 아도니야 

장군 요압 

제사장 아비아달


제사장 사독

장군 브나야

선지자 나단

용사 시므이 레이 


나단 -> 밧세바


조금전 다윗을 곧 죽을 사람 취급하던 밧세바가
솔로몬의 왕위등극을 다윗이 약속하자
만수무강하라고 축복의 말을 내뱉는다


힘의논리로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려는 인간의 도모를

힘 없는 그룹을 통해 없이 하시는 하나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보호하시는 하나님


힘을 과시하는 악한 사람들의 악한 도모를 

하나님의 뜻을 세우시는 기회로 바꾸신다

아도니야의 잔치자리를 초상집 분위기로 바꾸신다


2장

Be strong, and show yourself a man

여호수아가 리더가 될때와 비슷한 발언이다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남자다워라

무엇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는 일에!

그길만이 형통의 길이다. 왕위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언약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4절의 말씀은 사실상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


40년 치세를 마치고 죽음을 눈앞에 둔 다윗

아들 솔로몬에게 제거해야 할 정적은 처리하고

만들지 말아야 할 정적은 만들지 말라고 이르는 다윗

솔로몬의 치세가 평화로운 치세가 되기 위해
정리해야할 인물들을 정확히 집어주되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인 이스라엘의 장래를 위해 그리하도록 한다

교회의 치리와 권징도 그와 같아야 한다.


수넴여인 아비삭을 원하는 아도니야
그는 자신의 도모를 허위로 돌리신 여호와 하나님과

선왕인 다윗을 끝까지 조롱하고 모욕하려는 의도로 

아비삭을 요구한다


솔로몬의 오른편 자리에 밧세바, 현실권력의 자리


솔로몬의 분노는 개인적인 분노와 권징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가 세운 질서에 대한 도전에 대한 것이다.


특히 제사장 아비아달의 직위 박탈과 추방은 

삼상 2장의 제사장 앨리의 가문에 대한 예언의 성취이다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31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32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33 내 제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네 사람이 네 눈을 쇠잔하게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서 출산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34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35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사람은 마음,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36 그리고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이르되 청하노니 내게 제사장의 직분 하나를 맡겨 내게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삼상 2:30-36]


요압 -> 브나야

아비아달 -> 사독


내가 범죄하면,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아니어도 하나님은 다른 일군을 일으켜 세우신다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이와 같이 하여 왕국은 솔로몬의 손안에서 틀이 잡혀갔다.

So the kingdom was established in the hand of Solomon.

So the kingdom was now firmly in Solomon’s grip.


모든 정적을 제거한 후 나라는 안정적이 되었다


3장

그런데도 솔로몬은 만족하거나 안심하지 못하고 

애굽의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인척관계를 퉁한 

동맹을 맺음으로써 자신의 안전장치를 삼는다.

여호와를 전심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그의 불완전한 모습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종교적이면서

동시에 불순종하는 일이 가능한가?


열왕기상 3:3

NKRV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NCTB 솔로몬은 야훼를 사랑하였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따라 살았다. 다만 한 가지, 그는 산당에서 제사하고 향을 피웠다.


ESV Solomon loved the LORD, walking in the statutes of David his father, only he sacrificed and made offerings at the high places.


NLT Solomon loved the LORD and followed all the decrees of his father, David, except that Solomon, too, offered sacrifices and burned incense at the local places of worship.


하나님은 솔로몬의 불법결혼을 산당제사를

즉각적으로 문제삼지 않으신다.

오히려 일천번제를 드린 그에게

무엇을 줄꼬? 하고 구하라고 하신다.


이때 회개했으면 어땠을까?


그런 그는 놀랍게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듣는 마음, 명석한 머리를 주어
하나님의 백성을 잘 다스리게 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요청을 마음에 들어하시고

자신의 장수와 부와 원수갚는 것 대신

왕으로서 가져야할 지혜와 분별력을 구하는 

그를 칭찬하시며 그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시고 그를 축복하신다

게다가 그가 구하지도 않은 

부귀와 영광, 명예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아비 다윗의 길, 

하나님의 법도와 계명을 지키면 

장수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부분이 사실 놀랍고도 두려운 장면이다
그의 허물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그리고 다윗의 길로

허물을 깨닫고 다시 율법으로 돌아와 

순종하는 길로 오라고 초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불순종을 남겨두고도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며 지혜를 구하는

도무지 한데 어울리지 않는 정서를 보여준다.

이율배반적 종교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솔로몬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동시에 발견한다.

결국 그는 돌이키지 않고
불순종과 우상숭배의 길로 가고

마침내 여호와를 버리는 길로 

여호와께 버림받는 길로 간다


[열왕기상 11:9-13] 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12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열왕기상 3:28

NKRV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NCTB 온 이스라엘이 왕의 이 판결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왕에게 하느님의 슬기가 있어 정의를 베푼다는 것을 알고는 모두들 왕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ESV And all Israel heard of the judgment that the king had rendered, and they stood in awe of the king, because they perceived that the wisdom of God was in him to do justice.

NLT When all Israel heard the king’s decision, the people were in awe of the king, for they saw the wisdom God had given him for rendering justice.


하나님을 사랑하고 겸손하여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가 있더라도

불순종과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결국 멸망의 길로 간다.


매우 종교적인 감정과 행위가 충만하더라도

불순종과 죄악을 깨닫지 못하거나 가벼이 여기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며 살면

결국 징계와 버림받는 자리로 가게 되어 있다


하나님 저로 이런 우둔함과 무감각으로부터 

속히 깨어나게 하시고 

말씀으로 깨우실 때 깨닫고 속히 돌아서게 하소서


4장

열왕기상 4:20

NKRV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NCTB 유다와 이스라엘은 바다의 모래알처럼 인구가 불어났지만 먹고 마시는 일에 아쉬움을 모르며 잘 지냈다.

ESV Judah and Israel were as many as the sand by the sea. They ate and drank and were happy.

NLT The people of Judah and Israel were as numerous as the sand on the seashore. They were very contented, with plenty to eat and drink.


이 구절은 신명기의 말씀과 함께 봐야한다. 


[신 8:12–20]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20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풍성한 중에 그는 병거와 마병을 많이 두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제외해버린 것처럼 보인다. 평화의 시대인데도 그는 병력을 많이 유지한다.


열왕기상 4:26

NKRV 솔로몬의 병거의 말 외양간이 사만이요 마병이 만 이천 명이며

NCTB [5:6] 솔로몬에게는 병거를 끄는 말을 둘 마굿간이 사천 간 있었고 말이 만 이천 마리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누구와도 견줄수 없는 지혜와 재능과 지식을 주사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게 하셨다. 모든 민족이 그의 지혜를 들으러 올 정도였다.


똑똑하고 지혜로우나 여전히 불순종하고 거역함을 버리지 않는 그를 하나님은 오래참고 기다라신다. 불순종하고 거역하면서도 똑똑하고 지혜로울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을 멸시해서는 안된다. 



5장




6장

성전완공을 필한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그에게 다시 한 번 율법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신다. 언약의 축복이 끊어지지 않는 비결이 거기에 있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백성을 위해 그리하라고 하셨다.


열왕기상 6:12-13

NKRV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성전완공보다 중요한 것은 성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계명에 유의하여 그와 동행하는 것이다. 솔로몬의 성전은 아주 놀라운 진리를 증명해 주는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성전 앞에는 위용을 자랑하는 두 개의 커다란 웃기둥이 있었는데 하나는 야긴, 또 하나는 보아스라고 불리웠다. 언약궤를 염두에 둔 성전 건축이었기 때문에 그 내부 벽은 정금으로 아로 새기고 성전 내부의 많은 기구들은 금이나 도금된 것들이었으며 문과 벽 위에는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 형상올 아로새겼다. 백성들은 성전올 보면서 하나님께서 계신 낙원 즉, 그 옛날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거닐었던 에덴 동산을 상기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성전에서 이제 다시 자신의 백성과 함께 거하기를 원하셨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휘장 뒤의 가려진 곳에 여전히 살고 계셨다. 지성소 앞에 그룹들 있어서 상징적으로 사람들의 입장올 막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속죄 제물로

인해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또한 몸소 성전이 되시고 우리를 성전 삼아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고 순종하는 삶이 중요하다. 그래야 산 제사로 우리 삶을 드릴수 있다. [롬 12:1-2]



7장

이방, 곧 애굽에서 데려온 아내를 위해서도 커다란 궁전을 지어주는 솔로몬. 외로워 할 아내를 위한 선물이든지 아내의 아버지, 강대국의 왕 파라오를 의식한 선물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엄청난 선물을 한 것은 분명하다. 또한 히람과 같은 이방 사람들과 매우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그의 인간관계나 친화력은 매우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방인과의 경계없는 허물없는 관계는 그의 실패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


두로 사람 히람이 놋(청동)을 녹여 만든 두 기둥

왼쪽의 보아스와 오른쪽의 야긴


성전 입구에는 두개의 놋기둥이 세워졌는데 

그이름이 각각 야긴’ 과 ’보아스‘ 였다. ‘야긴’ 이란말의 뜻은 ‘그가 세우셨다.’ 이며  ‘보아스’ 란 말의 뜻은 ‘그 안에 능력이 있다.’ 는 말이다 . 이 말을 좀 더 풀이댄 ’야긴’은 여호와께서 세우셨으니 성전이 영원하리로다 라는뜻이며 ‘보아스’는 여호와의 능력으로 영원히 지켜 주시리라는 뜻이다. 이처럼 이 두 기둥은 성전의 영원성과 능력을 상징하는것이었다


성전과 왕궁을 완공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20년입니다. 성전 공사는 하나님의 말 씀에 순종하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거대한 왕궁은 솔로몬의 욕망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의 통치를 무거운 멍에(왕상 12:4)로 묘사합니다. 솔로몬의 토목 공사는 일반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365 통독 설명 중에서]


8장


완성된 성전은 초막절 의식올 통해서 봉헌되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절기에 속하는 이 축제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그 옛날 광야 생활과 그 때 자신들올 인도하시던 하나님의 주권올 상기할수 있었다. 그러므로 초막절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휴식처를 찾으시고 또한 자기 백성 가운데 그의 보좌를 세운 사실올 경축하는 것은 참으로 시기 적절하였던 것이다. [반더발 성경연구]


시온에서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으로 언약궤를 옮기다 (9)


열왕기상 8:9

NKRV 그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맺으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성전 가장 깊은 곳에 안치된 언약궤. 그 안에는 두 돌판이 있었다. 그 돌판은 하나님과 백성들이 맺은 언약이 새겨진 돌판이다. 그런데 첫번째 두 돌판은 우상숭배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노했던 모세가 집어던져 깨어졌다.  돌판만 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언약이 깨어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셔서 그들엑 다시 새로운 둘판을 주셨다.  그들의 허물을 덮어주신 것이다.  그룹날개로 덮어주고 언약궤 위에 뿌리는 희생제물의 피로 덮어주신다. 새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께서 자신의 몸과 피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을 덮어 주시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상징이다. 


열왕기상 8장에는 언약궤, 혹은 법궤 안에 두 돌판만 있었다고 하나 히브리서9:4에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라고 했다.

 

언약궤와 함께 하는 두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항아리에 든 만나는 1)기적의 상징이며 동시에 2)이스라엘의 죄의 상징이며 ,3) 은총의 상징이다


만나의 경우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원망,  배고파 죽겠다고 하나님을 원망했던 이스라엘의 패역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주어지는 하늘의 양식이 만나이다.


아론의 지팡이의 경우 불순종과 대적의 증거로 고라, 단, 아비람 등이 아론과 모세를 거역하고 대적한 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세운 권위에 도전한 결과로 250명이 직접적으로 죽고  원망과 불평에 동참한 14700명도 죽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해주시고 인도해주셨다. 


그러므로 지성소 가장 깊숙이 안치된 언약궤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원망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고 말씀하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요 예배의 핵심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된 내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예수님의 영, 성령이 계시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 불순종과 부끄러움에 탄식하시면서 함께 하시고 교훈하시고 책망하시고 위로하시면서 우리를 결국엔 거룩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안계신분 처럼 여기거나 소멸하면 안된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자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10)

구름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을 때 나타나고 광야에서 구름기둥으로 나오고, 엘리야가 승천할 때도 나오고(구름에 쌓여 승천하였지 손오공의 근두운처럼 구름을 타고 간것은 아님),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자신을 구름속에 감취셨으며, 예수님은 구름타고 가신 것이 아니라 구름 속으로 가셨으며 오실 때는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했다. 구름을 볼때마다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의 임재는 단순한 느낌이나 감정을 가지고 판별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느낌과 상관없이 변함없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실존 reality 에 대한 신뢰와 새로운 자각이 (awareness of God) 우리를 성전삼아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다. 성경 자체는 임재의 상징이 아니지만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고 스트러글 할때 함께 하심을 깨닫게 하시고 이해하게 하시고 뉘우치게 하시고 감동을 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임재를 신비하고 은밀하게 드러내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경험 자체를 많이 가지지 못한다. 하지만 은혜의 수단을(말씀, 기도, 성례) 부지런히 그리고 성실히 사용함으로써 늘 깨어있고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해 갈 수 있다.


솔로몬은 성전건축의 과정의미를 해석해 준다 (16-21)

성전의 핵심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성전의 핵심이다.


솔로몬의 기도 (22-60)

솔로몬의 기도는 7가지의 간절한 탄원을 담고 있다

하늘과 하늘의 하늘도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담지 못하는데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다 담지 못함을 고백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다.(27)

그러므로 그 약속을 믿고 붙들고 

그 하나님께 나아가고 기도하는 것이다 

성전에 나아가고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의 표현이다.

중요한 것은 내 영이 성전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향하는 것이다(28-60)


33-34절은 포로생활을 살아가던 백성들과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에게 참으로 절절한 구절이 아닐수 없다. 


35-40절은 아합왕때 기억했어야 할 구절이다


41-43절은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집임을 알려주는 구절이며 성전에 임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실뿐만 아니라 이방에서 돌이킬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장소이며 열방의 하나님임을 담고 있다


44-45절은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에서 발견된다


46-53은 다니엘의 기도와 기도생활에서 볼수 있고 그 응답은 에스라서 1장에 나오는 고레스왕의 칙령에서, 1,2,3차 포로귀환에서 나타난다. 


54-60

솔로몬의 기도의 절정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동행과 임재를 간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백성들의 마음을 붙들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머물러 있게 해주시고 그들이 드린 기도를 잊지 말아 주시고 돌보아 주시기를 간구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과 만민들이 여호와 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달라고 하나님의 영광 이름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 마치 주기도문처럼.


61-66

이어 솔로몬은 백성들에게 그리 하실 하나님께 마음을 온전히 드려 계명에 순종하는 백성들이 되자고 권하고 함께 희생제사를 드리며 봉헌식을 올린다. 봉헌식을 드리고 7일간 잔치를 열고 8일째 되는 날 백성들은 처소로 돌아갔다.


온 백성들은 왕을 축복하여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 다윗과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내려주신 이 모든 은혜를 생각하고 마음 흐뭇하여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임재와 신앙의 체계가 새롭게 확립된 것을 기뻐하며 왕을 축복하며 자신의 처소로 돌아간 것이다.


11장 

안타깝게도 솔로몬은 많은 것을 가졌으나 이스라엘의 경건한 여인들의 아름다움은 볼줄 몰랐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인이 가진 현숙함을 사랑하지 못했다. 


수 많은 이스라엘의 경건한 여인들을 두고도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한 것은 단순한 그의 성적취향이 아니다. 불순종과 불경건이다. 이러한 그의 취향과 여인들은 왕인 솔로몬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하는 디딤돌이 되었다. 


한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모습은 그가 가진 신앙의 가치를 보여준다.


창세기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the sons of God saw that the daughters of man were attractive. And they took as their wives any they chose.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가 잠언 31장에서 현숙한 여인의 가치를 논한다. 아가서에서 진짜 사랑을 논한다. 


학자들의 의견을 빌려 이해하자면 그의 말년에 뉘우치고 깨달아 적은 글이라고 하겠으나 성경은 그가 말년에 하나님을 버렸다고 말함으로써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다. 


하지만 그의 가르침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담겨있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도구로 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경건한 남녀들이 가진 성숙함과 현숙함을 사랑하고 높이 평가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솔로몬의 이런 성정이 아버지 다윗의 삶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다음 세대들이 경건한 가정을 이루게 하는 최선의 길은 경건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존재다.


5-8절

가나안 땅 시돈의 여신 아스다룻과 암몬의 신 밀곰


풍요와 다산을 보장해주는 아스다롯 여신 숭배에는 음탕한 행위가 동반되었으며 남자들 중에서 몸을 파는 자들과 창녀 등이 이 여신을 위해 거룩히 구분된 것으로 여겨졌다(왕하23:7; 참조 레19:29; 신23:18). 밀곰은 몰렉 혹은 그모스라고도 불리는 모압의 신이며 아스다롯의 배우자 신이며 아기들을 산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인신제사의 풍습을 가졌다.


9-10절

하나님은 부주의함과 불순종, 은밀한 욕망과 불신자요 우상숭배자인 아내들로 인해  마음이 돌아선 솔로몬에게 일찌기 두 번이나 나타나셨고 크게 진노하셔서 또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경고하셨다. 하지만 솔로몬은 듣지 않았다.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하던 그가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막아버린 것이다. 


11-13절 

그러자 하나님은 나라를  그의 손에서 빼앗아 신하에게 주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비 다윗과의 언약을 근거로 그의 시대가 아닌 아들세대에 이루어 지겠다고 하셨다. 일견 그에게 좋은 소식이나 자식이 망하는 길로 쇠퇴와 분단의 길로 가는 것을 그는 보지도 못하고 다윗의 곁에 묻혀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다. 나라는 분열 되겠지만 두 지파 만으로 구성되는 남 유다왕국을 보존하여 다윗에게 하신 언약을 지켜주신다고 했다.


14-43절 이스라엘과 솔로몬의 대적들이 일어나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사람들 마음에 있는 감추인 욕망과 분노를 제어하지 않고 내어버려 두셔서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며 싸우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이 그런 욕망의 충돌을 제어하고 다스려 주시지 않는다. 싸워주시지 않는다.

요압의 잔인함으로 분노를 품고 살던 하닷이 이끄는 가시같은 이웃 에돔왕국의 출현이 그러하다. 그는 바로왕의 처제와 결혼함으로 솔로몬과 함께 애굽의 외척이 된다. 애굽왕이 사위로 삼은 솔로몬과 동서가 된 하닷,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모를 외교적으로 복잡한 관계가 된다.

또한 다윗의 대적이었던 르손은 다마스커스를 수도로 하는 시리아의 왕으로 그는 솔로몬 왕국의 가시같은 존재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솔로몬 왕국에 반기를 들은 여로보암의 등장이다. 외부의 적도 골치인데 내부의 적이 가장 강력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는 서로 좋게 보는 관계였으나 하나님께서 아히야 선지자를 보내어 솔로몬의 불순종과 죄악으로 인해, 그가 하나님을 버림으로 인해 그에게 주신 왕국을 쪼개어 분열왕국의 북왕국을 그에게 주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솔로몬처럼 하지 않고 다윗의 길로 행하면 너의 왕위와 나라를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일러주셨다.
이 일을 알게 된 솔로몬은 회개하기는 커녕 이 일을 정치적 이해관계만으로 해석하여 그를 죽이려 했다. 위기를 맞은 여로보암은 도망쳐 애굽으로 가서 솔로몬이 죽을 때까지 거기 머물렀다. 

애굽왕은 참으로 음흉한 사람이다. 솔로몬을 사위로 하닷을 동서로 솔로몬의 정적 여로보암을 자신의 귀빈으로 보호해 줌으로써 국제정세의 주도권을 쥐고 흔든 사람이다. 



[참조]

솔로몬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 기운데 있을 때는 온 나라가 평온하고 주변국들이 그를 잘 섬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서 대적들이 나타나고 평화도 깨어졌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사람들과의 관계도 깨어지게 됩니다.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에 있다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지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늘 불편하게 여겨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먼저 하나님과바른관계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바이블키 구약편, 고신총회]



12장

1-20

솔로몬의 사후에 아들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고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으려는 열망으로 끌어올라 세겜으로 모여들었다. 그때 여로보암도 돌아와 정치적 행보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르호보암 왕에게 나아가 세금을 감면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 하지만 르호보암은 선왕의 충신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심복들의 부추김을 따라 오히려 여로보암과 그의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정책을 제시한다. 욕망이 지혜를 짓밟아 버리고 욕망을 따라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또 다른 편의 욕망을 부추기게 되었다. 이러한 어리석은 결정은 하나님의 섭리가 이뤄지는 과정이다. 사람들의 악한 욕망을 사용해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see 참조] 그래서 결국 통일왕국의 분열의 길을 걷게 된다. 화려했던 솔로몬의 통일 왕국은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로 이루어진 초라한 나라가 되고만다.


열왕기상 12:15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So the king did not listen to the people, for it was a turn of affairs brought about by the LORD that he might fulfill his word, which the LORD spoke by Ahijah the Shilonite to Jeroboam the son of Nebat.


[참조] 


5항. 가장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때때로 그 자신의 자녀들을 각종 유혹과 그들 자신의 마음의 타락에 잠시 동안 내버려 두신다. 이는 그들이 전에 지은 죄로 인해 징계하시거나 그들 마음의 부패와 기만의 숨겨진 힘을 깨닫게 하심으로 그들을 겸비하게 하기 위함이요, 또한 그들을 깨우쳐 생존을 위해 더욱 친밀하고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게 하기 위함이며 또한 장래의 모든 죄 지을 기회들에 더욱 경계하고 여러 다른 의롭고 거룩한 목적들을 위해 주의하도록하기 위함이다.


6항.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전에 지은 죄들로 인해 눈을 어둡게 하시고 마음을 강팍케 하신 사악하고 불경한 사람들의 경우, 하나님은 그들의 이해를 밝혀 주고 마음 가운데 역사하는 자신의 은혜를 허락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은사를 빼앗아 가신다. 또한 그들의 부패가 죄를 범하는 기회가 되는 그런 것들에 그들을 노출시킨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을 그들 자신의 정욕과 세상의 유혹과 사탄의 권세에 맡겨 버리신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심지어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기 위해서 사용하는 수단들 아래에서도 강팍케 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5장 5,6항]


v21-24

르호보암과 두 지파의 용사들은 당장에라도 전쟁을 불사하고 나라를 회복하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를 통해 전쟁을 금하고 이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임을 주지시킨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말에 순종하였다.


V25-33

한 편 여로보암은 자신의 왕국을 새로이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라는 쪼개어졌지만 하나님은 같고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인 성전이 여전히 남왕국 예루살렘에 있으니 자신의 왕국이 다시 다윗 가문으로 넘어갈 수도 있고 자신의  존망도 위협을 받을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그로 인해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북이스라엘에도 새로운 신앙센터를 세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만든 것이 금으로 만든 송아지상이며 남왕국으로 제사드릴 가는 일은 번거로운 일이니 이것에 절하라고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선포하는 어이없는 일을 시도한다. 벧엘과 단에 둔 두 금 송아지에게 백성들은 경배했다.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자라에 대한 욕망이 그에게 신이 되어 거짓 신을 만들어 내고 하나님의 백성들도 같은 죄에 빠지게 한다. 

더 나아가 산당들을 짓고 허가되지 않은 일반인을 제사장으로 삼고 벧엘과 단에서 자신이 임의로 정한 날에 거짓제사와 거짓 예배를 주관하게 했다. 


[참조]

그런데 벨엘의 산당에 특별하게 주의를 끄는 물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곧 금송아지였다. 모세가 시내산에 있올 때 호렙산 아래서 아론이 그와 같은 금송아지를 어떻게 해서 만들게 되었던가를 생각해 보라. 셈족(이스라엘올 포함한 고대 근동의 셈의 후예들)에게 있어서 황소는 신성을 상정하는 최상의 것으로 취급되어졌다. 

또 다른 금송아지 한 마리가 만들어져 단(Dan)으로 옮겨졌다. 북쪽에 자리한 이 성읍은 사사 시대 이래 줄곧 우상 숭배가 행해졌던 곳이태) (사사기 17장). 게다가 여로보암은 레위 지파가 아닌 사람을 제사장으로 임명 하였으며 초막절올 임의로 예루살렘에서처럼 일곱 째 달에서(예루살렘에서는 이 달에 시행됨) 여닮째 달로 옮겼던 것이다. [반더발 성경연구 1권, 코넬리우스 반더발]




13장 


1절 

하나님의 말씀과 질서를 무시하면서도 사람은 여전히 종교적이다.

이것이 사람이 가진 종교성의 무서움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종교를 통해, 정성을 드리면 하나님도 통제할수 있다고 착각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질서도 무시한 채 자신의 종교심을 사용한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이러한 자기 백성에게 

말씀을, 말씀의 사람을 보내신다.

패역한 자기 백성을 예고 없이 심판하셔도 되는 분이 

말씀과 말씀의 사람을 보내어 말씀하실 때는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열왕기상 13:1

보라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And behold, a man of God came out of Judah by the word of the LORD to Bethel. Jeroboam was standing by the altar to make offerings.


2-5절

하나님은 벧엘의 가증한 제사장은 망하고 제단이 훼파될 것이라고 하시다. 

그런데 그 무서운 예언을 들은 여로보암은 마치 바로왕처럼 마음을 굳게하여

그 하나님의 사람을 잡아 죽이려 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여로보암 왕의 손을 마비시켜 오무리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말씀대로 제단이 훼파된다.


6-10절

그 광경을 보던 여로보암왕은 회개는 커녕 자신의 손이 낫게되기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구하고 그의 손이 나으나 그의 마음은 고침을 받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하나 하나님의 사람은 단호히 거절하고 길을 떠난다. 기적은 놀라운 현상이고 사람의 종교성을 민감하게 건드리지만 죄인의 마음을 고치지 못한다. 죄인의 마음을 고치는 것은 항상있고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고 돌이켜 순종하는 길 뿐이다. 


11-32

벧엘에 살던 한 늙은 선지자가 있었다. 그의 아들로부터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그를 만나러 달려가 자신의 집에 머물것을 권했으나 하나님의 사람은 감사한 제의지만 단호히 거절한다. 왜냐면 하나님이 그리 명하셨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늙은 선지자는 천사가 그를 대접하라 하셨다고 거짓말을 꾸며 말하고 하나님의 사람은 그에게 속아 그의 집으로 가서 대접을 받음으로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 거짓 선지자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사람의 분별력 없음과 불순종을 꾸짖는 기이한 일이 발생하고 그 하나님의 사람은 사자에게 물려 죽게 된다. 늙은 거짓선지자는 이 사건을 동네방네 퍼뜨린다.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선지자가 벌을 받아 죽었다고. 그리고는 그의 시체를 수습하여 장례를 치뤄주었고 슬퍼하였다. 그리고는 이 사태를 심각히 받아들여 예언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죽은 하나님의 사람이 선포한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져서 제단과 산당이 훼파될 것이라고.


33-34

하지만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보낸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불순종하면 하나님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받고도 그 악한 길에서 떠나지 않고 여전히 악한 종교행위를 하며 죄를 짓는다. 이 일이 여로보암 가문에 죄가 되어 그 가문은 사라지게 된다.

모든 죄는 다 하나님 앞에서 중하지만 하나님을 우상으로 바꾸고 우상을 하나님으로 경배하게 만드는 죄악은 자신과 가문과 나라를 망하게 하는 중한 죄악이다. 이것이 성경이 북왕국 이스라엘 왕들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는 “여로보암의 길” 인 것이다. 


[참조]

여로보암은 사명을 망각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검은 욕망을 드러냈습니다. 여로보암의 범죄는 예배를 파괴시켰고 직분을 파괴시켰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왕국의 가장 요긴한 것들을 타락시킴으로 하나님의 언약이끊어지게합니다. 북이스라엘 역사에서 왕들의 행적을 평가할 때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여로보암의 집을 본받아’라는 문구를 사용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의 이름은 후대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에는 끊임없이 반역과 음모, 암살이 일어났습니다. 모두 열아홉명의 왕들이 있었습니다. 종종 왕조가 바뀌었습니다. 반면에 남유다는 다윗에게 약속한 것처럼 다윗의 계보에서 왕이 출현했습니다. 한 등불이 내 앞에 있을 것(왕상 11: 36) 이라는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땅위에 아로새겨진 하늘나라, 강현복, 216page]




14장


1- 16절

여로보암은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자 아내를 실로로 보내어 자신이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선지자 아히야를 만나게 하고 아이의 운명을 묻게 한다. 그런데 아히야 선지자는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는 상태였다. 하나님은 아히야에게 여로보암의 아내가 방문할 것을 미리 알려주시고 대답할 것도 일러주셨다.

변장한 채 방문한 여로보암의 아내에게 선지자는 가슴 아픈 메시지를 들려주겠다고 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 내용은 하나님이 여로보암을 왕으로 친히 세우셨는데 다윗의 길로 가지 않고 이전 사람들보다 더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버려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였다고 하셨다. 

이는 그의 자의적인 종교행위와 정성은 헛된 것이며 그의 욕망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그로 인해 여로보암의 집은 저주를 받아 비참하게 끊어지게 될 것이며 네 아들은 죽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 아이는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겠지만 아비의 죄로 인해 비참하게 죽지 않고 묘실에 묻힐 것인데 이는 그 어린 아이가 하나님 보시기에 옳게, 경건하게 살았기 떄문이라고 했다. 여로보암의 가문이 쿠데타에 의해 진멸당하고 새 왕이 세워질 것임을 미리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종내에 이방나라에 의해 살던 땅에서 잡혀가 포로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앗수르에 의해 망할 운명에 대한 예언이다. 이는 하나님이 세운 여로보암 자신만 범죄했을 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로 범죄하도록 했기에 받는 저주와 벌이다. 


17-20절

이 메시지를 받은 여로보암의 아내는 돌아갔고 예언대로 아들은 그녀가 도착했을 때 세상을 떠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이다.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자는 그의 또 다른 아들 나답이다.


21절

21절부터는 남왕국의 초대왕 르호보암에 대한 기록이다.

르호보암은 이방여인을 유독 사랑했던 솔로몬이 암몬 여인 나아마를 통해 얻은 아들이다. 신명기 23장에 보면 모암과 암몬은 여호와의 총회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그는 암몬 여인을 사랑하여 르호보암을 얻었다.


신명기 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No Ammonite or Moabite may enter the assembly of the LORD. Even to the tenth generation, none of them may enter the assembly of the LORD forever,


대조적이지만 모압여인 룻은 하나님을 믿고 경건한 남성 보아스와 결혼함으로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온 여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세주의 조상이 되는 은혜를 입었다.  이런 차이를 가져온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2-24절

유다 나라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해하는 일에 있어서 북이스라엘과 다를 바가 없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격동케 했다. 산당, 돌로 남자신 우상, 나무로 여자신인 아세라 신상을 제작했다. 그 종교시설에는 동성애적 성행위가 가득했고 하나님의 명령과 능력으로 쫓아낸 이방인의 가증한 풍습을 오히려 본받는 일이 일어났다.


25-31절

르호보암 5년에 애굽왕 시삭이 동맹관계를 무시하고 쳐들어와서 여호와의 성전을 짓밟고 약탈하였다. 또한 르호보암의 생전에 그의왕국은 여로보암과 항상 전쟁이 있었고 르호보암은 조상곁으로 돌아갔다.



15장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 왕(1-8)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도 아버지와 같이 하나님을 온전히 좇지 않았다.


개역개정성경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다.
이전 개역성경과 큰 차이도 없고 번역도 원문을 살리지 못한 부분이 많다

4절만 봐도 그게 분명하다. 차라리 영어성경이 훨씬 느낌을 살려준다.

 

열왕기상 15:4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

ESV Nevertheless, for David’s sake the LORD his God gave him a lamp in Jerusalem, setting up his son after him, and establishing Jerusalem,

NLT But for David’s sake, the LORD his God allowed his descendants to continue ruling, shining like a lamp, and he gave Abijam a son to rule after him in Jerusalem.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셔서 베푸신 은혜를 너무나 덤덤하게 기록한다. 


열왕기상 15:5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다윗은 과오도 있고 허물도 있는 사람이지만 뉘우치고 돌이킨 이후 그의 삶은 그의 회개가 한 순간의 감정적인 뉘우침을 넘어 평생을 회개하며 산 삶임을 보여준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그의 ‘95개조 반박문’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하셨을 때 

이는 믿는 자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루터는 삶 전체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즉 하나님을 등지고 떠난 길에서 하나님께로 마음과 삶의 방향을 돌이전환한다는 의미이다. 루터는 “평생이 회개거리”라면서 한편으로는 그게 은혜 가운데 성장하는 비결이라고 했다.


죄에 대해 슬퍼하고 미워하며 후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기점으로 그렇게 살게 만든 생각과 삶의 방식으로부터 매일 매일 돌아서는 것도 중요한 회개의 증거이다. 다윗의 삶이 그랬다고 성경은 평가한다.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날마다 돌이키며 살아야 한다.


열왕기상 15:6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사는 날 동안 전쟁이 있었더니


평생에 전쟁이 있었다는 말은 평생 하나님의 평화(샬롬) 없이 살았다는 말이다. 알마나 괴로운 시간을 보냈는가? 샬롬은 영적, 정서적, 물질적 번영을 뜻하며 동시에 하나님과 이웃사이에서 전쟁과 불화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아비얌의 아들 아사왕 (9- )

41년 재위, 그의 어머니(할머니) 마아가

다윗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함

남색하는 자를 쫓아내고 선왕들이 지은 모든 우상 훼파

그의 어머니(할머니) 마아가가 만든 혐오스런 아세라상을
토막내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버림

그리고 그녀의 태후자리를 박탈함

하지만 산당은 다 없애지 않았다

그러나, 대하14:3을 보면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이 했고”, 

대하 14:5절은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 나라가 평안했다”고 평가

즉, 모두 없애지는 못했더라도 최선을 다했다고 보아야 한다. 

상당 부분을 없앤 것이다. 


역대하 14:3-5

3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4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5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그러나 그의 마음은 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다 (14)


하지만 그의 재위기간에도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16-17)

그런데 아사왕은 전쟁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뢰하지 않고 외교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시리아의 왕과 밀약을 나누었다. 또한 성전에 있던 금은을 이방왕에게 뇌물로 주었다. 결과적으로 북왕국을 물러가게 했지만 그의 마지막 마저도 개운한 느낌은 아니다.(18-24)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왕위를 계승한다.


북왕국 여로보암 왕의 아들 나답 왕과 바아사 왕 (26-34)


재위기간은 2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의 길로 행함

이스라엘 전체가 같은 죄에 빠지게 함

잇사갈 출신 바아사의 반란, 그를 죽이고 왕으로 등극

왕이 되자마자 여로보암의 가문을 씨도 남기지 않고 몰살

하나님의 사람 아히야를 시켜 말씀하신 것이 성취

바아사는 24년간 재위하였고

바아사의 재위기간 내내 유다와 전쟁이 그치지 않음

그 역시 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라


[참조]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이나 전통상
여인들의 이야기는 잘 기록하지 않는데
유독 왕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서는 

이후에도 특히 남유다의 왕들은 계속해서 어머니 이름이 나온다. 

이것은 여인의 영향력, 누가 어머니인가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뒤에 나오는 유다왕조에서 가장 악한 시대가, 

아합의 딸들을 며느리로 맞아들이면서 벌어지는 시대들이다.



16장


북왕국 바아사 왕을 꾸짖는 

하나님의 말씀이 “예후”에게 임하다.

바아사의 악행을 꾸짖고 

그의 가문도 여로보암의 가문처럼 멸절되리라고 하시고 

그대로 심판이 이루어짐.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나니의 아들 예언자 예후를 시켜 

바아사와 그의 가문에 심판을 내리신 것은 

그가 여로보암의 가문처럼 되려고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온갖 악한 일을 저질러 

여호와 하나님의 분노를 돋우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여로보암 가문을 몰살시켰기 때문이었다. (1-7)


북왕국 바아사 왕의 아들 엘라가 왕이되다

재위기간은 2년

군의 실세인 시므리가 반란을 일으켜 

술에 취한 왕을 죽이고 왕으로 등극

왕위에 오르자마자 바아사의 집안을 몰살

선지자 예후를 통해 주신 말씀대로 심판이 이뤄지다.

이 일은 바아사와 그의 아들 엘라가 함께 죄를 짓고 

나아가서 이스라엘을 죄의 길로 인도하였을 뿐 아니라 

우상을 만들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분노를 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8-14)


그러나 시므이의 치세는 고작 7일이었다

군사들이 그의 반란의 소식을 듣고 군의 지휘관이었던

오므리를 왕을 추대하는 새로운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에 오므리는 디르샤 성을 공격하고

시므이는 궁전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가 이러한 최후를 마친 것은 

그가 여호와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고 

여로보암이 걸었던 길을 따라 같은 죄를 지었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 빠뜨렸기 때문이었다. (15-20)


혼란은 가중되어 시므이를 패배시킨 오므리 편과

디브니를 왕으로 삼으려는 무리로 백성과 나라가 분열되다

오므리파가 디브니파에 승리하고 디브니를 죽이고 왕에 등극하다

그의 재위기간은 12년간이었고 6년동안은 디르사에서 통치하고

나머지 6년은 사마리아에 성을 짓고 그곳을 수도로 삼아 통치함

오므리 역시 선왕들과 별 다를 바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 심해져서 어떤 선왕들보다 훨씬 더 

여호와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였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밟아 같은 죄를 지었고,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까지 죄에 빠뜨려 우상을 섬기게 하였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크게 노하시게 하였다

12년 재위 후에 그는 죽고 

그의 아들 아합이 북왕국의 왕이 된다. (21-29)


북왕국 오므리의 아들 아합왕

아합왕의 재위기간은 22년이다.

악한 왕의 대명사 아합의 기록은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아버지 오므리 왕보다 더 심하데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함(30)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걸었던 

죄의 길을 따라가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시돈 왕 에드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였을 뿐만 아니라 

바알에게가서 그를 숭배하기까지 하였다.(31)

그는 사마리아에 바알 산당을 짓고 그 안에 바알 제단을 세웠다.

또 아합은 아세라 목상도 만들었다. 

그는 선대의 어느 이스라엘 왕들보다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엽게 했다. (32-33)


악한 사람도 충분히 종교적이며 

형식적으로는 여호와 종교를 버리지 않았다

이를 혼합주의라고 한다.

자신의 욕망을 채워 줄 우상과

자신의 체면을 세워 줄 민족종교를 동시에 섬긴다


아합은 먼저 거룩한 혼인제도를 파괴하였다.

그의 아내 이세벨은 시돈의 엣바알의 딸이었다. 

엣바알은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이며 

자기 왕을 암살하고 왕이 된 인물이다. 

그러니 이세벨은 철저한 바알숭배자이었다.


또한 아합은 수도 사마리아에 바알의 사당을 지었고 

그곳에 바알을 위한 단과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두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의 왕이 친히 그곳에서 우상을 경배했다. 

그전의 왕들은 이렇게 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합은 노골적으로 여호와 신앙을 버렸다. 이는 배교다.


아합시대의 영적 어두움을 보여주는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

그것은 벧엘 사람 히엘을 시켜 여리고 성을 재건한 일이다. (34)


여호수아 6: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교훈을 삼으려했던 여리고성의 잔해를 

아합과 그 시대의 아들들은 저주와 경고를 무시하고 

여리고 성을 재건 하였고 저주대로 두 아들을 잃었다


[참조]

여리고성 재건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여리고성은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얻는다’라는 도리를 가르치는 증표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함락한 후에 아무도 이 성을 재건하지 말 것을 명했습니다. 누구든지이 성을 재건하면 기초를 놓을 때에 첫째가 죽고 문을 세울 때에 막내가 죽을 것이라 했습니다(수 6:26). 무너진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유물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은 무너진 여리고를 보면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바로 이 믿음의 도리를 자기 왕국에서 제거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엄청난사건입니다. 마치 교회에서 ‘더 이상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도리를 가르치지 말라’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습니다. [땅 위에 아로새겨진 하늘나라, 강현복, 223]



17장

선지자 엘리야가 등장한다. 엘리야와 등장은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처럼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왕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이스라엘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셨다. 그러나 그 전에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심으로 마지막 자비를 나타내셨다.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자신이 다시 입을 열어 전하기 전에는
앞으로 몇 해동안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함


사실 이 메시지는 신명기의 언약적 저주에 기초하여 전한 말씀이다.


신명기의 말씀을 보면 약속의 땅에서 

약속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때를 따라 비를 주시겠다고 했다


신명기 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하지만 

약속의 땅에서 약속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내리시겠다고 하셨다


신명기 28:24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결국 아합왕 시대에 내린 가뭄과 흉년은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의 언약을 배신하고 악을 행한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적 저주가 임한 것이다


신명기 28:20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


하나님은 오랫동안 참아오셨으나

악이 극에 달한 아합과 아합의 시대에 하나님의 언약적 저주를 내리신다


정상적인 왕이라면 엘리야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언약으로부터 나온 말씀인줄 알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했지만 그는 몰랐던지 알고도 무시했던지

돌이키기는 커녕 메신저였던 엘리야를 죽이려고 한다.


메신저에 대한 악의와 분노는 

메시지의 주인에 대한 악의와 분노를 나타낸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아합의 분노로부터 피신시키신다

그래서 엘리야는 요단 동편 그릿 시냇가로 가서 머물며

시냇물을 마시며 까마귀가 날라다주는 떡과 고기로 연명한다.


하나님은 부정한 짐승인 까마귀를 통해서 

정결한 자기 백성을 먹이신다. 놀라운 아이러니다



그런데 그가 전한 말씀대로 비가 내리지 않자 개울이 마른다

그때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그를 

시돈 땅 사르밧(사렙다)으로 가서 과부집에 머물라고 하신다

그는 명대로 이방 땅 시돈으로 가서 가난한 과부집에 머문다

시돈은 악한 여인 이세벨의 모국이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의 집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다. 


열왕기상 17:14-16

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이 말씀 역시 신명기의 순종의 복이 임하는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신명기 28:2, 5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자신을 잡아 죽이려는 원수 이세벨의 땅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여인을 만나고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이 멸시하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이

말씀대로 이뤄지는 축복을 경험하게 하신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2-16)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내시는 하나님을 증거함으로

이방인의 입술에서 자신이 하나님이 사람됨과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 되다는 고백을 듣게된다 (2-24)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열방의 빛으로 살지 않아도
자신이 열방과 민족들까지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스스로 증거하셔서 말씀의 사람 엘리야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신다


[참조]

선지자가 하나님의 왕국을 떠났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슬픈 일입니다. 선지자의 떠남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교회에서 말씀이 사라지면그 교회는 망합니다. 더구나 엘리야가 머문 곳은 시돈 땅입니다. 이세벨의 고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왕국을 이방국가처럼 만들어 버린 사상의 발원지에 당신의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왕후가 아니라 과부를 통하여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비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생명입니다. 비가오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고통의 시간을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돈의 사르밧 과부에게는 비가 올 때까지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왕상 17:14). 비가 오지 않는 기간이 한 쪽에는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다른 한 쪽은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약속의 땅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이방 땅에 사는 한 과부의 가정을 비교해 봄으로써 진정한 축복의 왕국이 어디인지 그 기준을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땅 위에 아로새겨진 하늘나라, 강현복, 224-225]



18장


원수의 땅, 시돈 땅에서 3년을 보낸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다.

다시 아합에게 가서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신다. 비를 내리시겠다고. 그래서 엘리야는 아합을 만나러 사마리아로 갔다. 


아합은 왕궁맡은 자(궁내대신), 여호와 하나님을 지극히 경외하는 오바댜를 불렀다. 오바댜는 아합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멸할 때 선지자 백명을 오십명 씩 동굴에 숨기고 먹을 것과 물을 날라다 주어 살려낸 사람이었다.


그는 아합에게 신뢰를 얻은 이여서 왕은 오바댜에게 함께 전국을 순회하자고 하여 함께 각각 전국을 순회하여 물을 찾으러 다녔다. 다니던 길에 오바댜와 엘리야가 운명처럼 만났다(7). 


엘리야는 오바댜에게 아합왕에게 가서 엘리야가 여기 있다고 전하라고 하자 오바댜는 간곡히 만류한다. 하지만 엘리야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니 기필코 아합을 만나겠다고 했다. 결국 오바댜는 아합에게 가서 엘리야의 소식을 전했고 둘은 만났다. 


아합은 만나자 마자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을 괴롭히는자여” (you troubler of Israel,  you trouble-maker of Israel) 라고 악담을 퍼붓는다.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리인지. (17) 엘리야는 바로 네가 트러블 메이커라고 되받아 친다(18). 그리고는 갈멜산에서 여호와의 총회를개최하여 그 앞에서 누가 참 선지자인지를 가리자고 한다(19)


아합은 엘리야의 제의를 받아들여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들과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 850명도 함께 불러 모은다. 갈멜산에서 엘리야는 기념비적인 연설을 시작한다.(21)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 다리를 걸치고 있을 작정입니까?

만일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라면 그를 따르시오.” 


그러나 백성들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말도 없었다.

엘리야는 다시 입을 열어 메시지를 전했다.


“여호와의 선지자로서 살아 남은 사람은 나 하나요. 

그러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나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황소 두 마리를 끌어다 주시오. 

그들에게 한 마리를 잡아 장작 위에 올려놓고 

불을붙이지 않은 채 그냥 두게 합시다. 

나도 한 마리를 잡아 장작 위에 올려놓고 불을 붙이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을 부르시오.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겠소. 

어느 쪽이든지 불을 내려 응답하는 신이 참 하나님입니다.” 


그러자 꿀먹은 벙어리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백성들이 

모두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갈멜은 비의 신인 바알에게 봉헌된 산이었다. 언뜻 볼 때 바알은 지난 3년 동안 이스라엘을 저버린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 동안 비가 전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백성들은 갈멜 산에서 바알과 여호와 중 어느 신이 비를 내려 줄 수 있는가를 보아야만 했다. [반더발 성경연구 1, 코넬리우스 반더발, 464] 


엘리야가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였고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36-37)


기도의 응답으로 여호와께서는 물에 홈뻑 젖은 제물을 불로 삼켜버림으로써 이 극적인 경쟁에서 숭리자로 입증되셨다(왕상 18:20-38). 

여호와는 그는 하나님이시다 외침이 갈멜 산을 메아리칠 바알의 선지자들은 죽임을 당하였다. 그리고 엘리야가 예견했던 대로 마침내 비가 쏟아져 내렸다.



19장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에 대한 백성들의 환호는 단지 일순간 뿐이었던 것이 곧 드러나게 되었다. 더욱이 아합 역시 그의 뇌리에 생생하게 박혔던 갈멜 산에서의 사건을 곧 잊어버리게 되었다. 이세벨은 바알 숭배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야를 죽이고자 독자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19: 1-2). 또한 이세벨은 이 상황을 영적전쟁, 종교전쟁으로 받아들였다. (2)


엘리야는 직전의 승리를 잊은 것처럼 두려움에 사로잡혀 브엘세바에 시종을 남겨두고 홀로 광야로, 호렙산으로 도망간다. 그리고 거기서 원망섞인 어투로 자신의 목숨을 거둬가 달라는 기도를 하나님께 올린다.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 맞다 (Elijah was as human as we are 야고보서 5:17)


하지만 그는 도망쳐 오던 여정이 피곤했는지 로뎀나무(싸리나무) 아래에서 잠이 드는데 천사가 나타나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을 가져다 놓고 그를 흔들어 깨우며 ‘일어나서 먹어라’ 고 말했다. 죽여달라던 그는 음식을 먹고 다시 누워 잠이 든다. 죽여달라는 그의 심정은 이해하나 진심은 아닌듯 하다. *^^* 


우리도 이럴 때가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하신 분이다. 그러니 죽을만큼 힘들때 하나님께 심정을 토로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3-6)


천사가 또 나타났다. 천사는 하나님의 메신저이기에 분명히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져온다. 천사가 배달한 음식은 먹고 힘내라는 하나님의 메시지였다. 천사는 재차 잠이 든 그를 흔들어 깨우며 일어나 먹으라, 앞으로 네 갈길이 고될 것이다. 라고 메시지를 전한다. 이에 그는 일어나 먹고 힘을 얻어 사십 일을 밤낮으로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했다(7-8).


호렙산의 한 동굴에서 잠을 청하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거기서 뭐하고 있느냐고. 그가 뭐하는 지 몰라서 물으시는 건 아니었다. 그의 진심을 묻기 위한 것이다. 마치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하고 물으신 것과 같다. 


그의 대답 역시 아담과 비슷하다.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에 열정을 갖고 일했으나 돌아온 것은 자신에 대한 미움과 살의 뿐이라고. 대놓고 말은 안했지만 당신 위해 살았지만 돌아온 것은 이런 현실이라고 한 것과 다름없다. (9-10)


그런 엘리야의 믿음이나 태도를 하나님은 바로 지적하지 않으시고 대화를 이어가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앞에 지나가신다.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흔들고 바위를 산산조각 내었고 지진도 일어났다. 하지만 하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진 후에 불이 일어났으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다. 불길이 지나간 다음 낮은 속삭임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너, 거기서 무엇 하고 있느냐? (11-12)


엘리야가 그 소리를 용케 듣고 겉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동굴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그는 조금 전의 말을 다시 원망하듯 되풀이 하여 답한다. 나도 할만큼 했다고, 그데 돌아오는 건 날 죽이려는 칼 뿐이라고. 그런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다메섹 광야를 통해 돌아가라고 하신다. 

그리고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라는 명을 내리신다. 또한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대신한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하셨다. (13-16)

이어서 하나님은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이고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일 것이라는 예언을 주신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입맞추지도 않았던 칠천명을 남겨두시겠다고 하셨다(17-18). 내가 포기 하지 않은 이상 너도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이다.


[참조]

하나님께서는 삶에 지쳐 있는 엘리야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줌으로써 신선한 희망을 주고자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적인 현상 가운데 자신을 계시하시고 그의 계시를 설명해 주셨다.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이 있었다. 이러한 계시는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질 때(출19: 16-18) 의 계시를 생각케 한다. 이러한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하사엘을 시리아{아람)의 왕으로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그리고 엘리사를 그 자신의 후계자로 기름 붓도록 임무를 부여하셨다.

이들 세 표적(강풍, 지진, 불)은 언약을 저버린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했다. 그러나 불 후에 있은 최후의 표적은 또한 하나님의 자비를 드러내었던 바, 하나님께서는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 가운데‘계셨다”는 것이다. 위의 구절은 세상의 세찬 반대에 직면해 있는 교회의 보존에 대해 취급하고 있는 벨직 신앙고백서의 제 21장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 거룩한 교회는 온 세상이 아무리 사납게 날뛴다 할 지라도 그것에 상관없이 하나님에 의해 보존되고 지지된다. 때때로 이 교회는 매우 미미하고 또한사람들의 눈에 거의 무가치한 것으로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합의 잔인한 통치 기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철천 인올 남겨 두었듯이 그 거룩한 교회를 유지하고보존하신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는 다른것이다. 교회가 어쩔 수 없이 얼마 동안 “보이지 않게”된다 할 지라도 하나님째서는 계속해서 자신의 백성을 모으신다. 바로 이것이 여기에 사용된 상징적 숫자인 철천과 계시록에 사용된 십 사만 사천의 의미인 것이다. [반더발 성경연구 1, 465-466, 코넬리우스 반더발]


하나님의 격려와 도전의 메시지를 받은 엘리야는 즉시로 길을 떠나 명하신 길로 가던 길에 소를 치던 엘리사를 만나 자신의 겉옷을 주어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부르고 그는 엘리야의 제자가 된다. (19-21)


[참조]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직분자들을 세우라 하십니다. 직분의 회복은 교회의 회복으로 연결됩니다. 직분의 회복은 신실한 남은 자들의 생명을 보존하며 그들이 달려가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땅 위에 아로 새겨진 하늘나라, 강현복,226]


20-22 장 

북이스라엘은 아람왕 벤하닷으로부터 위기를 맞습니다. 그러나하나님의 도움으로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구원을받습니다. 아합은 이 일 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버립니다. 이 일은 결국 아합 자신의 집안의 몰락을 가져오게 됩니다. 결국 아합 왕은 길르앗 라못을 찾기위해 여호사밧 왕과 동맹을 맺으나 거짓선지자의 말을 믿었다가 길르앗 라못에서 전사하고 맙니다.



20장

아람(시리아)의 벤하닷 왕이 연합군을 이끌고 아합이 다스리는 북왕국을 침략해 온다. 전세가 불리함을 안 아합은 벤하닷에게 자세를 낮추어 응답하나 벤하닷은 공개적으로 노략질 할 것을 통보한다.(1-6)

아합은 사정을 원로들과 백성에게 토로하고 그들은 그 요구를 거절하라고 간청하고 벤하닷의 사자들에게 알려주자 벤하닷은 노하여 사마리아를 잿더미로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자 아합은 호기있게 받아친다. 결국 전쟁으로 돌입하게 된다(1-12).


그런데 갑자기 한 선지자가 아합을 찾아와서 적군을 물리쳐 주시겠다고 그래서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아합은 자세한 승리의 전략을 묻고 선지자는 대답해주고 7아합은 232명의 청년들과 7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아가 벤하닷과 연합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다(13-21)


승리를 거둔 아합에게 선지자는 재차 나타나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심사숙고하여 다시 쳐들어올 아람왕을 대비하라고 전한다. 한편 아람왕의 신하들은 그들의 패배의 원인을 본질적으로 이번 전쟁은 신들의 전쟁인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산의 신이고 자신들의 신은 평지의 신이므로 자신들이 패했고 이번엔 평지에서 까우면 이길 것이라고 왕에게 조언했다. 그리고 전열을 정비해서 싸우러 가자고 했다. 왕은 신하들의 조언을 따라 다시 전쟁을 일으켰다(22-26).


숫적으로 열세인 이스라엘, 그때 하나님의 사람이 아합에게 나아와 그들이 해석한 관점을 뒤집어 버리는, 여호와는 산의 신만이 아니라 평지에서도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승리를 약속해 주신다. 대치한 째 7일이 되던 날 그들은 접전을 벌였고 이스라엘은 아람(시리아)군대 10만명을 하루에 죽인다. 남은 자들은 아벡성으로 후퇴하다 성벽이 무너져 27,000명이 깔려죽고 아람 왕은 성채 안 골방으로 숨어들어간다.(27-30)


왕을 부추겨 전쟁을 일으켰던 신화들은 왕에게 이스라엘 왕은 자비한 자이니 우리가 항복하여 나아가면 살려줄지도 모른다고 왕에게 투항할 것을 압박한다. 신하들은 아합에게 나아가 살려달라 하고 아합은 벤하닷이 살아있으면 데려오라고 호의를 베푼다. 사람들은 좋은 징조로 여겨 아람 왕을 데려오고 아합은 그와 조약을 맺고 놓아주었다. (31-34)


그때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명을 받고 동료 선지자에게 자신을 때리라고 부탁하자 그가 거절했다. 그러자 그가 자신의 동료에게 말하기를 “자네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으므로 나가다가 길에서 사자를 만나 죽을 것이다.” 과연 그 사람은 길을 떠나가다가 사자를 만나 죽었다.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서 자기를 때려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그 선지를 때려 상처를 입혔다. (36-37)


그 선지자는 눈을 천으로 감아 변장하고 왕이 지나갈 길목에 가서 왕을 기다렸다. 왕이 지나는데 그가 왕을 불러 말하였다. 


“임금님, 소인이 싸움이 한창 벌어진 곳을 지나 오는데 어떤 사람이 포로를 하나 데리고 전쟁터를 벗어나 저에게 와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이 사람을 잘 감시하여라. 만일 놓치면 네가 대신 죽으리라. 죽기 싫으면 몸값으로 은 한 달란트를 내야 한다.’ 그런데 소인이 이 일 저 일로 분주하여 정신이 없는 틈을 타서 포로가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 말을 듣고 이스라엘 왕은 “그렇다면 그대로 당해야지. 네 스스로 판결을 내렸으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예언자는 눈을 싸매었던 수건을 재빨리 풀었다. 그제야 이스라엘 왕은 그가 선지자임을 알아보았다. 선지자가 왕에게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너는 내가 죽여야 할 자를 놓아주었다. 그러니 내가 너를 대신 죽이겠다. 또 그의 백성 대신에 너의 백성을 멸하리라.’ ” 


그래서 이스라엘 왕은 침울한 심정이 되어 사마리아에있는 궁으로 돌아갔다. (38-43)


[참조] 선지자들의 역할

우리가 열왕기를 계속 읽다 보면 선지자들의 영향이 대단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북왕국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던 것올 본다. 엘리사는 예언의 소명올 받았고 앨리야는 일단 예언적 말씀을 이해했을때 좌절감에 휩싸이지 않게 되었다.

얼왕기상 20장에서 우리는 하나의 커다란 싸움을 보게 된다. 여기에서 다시금 선지자들은 교회의 적들을 쳐부수러 가는 일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13-14, 22,28). 그러나 아합왕의 잘못된 우정으로 인해서 엉뚱하게 벤하닷과 화친해 버렸을 때 (32) 선지자들은 역시 그것에 대한 심판을 선포한다(35절 이하). [반더발 성경연구 1, 466, 코넬리우스 반더발]



21장

하나님의 자비로 전쟁을 이긴 아합은 교훈을 얻지 못하고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고 이세벨은 한 술 더 떠서 나봇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그를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남편의 소유로 삼게한다. (1-16)


나봇은 지파별로 구획을 그어주신 토지는 여호와의 것이므로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이라 했지만 아합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욕망을 제어하기는 커녕 그의 욕망은 하나님의 말씀도 무시하는 방식으로 나타나 그의 탐심이 그의 우상이 되어버렸다. 

백성의 재산을 탐내지 않는 것을 넘어 보호해 줘야 할 왕이 백성을 죽여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켜 준 것이다. 이것이 죄와 탐심이 가진 강력이다. 자신의 욕망이 채워지기 전까지는 하나님도 사랑의 계명도 하나님의 백성도 형제도 보이지 않게 만든다. 


신명기 19: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


신명기 27:17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레위기 25:23

땅은 아주 팔아 넘기는 것이 아니다. 땅은 내 것이요, 너희는 나에게 몸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


출애굽기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Put to death therefore what is earthly in you: sexual immorality, impurity, passion, evil desire, and covetousness, which is idolatry.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Then desire when it has conceived gives birth to sin, and sin when it is fully grown brings forth death.


그때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아합에게 전해진다. 불법으로 포도원을 취득한 아합을 만나 그 일로 인해 너도 그와 같이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전하라 하신다. 나타난 엘리야에게 아합은 켕기는 게 있는 사람인것 처럼 “내 대적자여 (이 원수야, O my enemy)라고 말한다. 하지만 엘리야는 굴하지 않고 아합의 죄를 지적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다. 


“나 이제 너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나는 네 후손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이스라엘에 있는 아합의 가문에 속한 사내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씨도 없이 죽이리라. 나는 너의 왕조를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과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왕조처럼 만들리라. 네가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려 그토록 나를 노하게 하였는데 어찌 그냥 내버려두겠느냐?”


또한 이세벨을 향해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다


“개들이 이스르엘 성 밖에서 이세벨을 찢으리라. 

아합 가문에 속한 자가 성 안에서 죽으면 개들이 뜯어먹고 

성 밖에서 죽으면 새들이 쪼아먹으리라.”


성경은, 열왕기서 기자는 이 사건을 이렇게 평가한다


아합처럼 아내 이세벨의 농간에 빠져서 목숨을 내던져 가며 

여호와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아합은 참으로 못할 짓을 하였다. 

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 면전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들을 본떠 우상을 만들어 섬겼다. (17-26 )


열왕기상 21:20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열왕기상 21:2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참조]

‘자신을 팔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은 영어로 ‘to sell himself’ 인데 죄악에다가 자기를 팔았다는 뜻입니다. 자기를 송두리째 주어서 최악이 와서 완전히 지배하게 되면 자기가 욕심을 절제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그냥 타고 앉으면 죄악의 힘은 막대하게 되고 무소불위하게 되어 무엇이든지 죄악이 이끄는 대로만 나가게 됩니다. 완전히 철저히 쇠사슬에 매인 죄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의지의 주장이라는 것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정신이 온전히 흘딱 죄악한테 지배를 받고 마는 것입니다. 마치 귀신 들린 사람처럼 욕심이 이 사람올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스스로 팔렸다는 말 뜻인데 자고로 그렇게 아합 같이 스스로 팔린 자는 없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말에도 그 사람 정신 팔렸다, 눈 판다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주의하지 않아야 할 데다가 자기의 시력을 모은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전부를 주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눈을 팔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열왕들의 역사 2, 김홍전, 172-173]


그러데 놀랍게도 아합은 엘리야의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자신을 낮추는 회개의 태도를 보인다

이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그의 겸비한 태도로 인해

아합의 생전에 재앙을 내리지 않고 

그의 아들대에 가서 그 가문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고 하셨다.(27-29)


[참조]

아합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자신이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모습을 나타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을 우스운 꼴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책망한다는 것올 알았다. 엘리야를 향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비난 했던 왕 자신이야말로 자기 나라를 재앙에 빠뜨린 아간이었던 것이다. 션지자 앨리야는 그를 향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반더발 성경연구 1, 코넬리우스 반더발, 467]



22장

아람과 북왕국 사이에 3년째 전쟁 없이 지내던 어느날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아합의 북왕국을 방문한다. 그때 아합은 남왕국의 관료들과 여호사밧에게 길르앗 라못을 함께 치러 함께 가자고 하고 여호사밧은 흔쾌히 함께 하겠다고 했다. 


이어 여호사밧왕은 당장 여호와께 여쭤보자고 말했다. 먼저 결정하고 하나님께 묻자고 한다. 이에 아합은 선지자 400명을 모아 이 전쟁이 길할지 흉할지를 묻고 그들은 여호와께서 라못길르앗을 왕의 손에 넘길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이 400명 말고 물을만한 다른 여호와의 선지자가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합은 못마땅한 듯 자신에게 직언을 감추지 않는 불편한 선지자 미가야를 언급한다. 그러자 여호사밧은 아합을 만류하며 왕으로서 직언을 하는 선지자를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고 조언한다. (1-8)


그러자 아합은 미가야를 불러오라고 급히 명령한다. 그리고 두 왕 앞에서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를 필두로 거짓 선지자들은 전쟁에 나가라고 예언쇼를 하고 있었다. (9-12)


미가야를 데리러 갔던 사신이 미가야에게 다른 선지자들도 길한 예언을 하니 당신도 가능하면 길한 예언을 하라고 은근한 압박을 준다. 그러자 미가야는 단호히 그럴수 없다고 말하며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전하겠다고 했다.(13-14)


미가야가 두 왕 앞으로 왔을 때 그들은 물었다. 할까 말까? 그런데 놀랍게도 미가야는 쳐 올라가 정복하라고, 하나님이 라못 길르앗을 주실 거라 했다. 듣고 싶은 말을 들었지만 아합은 도리어 역정을 내며 진실을 말하라고 네가 나한테 좋은 예언을 할리가 없다고 역정을 냈다. 그러자 미가야는 이렇게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내가 보니,온 이스라엘이 이 산 저 산으로 흩어지는데 

마치 목자 없는 양떼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이것들을 돌볼 주인이 없으니, 

모두들 고이 집으로 돌려보내라.’


이 말을 들은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그가 자신에게 악담을 했다고 투덜거렸고 미가야는 그런 아합에게 그렇다면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보라고 하며 이렇게 전했다. (15-21)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온 하늘 군대를 좌우에 거느리시고 

당신의 보좌에 앉으시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합을 꾀어내어 라못길르앗을 치러 올라갔다가 

죽게 할 자가 없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여럿이서 제각기 자기 의견을 말하는데

한 영이 여호와 앞에 나와서 

자기가 아합을 꾀어내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영에게 ‘어떻게 하여 그를 꾀어내겠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는 ‘제가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내려가서 

아합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들어가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렇게 꾀어내면 되겠군. 가서 그대로 하여라.’ 하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제 아셔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임금님의 이 모든 선지자들 입에 

거짓말하는 영을 넣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임금님에게 재앙을 내리시기로 결정하셨습다.

(19-23)


그러자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뺨을 치고 호통을 치며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시더냐?”

그러자 미가야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네가 골방으로 피신해 들어가는 날이 올 터인데 

그 날에 스스로 알게 되리라.” (24-25)


이 예언을 마치고 미가야는 아합에게 잡혀 옥에 갖힌다.

옥에 갖히는 미가야는 “임금님께서 무사히 돌아만 오신다면 

내가 받은 말씀이 여호와의 말씀이 아닙니다.” (26-28)


여호사밧과 아합왕이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아합은 왕복 대신  변장을 하고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고 나가라한다.

이를 모르는 아람왕은 오직 이스라엘 왕을 공격하라고 한다.

아람 군대는 여호사밧을 아합으로 오인하여 달려드고 

여호사밧은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하여 도망간다. 

이를 보고 아람 군대는 그가 아합이 아닌 줄 알고 돌이켰다. (29-33)


마구잡이로 쏘아대던 화살 하나가 아합에게 명중하였다.

화살은 갑옷 가슴막이를 이은 부분에 꽂혔다.

아합은 그의 병거를 모는 병사에게 명령하였다.

자신이 다쳤으니 병거를 돌려 빠져나가라고.

싸움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왕은 병거위에 버티고 서있다가

저녁 때에 아람 군대 앞에서 숨을 거두었고

병거 바닥에는 왕의 상처에서 흐른 피로 흥건하였다.(34-35)


해 질 무렵, 한 병사가 대열 속을 뛰어다니면서 외쳤다. 

“모두들 자기 성으로, 모두들 고향으로!  임금님께서 돌아가셨다.” 

사람들은 사마리아로 돌아와서 왕을 그 곳에 안장하였다.

그리고 왕의 병거와 무기를 사마리아의 연못에서 씻었는데 

개들이 그 피를 핥았고 창녀들이 그 못에서 목욕하였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다. (34-38)


아합이 죽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 Ahaziah 가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39-40)


아합왕 4년에 유다의 왕이 된 여호사밧은 25년간 재위했고
그는 아버지  아사가 생전에 걸어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올바른 일만을 하였다. 

그러나 산당은 그대로 두었고 

백성들은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향을 피워 올렸다. 

또한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 아사왕의 시대까지 남아 있던 

남창들을 전국에서 쓸어버렸다. (41-46)


그 때에 에돔에는 왕이 없고 섭정 왕이 있었다

여호사밧 왕은 다시스의 상선대를 조직하여 

오빌에서 금을 운반해 오려고 하였다. 

그러나 에시온게벨에서 조난을 당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자기의 선원들을 보내어 도와주겠다고 제안하였으나 

여호사밧은 거절하였다.

아마도 그의 아비 아합에게 당한 것이 있어서일테다. (47-50)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남왕국 여호사밧 17년이 되던해에 왕으로 등극햐서 2년간 재위

그는 2년이라는 짧은 그의 재위 동안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일삼았다.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렸던 그의 부모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그는 바알을 섬기고 예배하여 그의 부왕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진노를 격동케 했다(5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