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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독 365_열왕기하 읽기

성경통독 365_열왕기하 읽기

열왕기하 서론 (바이블키 1, 고신총회 교육원]

365 성경통독 열왕기하 읽기


1

난간에서 떨어져 병세가 위증한 아하시야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자신의 병세를 물어보도록 부하를 보내다
하지만 다시는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 것이라고 엘리야를 통해 징계 


“이스라엘에 그의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안 계심이냐 ?”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로 여호와 신앙을 버린 적이 없으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여기며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우상을 자신의 두려움으로부터 지켜 줄 

우상을 더 의지하고 살았던 시대임을 증거해 줌 (1-16)


우상은 우리 안의 욕망과 두려움을 형상화 한 것
다시 말하면 우상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욕망을 

다른 대상을 만들어 통해서 표출시켜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우상 숭배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했던 것도 

그 우상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대신 충족시켜주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 욕구를 절대화 하면 절대적이신 하나님도 안 보인다.


팀 켈러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에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 

하나님보다 더 크게 생각을 차지하는 것,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걸 다른 데서 찾으려는 모든 시도, 

그것이 바로 ‘당신이 만든 신', 우상이다. 

무엇이든 우상이 될 수 있고, 좋은 것일수록 더욱 그러기 쉽다.
그리고 그 우상은 반드시 실망과 환멸을 가져온다. 

[팀 켈러, 내가 만든 신 Counterfeit Gods]***


*** 이 책은 lock down 기간이 끝나면 성도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그 우상을 닮아간다.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왕이 죽자
그에게 아들이 없었으므로 그의 아우 여호람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때는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 제이년이었다.(17-18)



2 

Elijah gives way to Elisha

승천할 때가 되어 벧엘로 가는 엘리야와 엘리사

존경하고 의지하는 스승 엘리야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엘리야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라 벧엘로, 다시 여리고로, 요단으로 간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야가 오늘 승천 할 것을 언급하고 

엘리사는 나도 아니까 좀 조용히 하라고 그들을 나무란다(1-6)


요단강가에 이르러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었고
엘리야가 겉옷을 벗어 말아가지고 

그것으로 물을 치자 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엘리야의 겉옷 털옷은 그가 선지자라는 상징이다

나중에 세례요한도 털옷을 입었다

선지자 모세에게 지팡이가 있었던 것처럼 

엘리야에게 털로된 겉옷이 있었고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가른 것처럼

엘리야는 겉옷으로 요단 강을 갈랐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마른 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널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승천하기 전에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고 묻자 

엘리사는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원한다고 구했다.


엘리사가 구한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개역성경은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새번역성경은

스승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의 갑절


ESV, NIV, NASB, 는 

double portion of your spirit


NLT는

double share of your spirit


The message 성경은

저는 스승님을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저도 스승님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Your life repeated in my life. 

I want to be a holy man just like you.”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배라는 표현인데 

이것은 이스라엘의 전통상 장자가 받을 몫이다.


신명기 21: 17을 보면 이스라엘에서 그 부모는 임종 때에 

자식들에게 유산을 다 나누어 주는데, 

유산을 줄 때 맨 위 장자에게는 두배를 주게 되어 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법을 신령한 의미로 해석해서 

자기는 엘리야의 제일 큰 아들이 된 셈이므로 두배를 원한 것이다. 


그런데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선뜻 대답하기 보다는

아주 어려운 부탁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왜냐면 선지자의 역할은 자신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있는 것이기에 그리 말한 것이다.
네가 나와 가까운 사람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엘리야에게 달린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직분은 개인적인 친분으로 수여하거나 물려받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승천하여 떠나는 것을 

엘리사가 본다면 그의 소원처럼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10).


그렇게 두 사람이 길을 걸어가는 동안

난데없이 불말이 불병거를 끌고 그들 사이에 나타났고

엘리야와 엘리사를 갈라놓고 

엘리야는 회오리 바람 속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갔다.

And Elijah went up by a whirlwind into heaven.


근데 잘 알려진 찬송가 234장에서는 

“주의 선지 엘리야 병거 타고 하늘에 올라가던 일을 기억합니다” 라고 했다

성경 어느 곳도 엘리야가 병거타고 하늘에 올라갔다고 말하지 않는다

병거(수레)가 아니라 회오리 바람에 휩싸여 올라갔다.


엘리사는 그 광경을 보고 이렇게 소리쳤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지키던 병거여, 기병이여…” 


[참조]

엘리사가 그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으로 부른 것은 

엘리야 자신이 항상 이스라엘 수호 영웅으로 존재하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하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때를 따라 이 엘리야를 통하여 나타남으로써 

이스라엘올 불쌍히 여기시고 건지시는 일이 있음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병거요 이스라엘의 마병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열왕들의 역사 2, 김홍전, 265]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진짜로 지키시는 

최종병기(병거와 마병)는 하나님이시며

영적전쟁의 참된 무기(병거와 마병)은 선지자의 입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항상있고 살아있는 말씀의 능력이다.


이스라엘(구약교회)에 선지자가 떠나면(말씀이 떠나면) 

이스라엘(구약교회)은 하나님의 버리신 바가 되고

영적암흑기와 우상숭배가 창궐하게 된다. 


하나님의 교회에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기름부음 받아 세워진 직분자들, 

말씀의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엘리야가 다시 보이지 않게 되자, 

엘리사는 자기의 겉옷을 두 조각으로 찢어버렸다.

엘리사는 자기 옷을 잡아 두 조각으로 찢음으로써 큰 슬픔을 표시하였다. 

슬폼이 심할 때는 이처럼 옷을 찢었다

그의 슬픔은 단순히 헤어짐의 슬픔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입이 사라져 버리는 슬픔이다


그리고는 엘리야가 떨어뜨린 겉옷을 집어 들고 되돌아와 

요단 강가에 서서 엘리야의 겉옷으로 물을 쳤으나 물이 갈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디 계십니까?” 하면서 

물을 치자 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엘리사가 강을 건너는데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우리에게 굳세고 용감한 장정이 오십 명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보내셔서 당신의 스승 엘리야를 찾아보게 합시다. 

어쩌면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어다가 

산 위에나 계곡에 떨어뜨렸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엘리사는 그럴 필요 없다고 하였지만

그들이 계속 졸라대는 바람에 얼굴을 붉히며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오십 명을 보내어 사흘 동안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말았다.

그들이 여리고에 머물러 있는 엘리사에게 돌아오자 그가 나무랐다. 

“내가 뭐라고 하였나? 갈 필요 없다고 하지 않던가?” (1-18)


여리고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자신들의 동네는 물이 안 좋아서 농사 짓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러자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오라고 하였다. 

그들이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자,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말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그 물은 엘리사가 말한 대로 정하여져서 오늘에 이르렀다.(22)


엘리사는 그 곳을 떠나 벧엘로 올라갔다. 

그가 벧엘로 가는 도중에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 소리치며 놀려대었다. 


“대머리야 꺼져라. 대머리야 꺼져라.”


엘리사는 돌아서서 아이들을 보며 야훼의 이름으로 저주하였다. 

그러자 암곰 두 마리가 숲에서 나와 아이들 42명을 찢어 죽였고

엘리사는 그 곳을 떠나 갈멜산으로 올라갔다가 사마리아로 돌아왔다.(25)


아이들이 비참하게 죽은 것은 

단순히 선지자 엘리사를 놀려서가 아니라

그들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고 

선지자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조롱하였기 때문이다 


비숫한 예가 신약교회에도 있었다.


[사도행전 5:3-6]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사도행전 9:1–5]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조롱에 이렇게 반응하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가장 악한 때에 아이들도 자기 백성들의 패역에도 불구하고 

자비와 열심으로 하나님과 선지자를 조롱하는 시대를 향한 강력한 메시지를 주신 것이다.

아이들이 선지자를 존경할 자로 알지 않고 조롱하는 대상으로 삼은 것은

단지 그가 대머리여서가 아니라 가정에서 경건한 영향을 받지 못하고 살아갔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조롱하게 되는 것은 

아이들의 불경건도 있겠지만 그들의 첫번째 경건교사인 부모들의 책임을 핑계치 못할 것이다.


영국의 청교도 J.C.라일 목사님은 이 본문을 근거로 

곰 두마리라는 어린이 성경동화를 쓰기도 하셨다


곰 두 마리’는 열왕기하 2:23-24절 말씀을 본문으로 한 설교로 

선지자 엘리사와 그를 조롱한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저자는 ‘하나님은 어린이들이 하는 것에 주목하신다. 

선한 사람들을 조롱하고 기독교 신앙을 무시하는 것은 아주 나쁜 일이다. 

죄 때문에 우리는 결국 슬픔에 빠지게 된다’는 3가지 가르침을 설명합니다. 

[책의 광고 중에서]


곰 두마리_이정규.pdf

엘리사는 결국 엘리야의 사역을 물려받은 것이며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엘리야와 함께 하시던 사역을 이어가신다


3

아합의 아들 여호람, 재위기간 12년 (유다왕 여호사밧 18년)

그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은 수준은 아니었는데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1-3)


그가 바알의 주상은 훼파하였으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한 이유는

그가 경건한 동기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이방의 신인 바알이 아닌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중심으로 

혼합주의적 여호와 종교를 강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여로보암은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남북의 모든 백성이

일년에 세 차례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예배하며 교제하는 것을

싫어했기에 그것을 막기 위해 벧일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여호와라고 거기서 예배하면 된다고 말함으로써 

국경을 봉쇄하고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것이며

결과적으로 여호와 신앙을 우상숭배로 만들어 버렀다

공식적으로 여호와 신앙을 버리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방신을 섬기듯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치명적인 혼합주의 종교정책을 펼져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만든 것이다.


모압왕의 배신을 응징하러 가던 여호람은 

여호사밧에게 함께 출정할 것을 권하자 함께 하겠다고 한다.


그들이 의기투합한 것은 역대하 20:1-23을 보면

모압이 전에 연합군을 결성하여 남유다를 침공하여 괴롭힌 적이 있었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적군들이 서로 죽이고 자멸하여 승리를 거둔적이 있었고 

또 북왕국과는 자녀들을 혼인시켜 맺은 동맹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논하여 에돔 광야길로 갈 것을 계획하고 

애돔 왕도 함께 나아가는데 먹을 물이 바닥이 나자 

여호람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버렸다고 단정한다.


그러자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뜻을 물을 선지자를 수배하자

여호사밧의 신하들 중 하나가 엘리사가 있다고 하자

여호사밧은 그라면 하나님의 뜻을 들을 수 있을거라고 하니

세 왕이 함께 엘리사가 있는 곳으로 간다.


자신을 찾아온 세 왕들에게 엘리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엘리사 :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습니까?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선지자들에게나 가보십시오.” 


여호람 :  “아니오. 여호와께서 우리 세 왕을 불러내시어 

모압 군대의 밥이 되게 하셨소.” 


엘리사 : “내가 모시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시오. 

어찌 내가 당신을 거들떠 보기라도 하겠습니까마는,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보아서 청을 들어드리겠습니다.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더니 그가 말씀을 전하였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골짜기 군데군데에 웅덩이를 파라.

나 여호와가 말한다. 

너희가 바람 불고 비 오는 것을 보지 못하겠지만,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 차서 

너희와 너희 군인들과 짐승들이 마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쯤은 여호와께 아무것도 아닙니다. 

야훼께서는 당신들의 손에 모압을 넘겨주실 것입니다.

당신들은 요새화된 성읍, 주요 도시를 모두 쳐서 점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수목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샘구멍을 남김없이 틀어막고 옥토를 모조리 돌밭으로 만드십시오.”


엘리사의 예언이 끝나고 다음 날 아침 소제드릴 때에

에돔 쪽에서 물이 쏟아져 나와 그 일대가 물바다가 되었다.

한편 여러 나라의 왕들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모압 전국에 퍼졌다. 

그래서 징집 연령이 지난 사람은 모두 소집되어 국경에 배치 되었다.

모압 군은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햇살이 물 위에 퍼져 있어 

물이 피처럼 붉게 물들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이 말했다. 


“저것은 피다. 저 왕들이 분명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서로 죽였나 보구나, 모압 사람들아, 이제 가서 약탈하자.” 


그러나 그들이 이스라엘 진지에 이르자 

이스라엘 군이 일어나서 반격하였다. 

그들은 도망치는 모압 군을 뒤쫓아가며 쳐부수었다.

그리고 도시들을 짓부수고 군인들이 모두 달려들어 

좋다는 밭마다 돌을 던져 돌밭을 만들고, 

샘이라는 샘은 모두 틀어막고 훌륭한 나무를 모조리 찍어 넘겼다. 

그리하여 마침내 길하레셋만 남기고 모든 곳이 돌무더기가 되었는데 

그 곳마저 투석병들이 포위하고 공격하자,

모압 왕은 이미 전세가 기운 것을 깨닫고는 

군인 700명을 이끌고 칼을 빼들고 포위망을 뚫어 

아람 왕에게로 탈출하려고 하였으나 그 일도 실패하였다.

궁지에 몰린 모압 왕은 세자인 맏아들을 죽여 

성 위에서 그들의 신 그모스에게 인신제사로 번제를 드렸다. 

그러자 큰 분노가 이스라엘 군에 내려, 

이스라엘 군은 진을 거두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참조] 27절의 크게 격노함

공동번역은 “무서운 신의 진노”로 

우리말 성경은 “하늘을 찌르는 이스라엘을 향한 분노”로

ESV, NLT는 great wrath against Israel  로 번역했다


v 27 하지만 이 "큰 분노"는 인간의 분노인 것 같다 (열왕기서에서의 다른 두 경우처럼, 5:11; 13:19). 모압왕 메샤의 부대는 그의 절박한 행동을 보고 대적에 맞서 승리로 이끄는 분노로 맞섰다. 고 보아야 한다.


Facing defeat by Israel, Mesha offered his son as burnt offering on the wall. As a consequence, there came great wrath (Hb. qetsep) against Israel. This is not to be understood as divine anger, because on the one hand the biblical authors did not regard the Moabite god Chemosh as a real god (1 Kings 11:7), and on the other hand Israel’s God would surely not have acted on Moab’s behalf as a result of a ritual practice that was abhorrent to him (cf. 2 Kings 16:3; 17:17; 21:6). It seems, instead, that this “great wrath” is human wrath (as on both other occasions in Kings when qetsep appears, 5:11; 13:19): Mesha’s troops respond to his desperate act with an anger that carries them to victory against the odds. 

[Crossway Bibles. (2008). The ESV Study Bible (pp. 650–651). Wheaton, IL: Crossway Bibles.]



4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 한 명이 엘리사에게

남편이 죽었는데 생전의 빚 때문에 

두 아들이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다고 호소한다.


이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타락이 그들의 일상생활도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믿음과 생활의 유일한 법칙이다. 형제가 값을 능력이 없으면 면제해 주거나 기다려 주어야 하는데 갚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녀를 종으로 빼앗아 가는 일이 일상이 되고 그것을 막아 주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 있다. 물론 빚은 갚아야 하나 그들을 종(노예)로 삼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기회를 주어 빚을 갚게 하고 빚이 탕감되면 그들을 자유인으로 놓아주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레위기 25:35-43] 35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객이나 우거하는 자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36  너는 그에게 이식을 취하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것인즉  37 너는 그에게 이식을 위하여 돈을 꾸이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식물을 꾸이지 말라. 38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또는 가나안 땅으로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39 네 동족이 반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40 품군이나 우거하는 자 같이 너와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41  그 때에는 그와 그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 본족에게로 돌아가서 조상의 기업을 회복하리라. 42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바 나의 품군인즉 종으로 팔리지 말 것이라. 43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너의 하나님을 경외하라..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냐고, 

집 안에 무엇이 있는지 말해보라고 하자

여인은 기름 한 병이 전부라고 했다.

그러자 엘리사는 이웃을 돌아다니며 민그릇을 빌려오되

되도록 많이 빌려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 문을 잠그고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붇되 가득찬 그릇은 옆으로 두라고 했다.

여인은 두 아들과 함께 엘리사가 시킨대로 하였고

빌려온 그릇이 다 채워지자 기름이 곧 그쳤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그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두 아들과 함께 생활비로 사용하라고 하였다 (1-7)


이 기적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위해 

하나님의 법을 따름도 이웃사랑도 버린 그 시대를 꾸짖는 기적이다.


수넴이라는 지역을 지나가게 된 엘리사는 

거기 사는 한 부유한 여인을 만나게 되어 식사대접을 받게 되고 

그 이후로 자주 그곳을 들렸다. 

수넴 여인은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알고 남편에게

그를 위한 작은 방을 만들어 들릴 때 마다 거기 머물게 하자고 했다.


그 방에 머물게 된 엘리사는 시종 게하시에게 

그 여인을 불러오라고 하고 감사를 표하고 은혜를 갚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 여인은 자신은 먹고사는 일에 부족함이 없다고 사양했다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이 부인을 위해 해줄 일이 없을까 다시 묻자

게하시는 이 늙은 부부에게 자식이 없다고 일러주자

그 여인을 다시 불러 그녀가 내년 이맘때 

아들을 갖게 될 것이라 하자 그 여인은 농담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잉태하여 다음 해에 아들을 낳았다.

아이가 자라서 어느날 아버지와 함께 추수터에 나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두통을 호소했고
아버지의 명으로 어머니에게 아이를 데려갔으나 

어미의 무릎에 잠시 누워있다가 결국 죽었다.


어미는 죽은 아이를 안고 엘리사의 방으로 올라가 

그의 침대에 죽은 아이를 누이고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남편을 불러 엘리사를 불러오겠다고 하자

남편은 괜한 일이라고 하나 

아내는 걱정하지 말라고 잘될 거라고 말했다.


아내는 나귀를 타고 한 달음에 갈멜산으로 갔고

엘리사는 멀리서 오는 그녀를 보고 게하시에게 

달려가 그녀를 맞아들이고 평안을 물으라 하여 그리하니

여인은 가족은 모두 평안한다고 답을 했다.

여인은 산 위에 이르러 엘리사의 다리를 부둥켜안았다. 

게하시가 그 여인을 밀어내려고 다가가니, 엘리사가 말하였다. 


엘리사 : “그냥 두어라. 부인에게 무언가 마음 아픈 일이 생겼다. 

여호와께서 그 일을 나에게 감추시고 알려주시지 않으셨구나.”


수넴여인 : “주여, 제가 아들을 달라고 했습니까? 

제가 ‘저를 속이지 마십시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엘리사 : 게하시여, “허리를 졸라매고 내 지팡이를 가지고 달려가거라. 

도중에 누구를 만나더라도 인사하지 말고 

누가 인사하더라도 대꾸하지 말며, 

가서 내 지팡이를 아이의 얼굴 위에 놓아라.”


수넴여인 : (언성을 높이며)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저는 결코 선생님을 놓지 못하겠습니다.” 


언쟁이 끝나고 결국 엘리사는 수넴여인을 따라 나섰고 

먼저 떠난 게하시는 엘리사의 말대로 엘리사의 지팡이를 얼굴에 놓았다. 하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엘리사에게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도착한 엘리사가 들어가 보니 아이는 그의 침대에 죽은채 누워있었다.

엘리사는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여호와께 기도했다.

그는 침대에 올라가 아이 위에 엎드렸다. 


그리고는 자기의 입을 아이의 입에, 자기의 눈을 아이의 눈에, 

자기의 손을 아이의 손에 포개었다. 이렇게 아이 위에 엎드리자 

아이의 몸이 따뜻해지기 시작하였다.


엘리사는 일어나서 방 안을 이리로 한 번, 저리로 한 번 걷고 나서 

다시 침대에 올라가 아이 위에 엎드렸다. 

그러기를 일곱 번 거듭하자 아이가 재채기를 하면서 눈을 떴다.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수넴 여인을 들어오라고 일렀다. 

여인이 오자, 선지자는 아들을 데리고 가라고 말하였다.

여인은 선지자의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 아들을 데리고 나갔다. (8-37)


[참조]

히브리서 11장이 믿음의 영웅들을 소개할 때 이 수넴 여인을 언급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 들이기도 하며”(히 11:35). 

이것은 구약 성경에서 사렙다 과부와 수넴 여인에게만 해당될 수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셨지만, 여인은 이 믿음의 시험에서 승리했다. 

불신앙이 편만하던 시대, 북왕국 이스라엘에 이런 귀한 믿음의 여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지금 이 시대에도 불신앙의 태도가 온 교회에 만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우리 신앙의 나태함에 대한 핑계가 되지 못한다. 성경은 이 여인을 증인으로 

우리 앞에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사는 길갈로 되돌아갔다. 

그 곳은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들을 데리고 사는 곳이었다. 

그때 마침 거기에는흉년이 들어 있었다. 

엘리사가 시종에게 말하였다. “큰 솥을 걸고 형제들이 먹을 국을 끓여라.”

들에 푸성귀를 뜯으러 나갔던 사람들 중 하나가 들

포도덩굴을 만나 옷자락에 가득 뜯어 가지고 돌아와서 

무엇인지도 모르고 썰어 국솥에 넣었다.

그 국을 먹으라고 떠주자, 국맛을 본 사람들이 급히 소리쳤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 안에 독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국을 먹지 못하고 있는데,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이르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독이 없어졌다(38-41).


어떤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 왔다. 

그는 첫 수확한 것으로 구운 보리빵 20개와 

햇곡식을 자루에 넣어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져왔다. 

엘리사는 그것을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먹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자가 “어떻게 이것을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엘리사가 다시 말하였다. “이 사람들이 먹도록 나누어주어라. 

여호와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니, 

과연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이 먹고도 남았다(42-44).


불임과 흉년은 언약을 떠난 백성들에게 내리는 저주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 나타나는 엘리사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희망과 회개의 메시지다.


또한 이 어려운 시기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할 

선지자의 제자들은 이 사건을 통하여 사람이 사는 것은 

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에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했다.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필요를 공급하신다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엘리사의 기적은 신기한 능력에 대해 주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경건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나타난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초대교회 역시 유대인들과 거짓교사들의 핍박, 

헤롯과 로마제국의 압제 아래 살면서

성령님의 놀라운 능력과 은사를 경험하였지만

그것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이들을 도우니

교회 가운데 핍절한 자(가난한 자, needy people)이 없었다고 증언한다.


[사도행전 4:30-35]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34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5

아람(시리아)왕의 군대장관 나아만, 한센씨 병에 걸리다.

이스라엘 출신의 포로소녀, 나아만의 하녀

여주인에게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를 만나 병낫기를 추천

소녀의 말을 들은 나아만, 입궐하여 왕에게 이스라엘 왕을 청하다.

나아만은 왕의 선물을 가지고 길을 떠나 이스라엘로 가다.

나아만은 이스라엘 왕에게 아람왕의 친서를 전달.

이스라엘 왕은 아람왕이 트집을 잡으려고 

이런 환자를 보냈다고 판단하여 화를 냈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란 말인가?”


엘리사가 이 소문을 듣고 나아만을 보내달라고 함

그러면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다.

나아만은 엘리사 집으로 갔고 엘리사는 그에게 이렇게 명한다.


“가서 요단 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시오. 

그러면 당신의 피부가 회복돼 깨끗해질 것이오.”


나아만은 엘리사의 명령에 역정을 내고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이 엘리사의 명령은 

어려운 것이 아니니 흥분하지 말고 한 번 시도해보라고 격려한다.

이에 나아만이 선지자의 말대로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고나니

그의 피부가 어린아이처럼 회복되었다.


[참조]

아람의 군대장군 나아만을 치료한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본 백성들이 말씀을 받지 않을 때에 이방인이 도리어 구원을 받는다는 것도 보여주었습니다. [땅 위에 아로새겨진 하늘나라, 강현복, 228] 


[누가복음 4:27-30]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이방인보다 못한 믿음과 순종을 책망하시는 예수님이 나아만을 예로 드신 것은 나아만의 믿음을 칭송하여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당시의 자칭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엘리사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바 없다고 하신 것이다. 


나아만은 다시 엘리사에게 찾아가 이렇게 말하며 감사를 표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밖에는 온 세상에 신이 없습니다.

소인이 감사하여 드리는 이 선물을 부디 받아주십시오.”


하지만 나아만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선물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나아만은 한 가지 요청을 한다.


“진정 받지 못하시겠으면, 이 한 가지 청만은 들어주십시오. 

이제부터 저는 여호와 외에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나 희생제사를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 흙을 주십시오.

그러나 한 가지 여호와께 용서를 빌 일이 있습니다. 

저는 왕께서 림몬 신전에 예배하러 가실 때에 부축해 드려야 하고 

왕께서 림몬 신전에서 예배할 때 같이 엎드려야 합니다. 

이것만은 여호와께서 용서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엘리사는 놀라운 그의 고백을 듣고 걱정말고 평안히 가라고 했다.

그런데 게하시가 욕심이 나서 

나아만에게 무엇인가를 받아내야 겠다고 결심하고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 거짓말로 은 1달란트와 옷 두벌을 요구했고

나아만은 그에게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었다.


돌아온 게하시는 그 선물을 몰래 숨겨두었다.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어디 다녀왔늕 물었으나 

그는 아무데도 다녀오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엘리사는 거짓말 하는 그를 엄하게 꾸짖고는

나아만의 병이 그에게 옮겨질 것이라고 저주하자 그렇게 되었다.


엘리사는 지금이 선물을 받을 때냐고 물었다. 

하나님이 나아만을 고치신 것은 선지자의 노력과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임을 증거한 것이었기에 그는 제자에게 단호한 징계를 내린다.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증거하고 나누는 일에 대가를 바라는 것은 악한 일이다. 거짓 선지자나 이방의 제사장들이나 하는 일과 다름 없는 것이다.


[고린도전 9:12]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서 거두어갈 권리를 가졌다면 우리에게는 권리가 있지 않겠습니까그러나 우리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참고 지냈습니다.


6장

선지자 학교가 늘어나는 제자들로 증축이 불가피 해진다. 엘리사와 제자들은 건축을 위한 나무를 하러 요단에 갔다. 나무를 베던 제자 중 하나가 쇠도끼를 물에 빠뜨려 낭패에 빠져있자 엘리사는 도끼가 떨어진 자리를 묻더니 거기에 나뭇가지를 집어 넣었고 그러자 도끼가 떠올랐다 (1-7).


[참조]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이런 권능을 주신 이유는 그가하나님의 사람”(6)임을 입증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타락한 이스라엘로 하여금 엘리사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진노 가운데서도 긍휼을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말씀의 사람의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훈함을(딤후 3:16) 통해 자신의 자비와 오래참음을 드러내십니다. 


아람(시리아)왕이 북왕국과 싸우며 신하들과 의논하여 작전을 세우고 매복을 하고 기다리는데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에게 매복지역을 알려주고 왕은 그의 말을 따라 그 지역을 특별하게 경계한다. 마음이 불안해진 아람왕은 신하들을 불러모아 자신들 가운데 북왕국의 왕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고 추궁했다. 신하 중 하나가 은밀한 중에 의논한 전략이 새나간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선지자 엘리사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자 아람왕은 도단에 있는 엘리사를 사로잡아 오라고 명령하여 도단성을 수많은 병사들로 에워싼다 (8-14).


선지자의 시종이 아침 일찍 이 광경을 보고 엘리사에게 달려가 대책을 강구했다. 그러나 엘리사는 담담히 “두려워 말라 우리 편이 저희 편보다 많다.”고 하며 하나님께 시종의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한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 시종의 눈을 열어 불말과 불병거 부대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싼 것을 보았다(15-17)


눈을 열어 여호와의 군대를 보여주시는 장면은 창세기 32장에서 형 에서를 만나기 두려워 하던 야곱에게 하나님의 군대(마하나임)을 보여주시던 장면과 겹친다. 

상황과 환경 앞에 두려워 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힘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그들의 믿음의 눈을 열어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과 그분의 손길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낙심과 절망 가운데 걸어가던 제자들과 길에서 동행하시며 말씀을 풀어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영안을 열어주시던 주님의 손길과 흡사하다.


아람군대가 엘리사에게 쳐들어 오자 엘리사는 다시 여호와 하나님께 “저 무리의 눈을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셨다. 이에 엘리사는 눈이 보이지 않아 우왕좌왕하던 그들을 사마리아로 유인한다. 그들이 사마리아에 입성할 때 다시 엘리사는 “이 무리들의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자 그들은 비로서 자신들이 사마리아 성 한 가운데 있음을 알게 되었다(18-20).


북왕국의 왕은 엘리사에게 저들을 쳐 죽일지 묻고 엘리사는 그러지 말고 잘 먹여 아람왕에게 돌려 보내라고 했다.왕은 엘리사의 말대로 했고 이후로 아람 군대는 다시 이스라엘에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되었다(21-23)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아람(시리아)왕 벤하닷이 그의 온 군대를 이글고 사마리아를 에워싸 포위했다. 포위된 사마리아 성은 생필품의 가격이 무섭게 치솟아 올랐다. 그때 이스라엘 왕이 성벽을 따라 걷는데 한 여인이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왕은 여호와께서 돕지 않으시는데 내가 무슨 수로 너를 돕느냐고 하며 무슨일로 그러냐고 물었다. 


그러자 여인은 지금 성내에는 먹을 것이 없어 자기 자식을 죽여 인육을 먹는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났는데 함께 그녀의 자식의 인육을 먹고 자기 자식의 인육도 약속한 상대방이 자기 자녀를 내어놓지 않아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다.  


[참조] 

이러한 비참한 상황은 단순히 국력이 약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과 언약의 말씀을 버리고 산 까닭에 찾아온 언약적 저주이다.


[레26:14-29] 14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치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며 15 나의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나의 모든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할찐대 16 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것이요 너희의 파종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 17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 ……. 23 이런 일을 당하여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를 대항할찐대 24 나 곧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 죄를 인하여 너희를 칠 배나 더 칠찌라. 25 내가 칼을 너희에게로 가져다가 너희의 배약한 원수를 갚을 것이며 너희가 성읍에 모일찌라도 너희 중에 염병을 보내고 너희를 대적의 손에 붙일 것이며 26 내가 너희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 27 너희가 이같이 될찌라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찐대 28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 죄를 인하여 칠 배나 더 징책하리니 29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을 것이요 딸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왕은 기가막힌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옷을 찢어 슬픔과 비참을 표현했는데 지나가는 백성들은 찢어진 왕의 겉옷 사이로 속에 굵은 베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27-30)


왕은 오늘 중으로 엘리사의 목이 날라가지 않으면 자신이 천벌  그 이상의 벌을 받을 것이라고 엉뚱한 원망과 분노를 터뜨린다.

그때 엘리사는 자기 집에 있었는데 왕이 자신을 잡아 죽이러 누군가를 보냈음을 감지하고 문을 굳게 잠구어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과연 왕의 사자가 와서 왕의 말을 전달했다. 이렇게.


“보아라, 이 재앙을 여호와가 내렸다. 

그런데 이제 내가 여호와께

무엇을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이냐?”


곤고할 때는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왕은 엘리사를 통하여 수많은 이적을 체험했지만 곤고해지자 하나님과 엘리사를 저주하는 자리까지 간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일이 잘 될 때는 엘리사를 ‘내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곤고해지자 그 입으로 하나님과 엘리사를 저주한다. 곤고해질 때야말로 하나님께 제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다.


7장


#남(南)왕국


#북(北)왕국

엘리사를 통해 내일 이맘때,고운 밀가루 한스아에 1세겔, 

보리 두스아를1세겔 하리라는 예언이 주어짐

의심 하는 왕의 장관을 저주함

나병환자 네사람-하나님이 큰병거 소리를 듣게하심

아람 군사들의 도주를 목격하고 왕궁에 전함

엘리사의 예언이 실현됨



8장


#남(南)왕국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다

여호사밧은 이세벨과 결혼 후 아합의 길을 가다

에돔과 립나가 유다를 배반하다

아달랴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다

하사엘과 전투중에 부상당한 북왕 요람을 병문안간 아하시야


#북(北)왕국

7년 기근을 피해 블레셋에서 돌아온 수넴여인이 기업을 되찿음

다메섹을 방문한 엘리사

벤하닷의 병에 대하여 묻는 하사엘

하사엘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심하게 괴롭게 할 것을 예언하며 눈물을 흘림

하사엘이 벤하닷을 살해하다.



9장


#남(南)왕국


#북(北)왕국

엘리사가 제자에게 길르앗 라못의 예후에게 기름부으라 지시함

아합의 온 집안을 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

무리들이 예후를 왕으로 추대함

이스르엘에 누워있는 요람을 예후가 찿아감

마중나온 요람을 예후가 죽여 나봇의 밭에 던짐

아하시아도 죽임

이세벨을 죽임




10장


#남(南)왕국

예후가 아하시야 왕의 형제들 42인을 살해하다


#북(北)왕국

예후가 아합의 아들 70명을 죽임

귀족과 신하들과 제사장을 죽임

바알 선지자와 모든 제사장을 모아서 모두 죽임

바알 신당을 헐고 화장실로 만듦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 우상은 근절치 못함

하지만 예후는 북이스라엘에서 유일하게 여호와께 칭찬받은 왕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됨

예후의 4대까지 왕위허락,  28년째 사망

여호나답 (요나답, 렘 35장 참조)



11장


#남(南)왕국

아합의 딸 아달랴(여호람과 결혼, 남왕국 7대왕이 되려함) 집권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요아스를 6년간 숨겨키움

제사장 여호야다의 반란과 개혁

아달라 척결 바알 제사장 맛단을 죽임

요아스 7세에 왕위 등극


#북(北)왕국



12장


남(南)왕국

요아스가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다

요아스가 성전을 수리하다

말년에 우상숭배에 빠짐

아람왕 하사엘의 침입에 성전과 왕궁의 금을주어 돌려 보냄

밀로궁에서 신하들에 살해 됨

아마샤가 집권하다.


#북(北)왕국



13장


#남(南)왕국


#북(北)왕국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 17년 집권

여로보암의 길로 가다

아람의 하사엘, 북왕국 점령 [마병50,병거10대,보병1만명만 남김]

사사시대처럼 위기때만 여호와를 구함

요아스16년간 집권

여전히 여로보암의 길로 가다

엘리사 말년에 요아스 문병옴

화살로 땅을 치게하매 요아스가 3번침

대여섯번을쳐 아람을 진멸하지 못하게 됨을 한탄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 때에 요아스가 빼앗긴 영토를 회복함

요아스가 죽고 여로보암 2세 등극

엘리사가 죽다 (이스리엘의 병거와 마병이 떠나다)



14장


#남(南)왕국

북왕 요아스2년에 아마샤가 유다의 왕이됨-29년 통치

아마샤가 에돔을 정벌하다.

아마샤 왕이 북왕국 요아스에 도전하나 전쟁에 패하다

벧세메스 전투에서 사로잡힘

예루살렘 성벽400규빗헐고, 탈취, 포로들

예루살렘에서 반역이 일어나 라기스에서 반역자들이 아마샤 죽임

아사랴, 16세에  집권


#북(北)왕국

요아스 왕이 죽다

북왕국 여로보암2세 즉위 41년 통치

기이한 번영을 이루다

여로보암의 길로 가다

여로보암이 죽고 스가랴가 등극



15장


#남(南)왕국 

아사랴, 16세에  집권

아사랴(웃시야)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다.

하지만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백성들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림

제사장 만이 분향할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분향 하려다가 문둥병 에 걸려 

남은 생을 별궁에서 홀로 보내고 

아들 요담이 대리청정을 하였다.


아사랴가 죽고 요담이 15세에 왕이 되다.

요담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다. 16년 통치

하지만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백성들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림

그러나 성전의 윗문 건축

하나님이 아람왕 르신과 베가로 하여금 유다를 치게 하심 

요담이 죽고 아하스가 왕이 되다.


#북(北)왕국

스가랴가 왕이 되어 6개월간 다스리다.

스가랴가 여로보암의 길로 가서 백성들도 죄에 빠지다.


살룸이 반역을 일으켜 

스가랴를 죽이고 왕이 되어 한달동안 다스리다

예후에게 주신 예언대로 4대만에 왕조가 끝나다.


므나헴이 반역을 일으켜 살룸을 죽이고 왕이 되어 10년 재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평생 여로보암의 길로 걸음

앗수르왕 불이 침략하자 므나헴이 은1000달란트를 주어 돌려보냄


므나헴이 죽고 

아들 브가히야가 등극 2년 통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평생 여로보암의 길로 걸음


베가가 반역하여 브하기야를 죽이고 왕이되다. 20년 통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길로 걸음

앗수르왕 디글랏 벨레셀이 이스라엘의 많은 지역을 치고 포로를 잡아감

호세아가 베가를 죽이고 왕이됨



16장


#남(南)왕국

아하스가 20세에 요람의 대를 이음, 16년간 통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않음

그의 치세 하에서 유다는 여호와께서 쫓아낸

가나안 족속의 악습에 깊이 물들어 있었으니

그는 북 이스라엘의 모습을 모방하여 

바알 우상을 만들어 섬겼고

힌놈의 골짜기 에서 우상에게 분향도 했다.

심지어 그의 맏아들을 왕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몰렉신에게 바치기까지 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친(親) 앗수르 정책을 펴서 

세상의 힘을 의지하는 비 신앙적인 모습을 보였다.

아람왕 르신과 북왕 베가의 침입때 

아하스가 앗수르왕 디글랏 벨레셀에 도움을 요청

성전에 있는 기명들을 뇌물로 바침

앗수르왕이 아람왕 르신을 죽이고 다메섹 점령

아하스가 다멕섹으로 감

아하스가 앗수르의 제단에 감명받고 그것을 모방하여 

제단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제작명령

그곳에서 제사를 드림

그는 성전의 물두멍을 옮기고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놓고 

앗수르 왕을 두려워 하여 

낭실을 여호와의 성전 안으로 옮김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징벌을 내리셔서 

이스라엘 왕 베가와 다메섹 왕 르신에 의해 

유다 군사 12만 명이 죽게 하시고 

백성 20만 명이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다.


아하스가 죽고 히스기야가 왕이 됨



#북(北)왕국




17장


#남(南)왕국

유다왕 아하스12년



#북(北)왕국

호세아 집권, 9년통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이전 왕과 같지 않음

앗수르왕 살만헷셀이 침공, 종이 되어 조공바침

호세아가 앗수르왕 살만헷셀을 배신하여 보복 침략 당함

호세아 감금하고 3년간 사마리아 포위

호세아 9년, 앗수르왕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앗수르로 포로로 끌고가서 

인근 동방 여러 나라로 흩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죗값을 치르다(7-23)

불순종과 가증한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이 심히 노하심

유다 나라마저 북 이스라엘의 길을 따라감

분단국가가 되고 여로보암의 길로 감

선지자 보냈으나 듣지않고 살다가

앗수르에 의해 망하게 되다.

앗수르 족속이 사마리아로 이주하여 살다.

여호와의 진노로 이주민이 죽자 

전에 사마리아에서 잡아간 제사장 하나를 파송 

벧엘에 거주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가르침

그러나 각 민족이 각 지역마다 

자기 신상들을 세우고 산당을 짓고 거기서 제사지냄

그러면서도 희한하게도 여호와를 경외하여 

아무나 제사장으로 삼아 자기를 위해 제사를 드리게 함

이상하고 괴이한 혼합주의가 깊이 정착됨


[참조] 혼합주의(syncretism)

노골적인 우상숭배보다 혼합주의가 훨씬 더 악한 영향력이 크다

말씀을 벗어난 종교적 열정과 정성을 강조하고 

예배자의 욕망을 해결해주는 것을 약속하는 기복적 종교이다.

현대 예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청중들의 종교적 감수성이 더 중요한 요소로 취급되는 경향

말씀이 실종되고 사람들의 감수성만 극대화하고 있다. 

한국교회에 가장 뿌리 깊은 혼합주의는 물질 만능주의다. 

노골적으로 부(富)를 삶의 핵심으로 선전한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그분의 요구보다 

우리의 성공, 위로, 성취를 위해 일하는 하나님으로 

하나님에 대해 증거한다.


18장


#남(南)왕국

25세의 히스기야 29년을 통치함.

히스기야는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제거. 

모세가 만든 놋뱀우상[느후스단]을 깨뜨림

그는 유다 왕국의 역사에서 

그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한 왕이 없었다는 평가받음(왕하 18:5).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

저가 앗수르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다

아버지 아하스때 빼앗긴 블레셋 지역 수복


히스기야 왕 14년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침공

히스기야가 화친을 요청하자 

앗수르왕이 은 300달란트, 금 30달란트를 요구함

히스기야가 성전의 은과 금을 긁어모아 바침

앗수르 왕이 다르단, 랍사리, 랍사게로 예루살렘을 치게 함

랍사게가 유다나라 말로로 여호와를 빙자하여 유다백성을 회유함

유다나라가 애굽을 의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고

자신들이 쳐들어 온건 여호와의 뜻이며 명령이라고 함

22,30절에서는 여호와 신앙에 근거한 히스기야의 명령을 조롱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고 백성을 회유함

하지만 백성들은 왕의 명령을 따라 잠잠하고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음


#북(北)왕국

히스기야 4년, 호세아 7년, 

앗수르 살만에셀왕이 침공 사마리아 포위

호세아 9년, 사마리아 함락, 포로를 앗수르로 데려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결과로 일어난 일(12)


[참조] 이사야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증조 할아버지 되는 웃시야의 사촌

요아스 임금의 손자로 왕족으로서 주로 궁정에 출입하며 왕을 지도

웃시야왕 말년 ~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절에 활동 (사 1:1)

동시대에 활동한 선지자로 미가가 있다. 


[이사야서 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그런데 히스기야의 탁월한 개혁정책에도 불구하고

이사야 1장을 보면 당시의 혼탁한 종교에 대해 맹렬히 비판한다.

히스기야가 종교개혁을 한다고 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소돔과 고모라에 비견되었다(이사야서 1:9-10)

그렇게 말할 만큼 고쳐지지 않은 부패와 죄악이 

그 사회에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공경하는 일에 대해서 훨씬 잘 알았고 

그가 아는 데까지는 철저히 개혁을 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흘러 내려온 그 무서운 전통과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려는 경향은 고쳐지지를 않았다. 

그것이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것인가도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참조] 히스기야 시대의 개혁이 온전하지 못했던 이유

정당하고 바른 신관을 가지지 못하고 

항상 여호외에 대한 생각이 편협하고 

공리적인 데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예수를 10년 믿었어도 

하나님께 대한 생각이 커지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안에서만 ‘하나님 하나님’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그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좁고 공리적이고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유디모니즘(eudaemonism, 행복주의) 에서 안 떠나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크신 뜻을 깨닫고 행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것이 그때 유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상태입니다.

[이스라엘 열왕의 역사 4, 김홍전, 114]



19장


#남(南)왕국

히스기야 왕이 소식을 듣고 애통하며 성전으로 들어갔고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내 중보기도 요청

이사야가 사람들을 시켜 아래와 같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함


‘’나를 모욕하는 말로 인하여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셨느니라‘’


라기스에서 돌아가던  앗수르 왕은 립나에서 전쟁중

구스왕 디르하가 병사를 일으켰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한 번 더 히스기야를 협박하고 회유함 


이에 여호와 앞에 

앗수르 왕의 편지를 펴놓고 기도하는 히스기야 (14-19)

이사야가 사람을 보내어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전함(20).

그 내용은 

앗수르에 대한 책망과 정죄의 선포(21-28).

그리고 유다 구원의 징표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란것을 먹고, 

내년에는 거기서 난 것을 먹되,

삼년에는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

남은 자는 예루살렘으로부터

피하는 자는 시온으로부터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 (29-31)


여호와의 응답대로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이 여호와의 사자의 손에 

창졸간에 죽고 산헤립왕도 앗수르로 돌아가 적들의 손에 죽다(32-37).


이 사건으로 인해 시편 46편이 쓰여졌다


46 〔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알라못에 맞춘 노래〕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3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찌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 

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5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6 이방이 훤화하며 왕국이 동하였더니 

저가 소리를 발하시매 땅이 녹았도다.  

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찌어다 

땅을 황무케 하셨도다. 

9 저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20장


#남(南)왕국

히스기야 병들어 죽게 되자 

하나님께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통곡하며 간구 (이사야 38장)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여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15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이에 무화과 반죽을 이사야가 환부에 발라 치료함

히스기야 수명 15년 연장약속 

그 징표로 아하스의 해시계의 그림자를 10도 물러가게 하심


히스기야가 기적적으로 병올 회복하게 되자 

바밸론에서 왕 브로닥 발라단이 

그의 회복을 축하해주기 위해 사절단이 왔다. 

히스기야는 그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올 억누르지 못한 채 

기세등등한 세상 권력의 대표자들 앞에서 

그만 자신의 영광올 과시하였다. 


[역대하 32:25-26] 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26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거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저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니라.


[역대하 32:31]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그 때에 이사야가 히스기야의 불신앙적 태도를 꾸짖으면서 

바밸론은 언젠가 유다를 함락시켜

보여준 재물을 다 빼앗기고 

그 거민들올 포로로 잡아갈 것임을 예언하였다.(17-18)


하지만 히스기야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자기의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은 평화와 안전이 계속되리라고(19)

이 부분은 영어성경을 보아야 뉘앙스가, 히스기야의 어리석음이 제대로 드러난다

For he thought, “Why not, if there will be peace and security in my days?” [ESV]

For the king was thinking, “At least there will be peace and security during my lifetime.” [NLT]


히스기야가 죽고 므낫세가 왕으로 즉위(22)



21장


#남(南)왕국

12세에 왕이 된 므낫세

유다 왕들 중에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다(55년).

므낫세는 히스기야의 개혁을 무색하게 할 만큼

요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다시 여로보암의 길로 간 왕이었다. 

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아합을 따라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일월성신을 숭배했다.

하나님의 성전에 이방신을 위한 제단을 쌓고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으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장래의 모든 일을 친히 통제하시는 

여호와의 대권에 크게 저촉되는 악이다. 

그런고로 여호와의 노를 격발시켰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가 직접 만든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웠다.

므낫세의 악행으로 온 백성이 꾀임을 받아 악을 행한 것이

하나님이 멸하신 이방족속보다 더 심하였다.(9)

그래서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심판예고(10-15)


[대하33:10-11]  “....저희가 듣지 아니한고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장관들로 와서 치게 하시매 저희가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간지라.”


이 일을 겪자 므낫세는 하나님께 회개했고, 하나님께서 용서하셔서 예루살렘에 돌아가 다시 왕위에 거하게 하심 [역대하 33:12-13절]

이때부터 성을 든든히 쌓아 나라를 방위하고 이방 신들과 여호와의 전의 우상을 제하고 여호와의 단을 중수, 제사를 드림 [역대하 33:14-16절]

므낫세는 회개했어도 잠시동안이었다.  따라서 유다 전체로 보자면, 히스기야 왕 29년, 므낫세 55년, 아몬의 2년이 악한 시기였더라도 이후 요시아의 종교개혁이(31년 치리) 있으므로 거의 100년 이상을 선정을 베풀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므낫세의 통치 대부분이 악, 50년 이상 암흑기였다.


[참조]

그러면 선정의 효과는 아주 없는 것인가? 어떤 왕이 당대에 임금 노릇을 하면서 선정을 베푸는 동안에는 그만큼이라도 백성들이 받을 큰 위험에서 모면을 받고 나가는 것입니다. 당대의 선정으로 역사를 어떻게 전회시키지는 못하지만 그 시기만이라도 여호와의 긍홀하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열왕들의 역사 4, 김홍전, 171]



므낫세가 죽고 그의 아들 아몬이 왕으로 등극.(18)


므낫세의 아들 아몬 22세에 왕이 되어 2년간 재위

그 역시 아버지 므낫세의 길로 행하여 악을 행함

그의 신하들이(반 앗수르당) 반역하여 궁중에서 아몬왕이 피살되고 

국민들이 반역자들을 처단하고 아몬의 아들 8살 요시아를 왕으로 추대(26)



22장


#남(南)왕국

8세에 왕위에 오른 요시야 31년간 재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치우치지 아니함


그의 출생은 이미 북왕국의 여로보암왕이 

악행을 구가할 때 예고된 출생 


[왕상 13:1-3] 1 보라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2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3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


16세에 다윗의 하나님을 구하기 시작

재위18년 그의 나이 26세 때에 

성전재건을 위해 모금을 하던 중에

대제사장 힐기야가 하나님의 성전에 있던 연보궤에서 율법책을 발견


[참조] 왜 율법책이 성전 연보궤(헌금함)에서?

우상숭배가 가득하던 시절, 율법책들도 보이는 대로 다불살라 버리는 지경이니까 어떤 제사장이 되었든 누군가 성전 안에 그것을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생각 끝에 성전에 들어가면서 연보를 넣는 연보궤 속 맨 밑에다 감추고 덮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 속에 율법책이 들어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했는데 마침 거기다가 연보한 연보를 쓰려고 꺼내다가 발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열왕들의 역사 4, 김홍전, 182]


서기관 사반이 왕 앞에서 울법책을 낭독함

요시야가 율법의 말씀을 듣자마자

자기의 옷을 찢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다

요시야는 신명기로 보이는 이 책의 내용에 깊은 감명올 받았다. 

그때에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이 

율법올 어기고 생활하는 것에 분노하신다는 것올 깨닫게 되었다.


여선지자 훌다가 이르기를

하나님의 심판이 언약대로 임할 것이라고 하고

요시야에게는 이렇게 말씀을 전한다


[열왕기하 22:19-20] 

19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20 그러므로 보라 

내가 너로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 눈이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말씀과 하나님 앞에서 그의 겸비함으로 인해 

재앙은 임하나 그의 당대에는 보지 못하리라고 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남유다의 운명은 바뀌지 않았다. 

므낫세의 오랜 통치기간 동안 남유다의 영적 상태는 

재건이 불가능할 정도로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참조] 어떻게 악한 아버지 왕 밑에서 이런 왕이?

왕권을 행사할 만한 능력이 없는 여덟 살 먹은 요시야를 법제상 임금으로 세웠으므로 구체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권의 행사는 아마 요시야를 보호하고 가르치던 어떤 사람이 하였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기록에 없고 또 어떤 직에 있었던 사람인지도 알 수 없으나 생각건대 제사장일는지도 모릅니다. 요시야가 나중에 아주 훌륭하게 이스라엘의 거룩한 법전을 충성스럽게 지키고 살아가려고 애를 쓴 일생의 업적을 생각해 볼 때 그런 추측도 가능합니다. 아버지의 영향은 매우 나빴는데도 그가 하나님올 두려워하고 공경하며 열심으로 섬긴 것올 보면 그를 보호하고 지도한 선생이 대단히 좋은 사람으로서 잘 가르친 것 같습니다. 그의 선생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의지하여 섬기는 거룩한 도리를 어린 임금에게 가르친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열왕들의 역사 4, 김홍전 180]



23장


#남(南)왕국


요시야왕의 종교개혁

유다와 이스라엘이 모든 장로들을 모으고 

모든 백성, 선지자, 제사장이 성전으로 함께 올라가 

율법을 낭독하게 하고 함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 앞에서 온 백성과 함께 언약을 갱신하고

온 백성이 지켜 행할 것을 맹세하다(1-3).


요시야는 그 때까지 온 유다에 편만했던 

우상숭배의 잔재를 다 훼파한다(4-20).


1) 왕의 선언,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라.”(왕하23:3)


2) 바알, 아세라, 일월성신을 위한 모든 기명을 여호와의 전에서 내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름(왕하23:4)


3) 유다 왕들이 세운 산당 제사장, 바알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모두 폐하고, 여호와의 전의 아세라 상을 기드론 시내에서 빻아 가루로 만들고, 여호와의 전 중에 있던 미동의 집을 헐었다(5-8절).


4) 전국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와 전국의 산당을 더럽히고, 힌놈의 골짜기를 더럽혀 사람들이 자녀를 불사르지 못하게 함(10절)


5) 유다 왕들이 태양을 위해 드린 말들을 제하고(11절),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11절), 아하스의 다락지붕에 세운 단, 므낫세가 여호와의 전 마당에 세운 단들을 다 헐고(12절), 솔로몬이 시돈의 아스다롯과 그모스를 위하여, 밀곰을 위하여 세운 산당을 더럽힘(13절)


: 이 부분들을 읽어보면, 유다 열왕들 중 개혁을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이 있었지만, 이 백성들이 얼마나 우상숭배에 쩔어 있었고, 또 왕들이 얼마나 많은 곳에서 배역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참으로 놀랍다!



요시야가 백성들에게 명하여 유월절 지키게 함

사사 시대 ~ 지금껏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적이 없었다고 한다(21-23).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다.”(대하35:18) 19절에 이 때가“재위 18년이라고 나옴”즉 4.1)의 성전수리 때와 시기가 같다.


또한 요시아는 신접한 점쟁이와 

드라빔, 우상,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함

율법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평가(24).


[열왕기하 23: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하지만 므낫세로 인해 

유다를 향해 내리시는 하나님의 진노는 취소되지 않고

유다 역시 북왕국처럼 망하고 성전도 버리시리라고 하심(26-28).


애굽왕 느고가 이끄는 애굽군대가 앗수르를 치고자 올라와서

요시야가 므깃도에서 만나 싸우나 애굽왕이 그를 죽임.

요시야는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간 

다윗 왕가의 마지막 인물이었다.


백성들이 요시아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움

여호아하스가 23세에 왕이 되어 고작 3개월간 다스림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함

에굽 왕 느고가 그를 립나에 가두고 폐위시키고 

애굽으로 끌고갔고 결국 거기서 애굽에서 사망


애굽왕 느고는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여호야김으로 개명시킨 뒤 왕으로 세움.

여호야김은 25세에 왕이 되어 11년간 재위

그는 바로가 요구한 금과 은을 바치기 위해 

전국에 세금을 부과, 백성들 한 사람 한사람에게 

그들의 재산의 정도에 따라 세금을 거두어 바로에게 바침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일삼으며 살았다.



24장


#남(南)왕국

여호야김이 3년간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을 섬기다 배반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침략

여호야김 비참하게 죽음
그 시체는 낮에는 햇빛을 받고 밤에는 추위에 방치된 채 

아무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이 굴러다니다가 

나중에 사람들이 시체 썩는 것이 싫어서 

나귀 한 마리를 묻듯이 길가에다 묻었다. 

이것은 예레미야 22: 18-19, 36:30에 나오는 

그의 죽음에 대한 예언이다.

이는 하나님이 므낫세의 악정 때문에 하신 징계가 임한 것


여호와김 죽고 여호야긴이 18세에 왕으로 등극 석달간 재위

여호야긴 역시 아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길로 행함

애굽은 바벨론의 강성함으로 인해 자기영토 밖에 나오지 못함


여호야긴 통치 때 느부갓네살이 침공하자 항복함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다.

여호야긴과 그의 어머니, 왕비들 내시들, 권세 있는 자들

모든 백성, 모든 지도자, 모든 용사,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 데려감

본토에는 비천한 자(the poorest people)만 남음


바벨론 왕은 여호야긴의 삼촌인 맛다니야를 

시드기야로 개명하여 그가 21세에 왕으로 세웠다

그는 여호아하스왕의 동생이다 

그는 11년간 재위했는데 그 역시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그는 바벨론 왕을 배반한다


헤겔의 말마따나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 말을 왕들은 입증하며 산 것같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주 “기억하라”고 하셨나 보다.


특별히 시드기야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올 가지고 경고하여도 그 앞에서 겸비하지 않았다.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마음올 수그리고 겸손해야 할 터인데 

거절하는 교만한 태도를 취하였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큰 재난도 받고 징계도 받으며 

괴롬 가운데 있을 때는 왜 그러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시편 107:10-11] 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1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10 Some sat in darkness and in the shadow of death, prisoners in affliction and in irons, 11 for they had rebelled against the words of God, and spurned the counsel of the Most High.


25장


#남(南)왕국

시드기야 재위 9년째 

시드기야의 배신으로 바벨론과의 전쟁이 일어난다.

2년간 포위된 예루살렘 성 안에 기근으로 백성들은 굶주려 죽게 되고
적군에 의해 성벽은 뚫려서 왕은 도망을 가나 곧 사로잡힘 

바벨론 왕은 그를 심문하고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두 아들을 죽이고 그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묶어 포로로 끌고 감 (1-7).


성전과 왕궁과 성벽이 불타고 훼파됨

성전 물품을 바벨론으로 약탈해 가다.

바벨론으로 유다 사람들이 또 포로로 끌려가다(8-2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사반의 손자 그달리야를 총독(감독관)으로 세우다

그달리야가 갈대아인을 섬기기를 두려워 하지말고 

이 땅에 살며 바벨론 왕을 섬기라고 말하자  

왕족인 이스마엘 무리가 그와 갈대아 사람들을 죽이자

모든 사람이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가다(22-26).


바벨론 에윌므로닥 왕이 즉위한 원년이 되는 해에

37년 만에 여호야긴이 옥에서 풀려나와 후대받음(27-30).


[참조]

열왕기서는 포로 중에 있는 여호야긴이 

바밸론의 새 왕의 즉위와 함께 풀려난 기사로 끝나고 있다. 

이렇듯 다윗의 계보는 소멸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게 된다. 

하나님째서는 다윗과의 약속올 신실히 지키셨다. 

열왕기서는 참된 선지자이시며 “이스라엘의 왕권”올 회복시키실 왕께서 

포로 기간 이후에 오실 것올 말하고 있다. [반더발 성경연구 1, 코넬리우스 반더발, 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