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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BOOKS BREAD/BIBLE

성경통독 365_역대기하 읽기

365 성경통독 역대기하 읽기



유다 왕국의 역사 속에서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이 역대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역대기 저자는 솔로몬보다 다윗에게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역대기는 다윗의 후손의 역사를 기록한 다윗 왕조 이야기다. 


아비야에 의하면 유다는 다윗의 자손이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로서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나라다. 아비야의 말속에서 다윗왕조와성전 제사(예배)가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대기는 왕들의 통치 행적을 여호와 신앙과 예배의 관점에서 명가한다. 여호와 신앙과 예배를 잘 따른 왕의 모댈은 다윗이다. 그래서 다윗이 좋은 왕과 나쁜 왕올 구별하는기준이 되고 있다.


또한 역대기 저자는 왕이 선지자의 예언, 책망, 충고의 말에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올 알 수 있다. 이것은 왕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여호와의 말을 대변하는 선지자의 예언에 왕들은 순종으로 웅답해야 했다. 이스라엘의 참된 왕은 하나님이셨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입이었기 때문이다.



01장 | 솔로몬의 위대함 01


*솔로몬왕이 지혜를 구하다 (1-13)


ㄴ솔로몬왕이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리다(1-6)

산당으로 나아간 것은 아쉬우나 기브온에 하나님의 회막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여호와의 언약궤는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 드리는 예배를 받아주신다.

일천번제는 천머리의 짐승을 날마다 천일동안 드린 것이 아니다

한꺼번에 천마리의 제물을 드린 것이다.

희생제사를 드린 그날 밤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식으로 적용하면 안된다.


ㄴ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지혜를 주시다 (7-13)

지혜와 지식을 구하는 솔로몬에게 

백성을 재판할 때(다스릴때) 필요한 지혜와 지식을 주시다.

왕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지식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고 그것을 구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요한1서 5: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And this is the confidence that we have toward him, that if we ask anything according to his will he hears us.



*솔로몬왕의 부귀영화(14-17)

여기서 지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지혜와 부와 물질 그리고 존영을 주셨지,  말과 병거를 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말과 병거를 수입하고 모은 것은 솔로몬의 결단이며 그가 행한 일이다. 많은 말들은 그 왕과왕국의 강력한 군사력을 의미한다. 말과 병거는 인간의 권세와 자랑의 상징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전쟁에서 사로잡은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전차들을 불살랐다(수 11:6. 9. 삼하 8:4). 군사력이 강하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신명기에선 왕이 많은 병마를 소유하면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부귀영화를 논할 때마다 이 구절을 생각해야 한다


[신명기 17:14-20] 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02장 | 솔로몬의 위대함 02


*성전건축을 준비하다(1-18, 왕상 5:1-18 참조)


A 솔로몬의 건축 계획과 준비(대하 2:1-2)

B 성전 건혹의 목적과 동참을 요청(대하 2:3-10)

a 솔로몬이 후람에게 상황을 설명(대하 2:3-6)

b 솔로본이 후람에게 숙련공과 채목을 요청(대하 2:7-10)

B' 이방인, 후람이 성전 건축에 동참(대하 2:11-16)

a’ 후람이 여호와툴 찬양(대하 2:11-12)

b’ 후람이 솔로몬의 요청을 승낙(대하 2:13-16)

A’  솔로몬의 건축 계획과 준비(대하 2:17-18)


ㄴ솔로몬은 성전 건축의 필요성을 두 가지로 말한다. 

하나는 성전 건축의 목적을‘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그것을 구별하기 위하여’라고 했다.  이런 식의 표현은 신전을 신의 물리적 거주지로 이해했던 고대 이방인들의 생각을 깨뜨린다. 솔로몬은 성전에 대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집 ’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건물에 갇혀 거하시는 분이 아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 구원을 위해 열심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서 만유의 주재인신 광대하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경배해야한다.


ㄴ이방인이 성전 건축에 동참하다

성전 건축은 단지 이스라엘 공동체만의 작품이 아니라 이방인이 참여히는 협력 작업이다. 더 중요한 것은 ‘후람 아비’의 지혜가 브살렐의 지혜와 차이를 보이지만, 그의 지혜와 숙련된 기술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집 건축에 사용된다. 교회 역시 이방인과 유대인이 성전에 거하시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뤄간다고 말한다.




03장 | 성전건축의 시작


서론 성전 건축이 시작될(대하 3:1-2)

본론 성전 구조와 기구들(대하 3:3-4:22)

A 성전 구조(대하 3:3-7)

B 성전 기구(대하 3:8-4:22)

a 솔로몬이 만든 성전 기구들(대하 3:8-4:10)

1) 지성소(대하 3:8-14)

2) 성전의 기둥: 야긴과 보아스(대하 3:15-17)

3) 제사장 뜰의 기구 : 놋제단, 바다, 물두멍(대하 4:1-6)

4) 외소의 기구들 : 등대, 상, 대접(대하 4:7-8)

5) 제사장 뜰(대하 4:9~10)

b 후람이 만든 기구들(대하 4:11-18)

c 솔로몬이 정금으로 만든 기구들(대하 4:19-22)

결론 성전 건촉을 마침(대하 5:1)


*성전건축의 시작(1-14, 왕상 6:1-38 참조)

열왕기는 성전 건축의 시점을 출애굽이후 480년경이라고 말함으로써 성전이 출애굽의 완성이라는 의식을 보여준다(왕상 6:1). 그러나 역대기는 성전의 지리적 위치 그리고 역사적 관심을 통해 성전의 기능적인 면올 강조한다.


모리아산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올 번제물로 드리기 위해 칼을 들었고(창22:1-19) 하나님이 이삭을 위해 제물을 준비하셨던 곳이다. 모리아산은 희생과 하나님의 자비가 나타난다.


아리우나 타작마당

역대기 저자는 모리아산에 대해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나타난 곳이라고 한다. 이것은 역대상 21:9~30의 사건으로 다윗의 범죄로 인해 여호와의 사자가 예루살렘을 파멸키 위해 칼을 들었으나 하나님이 그 칼을 멈춘 장소다. 그곳이 바로 아리우나의 타작 마당이다. 다윗은 그곳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고 그 이름을 ‘여호와 하나님의 집’(대상 30:1)이라고 했다.


열왕기상에 비교해보면 역대기 저자는 성전과 그 비품의 명세를 상세히 간추려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역대기는  스룹바벨 성전 만을 봤을 뿐, 솔로몬의 성전은 보지 못했던 사람틀을 위하여 작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성전의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뜰에서 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다시 지성소로 들어간다. 지성소에는 오직 대제사장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으며 그것도 일년에 한 차례만 들어 갈 수 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처소였다. 이스라엘 백성 들이 하나님은 지상의 어떤 한 곳에 한정되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만, 이 처소가 그들 예배의 중심지였다. 오직 여기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었고. 따라서 여기서만 제사(예배)를 받아주심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목표로 형성되었다. 이 나라의 통일성과 명맥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믿음에 달려 있었으며, 따라서 믿음을 세우기 위한 눈에 보이는 구심점이 필요했다. 이들이 믿음을 제일로 추구하지 않을 때 그들 안에 분열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움직임이 그들 속에 일어났다.


* 기둥을 만들다(15-17, 왕상 7:15-22 참조)


4장 | 성전건축의 시작 02


서론 성전 건축이 시작될(대하 3:1-2)

본론 성전 구조와 기구들(대하 3:3-4:22)

A 성전 구조(대하 3:3-7)

B 성전 기구(대하 3:8-4:22)

a 솔로몬이 만든 성전 기구들(대하 3:8-4:10)

1) 지성소(대하 3:8-14)

2) 성전의 기둥: 야긴과 보아스(대하 3:15-17)

3) 제사장 뜰의 기구 : 놋제단, 바다, 물두멍(대하 4:1-6)

4) 외소의 기구들 : 등대, 상, 대접(대하 4:7-8)

5) 제사장 뜰(대하 4:9~10)

b 후람이 만든 기구들(대하 4:11-18)

c 솔로몬이 정금으로 만든 기구들(대하 4:19-22)

결론 성전 건촉을 마침(대하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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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 뜰의 기구들 : 놋제단, 바다, 물두멍 (대하 4:1-6)

물두명은 번제에 속한 물건을 씻는 기능이고 바다는 제사장들의 씻김을 위함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즉 바다와 물두멍의 기능은 정결이다.


*외소의 기구들 : 등대, 상, 대접, 제사장의 뜰(대하 4:7-10)

금 등대와 상은 각각 10개로 좌우 편에 다섯 개씩 있고 금대접은 100개다.

역대하 4:9는 제사장의 뜰과 큰 뜰을 구분해 문올 만들었다고 보고한다. 

아마 큰 뜰은 백성들을 위한 것이고 제사장의 뜰은 열왕기의 안뜰(왕상 6:36; 7:12)에 해당하며 제사장과 레위인을 위한 장소(대하 4:9)가 된다.


*후람과 솔로몬이 만든 기구들(대하 4:11-18, 19-22)


[참조] 

성전의 기구들은 대부분 정결함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최고의 가치로 여기시는 것이 거룩한 삶임을 보여 줍니다. 세상은 성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만, 하나님의 관심사는 성공이 아니라 거룩한 삶입니다. (성도를 위한 365 통독주석, 148 page)



5장 | 성전을 완성하고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김


*성전을 완성하다(1).


[역대하 5:1]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일을 마친지라 이에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이 드린 은과 금과 모든 기구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 곳간에 두었더라. Thus all the work that Solomon did for the house of the LORD was finished. And Solomon brought in the things that David his father had dedicated, and stored the silver, the gold, and all the vessels in the treasuries of the house of God.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기다(2-10).


성전에 맨 마지막으로 들여온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였다. 다윗 왕때 베레스웃사 사건이있었기에(역대상 13-15장). 매우 신중하게 언약궤를 운반하였다. 레위인들이 언약궤를 메고 시온에서 약간 북쪽에 있는 새로운 거처로 옮기고, 제사장들이 지성소로 메어 들였다.

언약궤와 성전에 비치할 모든 거룩한 기구들이 새롭게 건축한 성전에 도착하자,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과 함께 언약궤 앞에서 많은 수의 양과 소를 잡아 제물로 바친다(6). 


언약궤를 위한 희생 제사가 끝나자,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지성소 안에 있는 그룹들의 날개 아래 모셔둔다(7). 


이로써 그룹들이 언약궤가 놓인 자리 위에 날개를 펼쳐 언약궤와 그것을 운반하는 채(출 25:13-15)의 위를 덮는 형태가 되었는데, 언약궤의 채는 궤보다 긴 까닭에 지성소의 정면에 있는 성소에선 보이지만 성소 밖에선 보이지 않는다(8-9).


10절은 언약궤 안에 십계명의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고 말하면서, 두 돌판이 출애굽사건 이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실 때 모세가 언약궤 안에 넣었던 것임을 상기시킨다. 


출애굽기 25:21 에 의하면, 십계명 두 톨판은 언약궤 안에 넣게 되어 있지만, 히브리서 9:4는 언약궤 안에 십계명 두 돌판과 아론의 지팡이 및 만나 항아리 등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는 민수기 17:10(아론의 지팡이), 출애굽기 16:33-34(만나항아리)에 기초한 설명이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었고, 오직 왕실의 일만도 아니었다. 모든 백성들이 다 모인 앞에서 거행되었다. 언약궤 안에는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언약, 약속과 명령, 복과 저주가 담긴 돌판이 들어 있었다. 


언약궤가 성전에 들어오자 왕과 백성들은 수없이 제사를 드려 자기들의 헌신의 감정을 표시했다. 여기서 ‘칠월 절기’는 분명 속죄일 며칠 후에 시작하여 일주일 동안 감사와 제사를 드리는 초막절을 가리킨 것이다(레 23: 26-36 ; 신 16: 9- 15 ; 대하 7: 9- 10과 비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다(11-14).

11~13절은 솔로몬과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이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기는 일에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 했는지를 한눈에 알게 한다.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겨 지성소에 모셔 둔 일은 참으로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축제의 한 마당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이 이처럼 즐겁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찬송하자 여호와의 성전

에 그분의 임재와 영광을 상징하는 구름이 자욱하고 이로 인해 제사장들은 감히 서서 일을 볼 수가 없었다(13-14,  출 33:9-10, 40:34-35). 


이처럼 언약궤의 입주는 여호와 하나님과 새롭게 갱신하는 언약식의 절정이었다.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주신 땅에서 그들과 함께 하시리라고 약속하셨다.

역대기 저자는 바로 이 영광을 다시 한 번 회복하고, 경험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 욕망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6장 | 솔로몬의 축복과 연설 그리고 기도


*솔로몬의 축복과 연설 (1-11)


솔로몬이 언약궤의 지성소 안치 행사를 마친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 고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으나(1), 주님을 위해 거하실 성전을 건축했으니 주님께서 영원히 거하실 처소라고 말한다(2). 


여기서 말하는 ‘캄캄함’(darkness)이란 하나님이 자신을 신비로운 방식으로 자기 백성에게 드러내시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그것은 구름으로 뒤덮인 하나님의 모습을 가리키기도 한다(출20:20-21, 24:15 이하; 시 18:11; 97:2).


[출애굽기 20:20-21]  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21 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to the thick darkness where God was) 가까이 가니라.


[출애굽기 24: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Then Moses went up on the mountain, and the cloud covered the mountain.


[시편 18:11] 그가 흑암을 그의 숨는 곳으로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 He made darkness his covering, his canopy around him, thick clouds dark with water.


[시편 97:2]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Clouds and thick darkness are all around him; righteousness and justice are the foundation of his throne.


[이사야서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이와 달리 성전은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는 곳임과 동시에 그분이 거주하시는곳이다. 1~2절의 이런 대비는 하나님이 자신을 감추시는 듯한 방식으로 일하실 뿐 아니라 자신을 밝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일 하시는 분이심을 뜻한다. 놀랍지 않은가?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 내시기도 하신다. 안계신듯 함께 하신다. 그래서 때로 우리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우리의 느낌과 감각에 의존하여 하나님을 느끼고 아는 것을 넘어 믿음으로 그가 계신 것을 알고 믿고 신뢰해야 한다. 특정한 느낌이나 감정을 추구하면 내 느낌과 감정의 상태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태도와 신뢰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사야서 50: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Who among you fears the LORD 

and obeys the voice of his servant? 

Let him who walks in darkness 

and has no light trust in the name of the LORD 

and rely on his God.


너희 가운데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그분의 종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사람이 누구냐? 

비록 빛도 없이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이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자기 하나님께 기대라.



*솔로몬의 기도 (12-42)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눠진다. 


ㄴ도입부 (12-13)

그가 그 위에 서서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13)


ㄴ왕정의 미래 (14-1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 그 어디에도 당신과 같은 신은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 한마음으로 사는 종들에게 

진실로 언약을 지켜주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의 종인 저의 아버지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지켜주셨습니다. 

친히 약속하신 것을 오늘 이렇게 손수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당신의 종인 저의 아버지 다윗에게 내리신 약속, 

‘네 후손들이 내가 가르쳐준 길을 벗어나지 않고 너처럼 내 앞에서 살면, 

네 후손 가운데서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자가 끊기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지켜주십시오. 


그러니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당신의 종인 저의 아버지 다윗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주십시오. 


ㄴ성전을 향한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간구(18-21)

그러나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과 같이 자리잡으시기를 어찌 바라겠습니까? 

저 하늘, 저 꼭대기 하늘도 주를 모시지 못할 터인데 

소인이 지은 이 전이야말로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소인의 기도와 간청에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오늘 당신 앞에서 울부짖으며 드리는 이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밤낮으로 이 전을 보살펴 주십시오. 

이 곳은 주께서 이름을 두시겠다고 약속하신 곳입니다. 

소인이 이 곳을 바라보며 올리는 기도를 부디 들어주십시오. 


소인과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할 때 부디 들어주십시오. 

당신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어주십시오.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ㄴ성전과 관련하여 드리는 7가지 간구 (22-39) 

22 누구든지 이웃에게 못할 짓을 하여 

이 전으로 끌려와서 당신의 제단 앞에서 

그런 일을 했으면 저주를 받겠다고 맹세하거든 

23 당신께서 하늘에서 그 말을 들으시고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잘못이 있으면 그에게 벌을 내리시고 

허물이 없으면 그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십시오. 


24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이 당신께 죄를 얻어 

적에게 패하였다가도 뉘우치고 돌아와 

이 전에서 당신의 이름을 기리며 간절히 빌거든, 

25 하늘에서 들으시고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며 

그들과 그들의 선조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26 이 백성이 당신께 죄를 지어 

그 값으로 하늘이 닫혀 비가 내리지 않게 되었을 때에도 

그들이 만일 당신께 벌받은 줄 알고 잘못을 뉘우쳐 

이 전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당신의 이름을 기리거든, 

27 하늘에서 들으시고 소인의 잘못과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길도 가르쳐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백성에게 유산으로 주신 

당신의 땅에 다시 비를 내려주십시오. 


28 이 땅에 기근이 들거나 역병이 돌거나 

곡식이 쭉정이가 되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 누리떼가 갉아먹었을 때, 

성읍들이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재앙이 내려 온갖 전염병이 번졌을 때, 

29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이 개인으로나 민족으로나 

마음으로부터 뉘우치고 이 전을 바라보며 팔을 벌리고 간절히 빌거든, 

30 당신께서는 자리잡으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여, 사람의 행실에 따라 갚아주십시오. 

당신만이 홀로 사람의 마음을 낱낱이 아십니다. 

31 그리하시면 이스라엘 백성은 

당신께서 선조들에게 주신 땅에서 살면서

영원히 당신을 경외하며 가르쳐주신 길을 따라 살 것입니다. 


32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이 아닌 외국인이라도 

위력을 드러내시어 크게 떨치시는 당신의 이름을 듣고 

먼 나라에서 찾아오거든, 그가 이 집을 찾아와 바라보며 빌거든,  

33 당신께서는 자리잡으신 그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 외국인의 청을 들어 그대로 이루어주십시오. 

그리하시면 이 지상의 모든 백성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당신의 이름을 알게 되고 당신을 경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소인이 지은 이 전이 당신의 성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34 당신께서 이 백성을 어느 싸움터에 내보내셨든지 

그들이 거기에서, 당신께서 택하신 이 성과 

소인이 당신의 것으로 지어 바친 이 성전을 바라보며 빌거든, 

35그 간절한 기도를 하늘에서 들으시고 정의를 세워주십시오. 


36 죄 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백성도 당신께 범죄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께서 노하시어 원수에게 넘겨주시면 

이 백성은 먼 나라, 가까운 나라에 잡혀가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 

37 그러나 사로잡혀 간 몸으로 거기에서라도 

제 정신이 들어 뉘우쳐 참회하며, 

‘우리는 죄인입니다. 못할 짓을 하여 죄를 얻었습니다.’ 

하고 당신께 애원하거든, 

38 사로잡혀 간 몸으로 거기에서라도 

참마음과 뜻을 다 쏟아 참회하고 

당신께서 선조들에게 주신 조국 땅과 당신께서 뽑으신 이 성읍과 

소인이 당신의 것으로 지어 바친 이 전을 바라보며 빌거든, 

39 당신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그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어 정의를 세워주십시오. 

그리고 당신께 얻은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ㄴ마무리 기도(40-42) 

40 오, 나의 하나님이여, 

누군가가 이 곳에서 기도 드릴 때 

눈을 떼지 마시고 귀담아들어 주십시오. 

41 여호와 하나님이여, 

당신께서 쉬실 곳으로 이제 드십시오. 

당신의 힘이 깃들인 궤와 함께 드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여, 

당신을 섬기는 사제들 옷에서 구원이 펄럭이고

당신을 믿는 신도들은 복을 누리며 기뻐하게 하여 주십시오. 

42 여호와 하나님이여

몸소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내쫓지 마시고 

당신의 종 다윗의 충성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집인 성전은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고 친히 거주하시는곳이며 예배하는 곳일뿐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이기도 하다. 


솔로몬은 참으로 성전이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사야 56: 7)임을 자신의 기도를 통해 분명하게 입증한다. 또한 예수님도 오셔서 성전이 만민의 기도하는 집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분명히 선언하셨다.


그러므로 성전에서는 하나님 자신과 우리를 위한 기도가 당연히 드려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열방과 민족들의 주가 되시니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일 역시 중단되어서는 안된다. 



7장 | 성전 낙성식, 솔로몬에게 다시 나타난 하나님



*성전 낙성식 (1-10)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가 온 회중과 함께 하나님께 드린 번제물과 제물들(6)올 사르고,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게 된다(1-2).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는 증거가 나타나자, 백성틀은 모두 즐거워하였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먹고 마시는 일은 죄를 깨닫고, 자복하고, 하나님께서 제단의 제물들을 열납하신 후에야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원리들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예배의 순서에서도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물흐르듯이 진행되는 예배도 중요하지만 예배의 순서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회개하고 간구하고 회복을 받고 기뻐하며 함께 나누는 요소들이 예배의 요소에 나타나는 것이 중요하다.



*솔로몬에게 다시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11-22)

솔로몬이 마음에 계획하던 성전과 왕궁 건축을 모두 마치자 하나님이 과거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과 같이 다시 밤중에 그에게 나타나셔서 응답의 말씀을 주신다. 


그것은 솔로몬과 이스라엘 온 회중의 성전봉헌식에 대한 응답으로 보이지만, 12절의 ‘이미 네 기도를 듣고’라는 말씀에 근거해 본다면 그것은 솔로몬의 기도(6:12-42)에 대한 기도응답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봐야한다. 


특히 13~18절은 약속(죄의 용서와 회복 및 다윗 언약의 성취), 19~22절은 경고(멸망과 성전 파괴)에 해당한다.


12 그런데 야훼께서 밤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기도를 듣고 

이 곳을 나의 것으로 삼고 이 집에서 제사를 받기로 하였다. 

13 들어라. 

비가 내리지 못하도록 내가 하늘을 닫아버리거나, 

메뚜기를 시켜 땅에 있는 것을 갉아먹게 하거나, 

내 백성에게 염병을 보내거든, 

14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은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며 나를 찾고 

나쁜 길에서 돌아서야 한다. 

그리하면 나는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용서해 주고 

그 사는 땅에 다시 생명을 주리라. 

15 이제 나는 이 곳에서 눈을 떼지 않고 

여기에서 들려오는 기도를 귀담아 들으리라. 

16 이제 나는 이 집을 골라 내 것으로 삼고 

여기에 나의 이름을 길이 두리라. 

언제까지나 여기에서 

나의 눈, 나의 마음을 떼어놓지 않으리라. 


17 너는 네 아비 다윗처럼 살아라. 

내가 일러준 언약과 법을 지켜라. 

18 그리하면 내가 너를 왕으로 세우고 

네 왕위를 튼튼하게 하여주리라. 

네 아비 다윗에게 약속한 대로 

네 후손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끊어지지 않게 하리라. 


19 그러나 너희가 변심하여 

나에게 받은 계약과 법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받들어 섬기거나 예배하면, 

20 나는 이 땅을 너희에게 내렸지만 

여기에서 너희를 뿌리뽑아 버리고, 

이 집도 나의 것으로 삼았지만 내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희는 만방에서 속담거리와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21 이 집은 돌무더기가 되어 

지나가는 사람마다 놀라고 쉬쉬하며 이렇게 물을 것이다. 

‘어찌하여 여호와께서 

이 땅과 이 전을 이처럼 황폐하게 하셨을까?’ 

22 그러면 누군가가 대답하리라. 

‘자기네 조상을 이집트에서 구출해 내신 

자기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를 저버리고 

다른 신에게 홀려 그를 예배하고 섬겼기 때문이지.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이 온갖 재앙을 그들 위에 내리셨다네!’ ” 




8장 | 솔로몬의 업적


A 솔로몬의 지혜와 부귀(1:1 -17)

B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2: 1 -18)

C 솔로몬의 성전 건축(3:1 -5: 1 )

C’ 솔로몬의 성전 불헌(5:2-7:22)

B' 솔로몬의 성전 완성과 다른 건축들(8:1-16)

A’ 솔로몬의 지혜와 부귀(8: 17-9:28)



솔로몬의 업적과 부와 지혜와 부귀는 성전건축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봐야한다. 마치 하나님께서 브살렐에게 지혜와 함께 지식과 재주를 주심으로써 성막을 완성케 하신 것처럼(출 31:1-3).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와 함께 부(富)를 허락하심으로써 성전건축 완성을 가능케 하신다.



*성전 완성과 추가적 건축 사업(8:1-6)


본문에서 사용된 3가지 표현들 즉 “쳐서 취하고"(3), “성과 문과 문빗장”(6), “견고한 성읍"(5)들은 나중에 유다 왕들을 언급할 때에 신실한 왕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으로 쓰인 중요한 표현들이다(대하 27:5, 11:5, 14:7).


저자는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지경을 넓혀 주시고 대적들을 복종케 하시며, 나라를 견고히 하심으로써 ‘집을 세우시겠다’ 라고 약속하신 다윗과의 언약을 성취해 나가고 계심을 보여준다(대하 17:10, 대상22:9, 삼하 7:12).


[참조]

특이한 점은 역대기 저자가 8장 16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성전 공사가 끝났다고 말한다는 점입니다. 이미 오래전에 성전 공사와 낙성식이 마무리되었는데, 왜 이제야 성전 공사가 끝났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역대기 저자는 건물이 다 지어진 것이 아니라 성전에서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예배와 제사 의식이 제도화된 것을 성전의 완성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건물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 완성됩니다. 아무리 화려한 건물이 있다 할지라도 거기에 참된 예배가 없다면, 진정한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성도를 위한 365 통독주석, 149]



*솔로몬 왕국의 역군들(8:7-10)

솔로몬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전멸시키지 못했던 가나안 족속들을 불러 강제 노동을 시켰다. 가나안 인들이 이스라엘에게 종 노룻한 것도 예언의 성취다(창 9:25).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삼지 않았다. 그것은 모세의 율법 정신을 따른 원리다. 그들을 리더들과 감독자들로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과 이방인들의 역할을 구별했다.


*솔로몬의 예배(8:11-16)

[역대하 8:11]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데리고 다윗 성에서부터 그를 위하여 건축한 왕궁에 이르러 이르되 내 아내가 이스라엘 왕 다윗의 왕궁에 살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은 다 거룩함이니라 하였더라 


이 부분을 보면 성전을 향한 솔로몬의 열심과 경외감이 나타난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스스로 애굽왕의 사위가 되어 보호를 보장받고 이방인과 결혼하여 부인을 더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고 상호모순되며 이율배반적인 처지와 상황이다. 왜 하나님은 그의 불신앙과 불순종을 지적하지 않으시고 그의 종교적 열정을 받아주시는 것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왕상 11장에 나오는 그의 최후에서 설명해준다. 역대기는 이 지점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고 그의 성전건축에 대한 업적 위주로 역사를 기록해 두었다. 


하지만 기록에 남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신앙과 삶을 재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있었고 하나님이 그를  쓰시는 부분이 있었지만 지속적인 불순종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우상숭배는 결국 그의 신앙과 삶을 비루하게 만들고 만다. 


솔로몬처럼 한 순간, 어느 한 지점에 열정적인 순종과 헌신을 드린 기억들은 매우 소중하다. 하지만 솔로몬처럼 우리도 흔들리고 일관성을 잃고 지속적인 불순종을 이어갈 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을 거울삼아 흔들려도 넘어져도 빨리 깨닫고 다시 일어나 순종의 자리로 가야한다. 익숙한 채로 그냥 가면 그냥 갈수 밖에 없다. 흔들려도 꽃을 피우며 살아야 한다.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다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Flowers That Bloom When Shaken – Do Jong-hwan


Where is the flower that blooms without shaking?
Any of the beautiful flowers of this world
all bloom while being shaken
They shake on stems that grow upright
Where is the love that goes without shaking?


Where is the flower that blooms without being soaked?
Any of the shining flowers of this world
bloom as they are soaked
Soaked by wind and rain, petals bloom warmly
Where is the life that goes without being soaked?



솔로몬의 마음이 여호와를 떠나다 | 열왕기상 11장 


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6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8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12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솔로몬의 대적 


14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그는 왕의 자손으로서 에돔에 거하였더라 


23 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자가 되게 하시니 그는 그의 주인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도망한 자라 


26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 그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이요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루아이니 과부더라 



*두로왕 후람(8:17-18)

솔로몬의 국가 번영과 건설에 ‘이방인의 참여’라는 주제가 부각되어 있다.



9장 | 솔로몬의 부귀와 지혜와 영광


*솔로몬을 찾아온 스바여왕 (1-12)

그녀는 모든 것들올 보고 ‘정신이 현황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표현은 같은 내용인 열왕기상 10:5를 제외하고 구약에서 두 번 더 나온다. 모두 이방인들이 여호와의 하신 일올 보고 놀람올 금치 못한 문맥에서 쓰였다(수 2:11; 5:1). 

이런 표현올 통해 저자는 스바의 여왕이 놀라는 것은 솔로몬의 업적이 아니라 그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업적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스바의 여왕은이런복의 원천과근원이 되시는여호와를찬양한다. 이것올 통해 저자는 역대기의 중요한 신학올 그녀의 입을 통해 전달한다. 그녀는 인간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올 연결시킨다.

이렇게 스바의 여왕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찬t양하고 그 응답으로 가져온 귀한 것들을 솔로몬에게 선물한다. 저자는 여기서 또 다른 이방 왕인 후람이 가져온 물질도 같이 언급한다(10-11). 이런 장면은 예수님의 탄생 당시에 황금, 유향, 몰약을 가져옹 이방인틀의 방문을 연상시킨다(마 2:11).

복음서에서 스바 여왕의 이야기를 이용해 그녀를 이방인이지만 솔로몬의 지혜를듣고 믿은 자로 인용하며, 솔로몬보다 더 큰 이 즉 예수님의 오심으로 도래하는 하나님의 왕국이 그들의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는 악한 세대를 정죄하였다(마 12:42; 녹 11 :31). 


*솔로몬의 부귀, 지혜, 존영(13-28)

솔로몬의 부귀, 지혜, 존영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이다(대하 1:7-12; 왕상 3:1-3). 또한 다윗 왕조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 성취의 축복이며(대상 17:8).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영광스러운 나라에 천하 열왕들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를 듣고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각기 예물을 갖고 예루살렘으로 몰려오는 광경을 통해 선지자들이 예언한 미래의 메시아 시대의 희망과 영광을 맛 뵈기로 보여준다(사 2 :3; 60:3, 5-6; 학 2:7; 시 72:10, 15).



*솔로몬의 행적과 죽음(29-31)



10-12장 역대기 역사에 나오는 르호보암


A 통일 왕국의 분열(10:1-19)

B 르호보암의 통치 역사: 왕국의 확립(11 :1-23)

C 여호와롤 저버린 르호보암(12:1-16)


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일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나라를 분단시키고 우상숭배를 감행한 왕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르호보암은 단지 자기 조부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왕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역대기에서는 북이스라엘의 왕은 제외하고 남왕국의 왕들, 다윗의 후손들의 기록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다윗과 솔로몬과는 달리 국가분단의 책임이 있고 불순종의 대명사인 르호보암의 이야기로부터 기록이 이어진다.


역대기에 기록된 르호보암의 행적올 역대기 역사는 크게 세 부분이다


첫째, 10장에서 왕국의 분열올 초래한 르호보암이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은 것과 그에게서 파생해 나타난 사람들올 의지하는 잘못된 선택에 대해 폭로한다.


둘째, 11장에서 르호보암이 나라를 방어하기 위한 요새보다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한 성읍을 건설하였고 자신의 아들들을 그 지역의 관리로 임명해 오로지 자신의 힘을 통한 왕권의 안정에만 힘을쏟고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는 잘못을 통치기간 내내 보여준다.


셋째, 12장에서 르호보암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올 버려 애굽 왕 시삭의 침입과 성전과 왕실의 약탈이라는 벌을 받게된다. 



10장 | 통일 왕국의 분열


*여로보암의 요구 사항과 르호보암의 답변(1-15)

그는 지혜에 귀 기울이지 않음

8절에서 왕은 원로들이 가르치는 것을 버렸다

(왕상12:8의 “노인들의 자문”을 버렸다) 

그가 져버린 것은 단순히 세상 지혜가 아니라, 

아버지 솔로몬이 썼던, 잠언과 전도서의 “아비의 지혜”이다. 

이것을 외면한 것이다.


*잘못된 선택의 결과(16-19)


[역대하 10:16] 온 이스라엘은 왕이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보라 하고 온 이스라엘이 그들의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그러나 무엇보다 분열이 솔로몬의 타락에 대한 

“여호와의 징계”임을 기억해야 한다(대하 10:15)

기름부음 받은 직분자들의 불신앙과 그에 따른 선택의 결과는

그 자신 뿐만 아니라 온 나라 온 교회에 고통을 가져온다.



11장 | 르호보암의 통치 역사: 왕국의 확립


*스마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여 전쟁을 막다(1-4)


3절 “유다와 베냐민에 속한 모든 이스라엘 무리”라는 표현

열왕기상 12:23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그 남은 백성”이라고 표현

남유다만이 진정한 이스라엘이라는 역대기적 사관의 특징



*르호모암이 방비하는 성읍들을 건축하다(5-12).



*북쪽의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이 유다로 오다(13-17).

이들은 여로보암의 우상숭배와 배교를 견디다 못해 넘어온 사람들로 그들은 르호보암이 변절하기 전인 3년 동안 르호보암을 도와 신앙공동체를 확립하는 데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월남을 막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은 유다에게 또 다른 짐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정통 신앙을 지도할 제사장과 선생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비록 상당수의 신실한 신앙인들이 북애서 내려 왔지만, 성전수입이 크게 줄어 들어 이것이 유다애 새로운 부담이 되었다.


*르호보암의 가족(18-23)

그런데로 르호보암은 나라보다도 오히려 자기 집안을 살피는 데 더 큰 정성을 쏟았다. 그렇게 많은 왕비와 처첩을 두는 일은 바로 자기 조부와 부친을 따랐다.

르호보암의 18명의 아내, 60명의 첩, 아들 28명과 딸 60명

그런데 이 명단에서 중요한 것은 르호보암이 그의 모든 아들들에게 유다와 베냐민 땅의 견고한 성읍에 흩어져 살게 하고 양식을 후하게 주며 많은 아내들을 구해 주었다-> 왕권강화



12장 | 여호와를 버린 르호보암


*여호와를 버린 르호보암과 애굽의 침입(1-12)

르호보암은 나라가 견고해지고 세력이 안정되자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린 르호보암과 그의 왕국에 하나님의 심판이 뒤따르게 된다. 

이것은 애굽 왕 시삭이 르호보암을 침입한 것에 대해 단순히 애굽 왕의 세력 확장에 대한 결과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르호보암을 심판하신 결과라고 선지자 스마야를 통해 말씀하심.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전의 보물들을 이방인에게 빼앗기는 수난을 감

수하고서라도 르호보암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길 원하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패망과 성전기명의 탈취될 미래를 언뜻 보여준다,

여호와의 심판을 깨달은 르호보암은 빼앗긴 금 방패 대신에 놋 방패를만들고 여호와께 스스로 겸비하여 행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유다에서 선한 일이 있음을 보시고 화를 돌이키시고 유다를 모두 멸하지 않으셨다.


*르호보암이 죽다(13-16)


솔로몬과 르호보암의 특성은 아주 딴판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이 성취되는 것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과, 그들 모두가 그것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13-16장 왕국과 전쟁들


역대하 13~16장은 유다의 르호보암 왕을 이어 왕좌에 오른 아비야 왕과 그 뒤를 이은 아사 왕의 전쟁 기록을 통해 이웃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세력 싸움의 한가운데서 남북으로 갈라진 이스라엘-유다의 승전과 패전의 신앙적 의미를 기록하고 있다.


13장 | 아비야와 여로보암의 전쟁


아비야의 3년간의 짧은 재위기간에 역대기 저자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게속해서 다윗가문을 돌보심이 나타난 것이다.

40만명의 남 유다와 80만명의 북이스라엘의 전쟁은 남왕국의 승리로 돌아간다. 이 승리의 원인은 힘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손 들어 주신 결과이며 믿음의 승리다.

하나님은 아비야의 경건함의 댓가로 승리를 주신 것이 아니라 북이스라엘의 배교를 벌하시기 위해 남유다의 손을 들어주시고 북이스라엘을 치신 것이다(12,15)



14장 | 아사가 유다왕이 되다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였던 아사는 하나님께서 자기 부친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이기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통치룰 수월하게 시작하였다. 안정과 평안 가운데 그는 이웃 나라의 위협을 받지 않고서 종교적인 일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다. 


아사는 자기 부친이 약속한 것을 그대로 실천했다. 이교 숭배의  중심지였던 산당과 우상들을 모조리 없애 버렸다. 그와 동시에 나라의 안정이 굳건해졌다. 이런 아사왕의 개혁적 통치기간에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10년의 태평성대를 허락하신다(1-7).


하지만 위기가 찾아온다. 세라의 위협은 아비야가 직면했던 것과 똑같이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고 아사 역시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는 전심으로 기도하고 응답을 받는다. 하나님이 전쟁에 직접 나서신 것이다.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께서 승리가 자신에게 속하였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역대하 14:11]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15장 | 아사왕의 개혁정책


15장은 아사왕의 통치 중기기간에 일어났던 일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해 구스의 세라를 물리친 경험과 선지자 아사랴(15:1-7)의 말씀 선포로 인해 고조된 상황에서 전개된 두 번째 개혁정책을 전개한다(15:8-19).


아사의 개혁정책의 근원은 

선지자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생겨난 

새로운 역사이해와 거룩한 감동과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대하 15:2]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The LORD is with you while you are with him. 

If you seek him, he will be found by you, 

but if you forsake him, he will forsake you.


[역대하 15:3-7] 3 이스라엘에는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 지가 오래 되었으나 4 그들이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찾으매 그가 그들과 만나게 되셨나니 5 그 때에 온 땅의 모든 주민이 크게 요란하여 사람의 출입이 평안하지 못하며 6 이 나라와 저 나라가 서로 치고 이 성읍이 저 성읍과 또한 그러하여 피차 상한 바 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이 여러 가지 고난으로 요란하게 하셨음이라 7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하니라.


항상 거룩한 개혁과 결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영향력을 미친다(12, 15)


[역대하 15:12] 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역대하 15:15]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아사왕의 두 번째 대개혁은 철저했다. 그의 모친 마아가까지 포함되었다.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든’ 이유로 그의 모친 마아가의 태후의 위를 폐하기까지 했고(16) 선왕과 자신의 구별한 예물들과 물건들을 하나님의 전으로 옮겼다(18). 이런 개혁은 유다에 아사왕 35년까지 다시 전쟁이 없는 태평성대를 연장케 했다(19).

그러나 아사는 이 기간 중에도 이스라엘 중에 산당올 제거하지 못했다

(17). 그리고 통치 말기로 들어가면서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를 신뢰했던 삶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해진 유다에 안주하며 이웃 강대국을 의지함으로써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16장 17장 18장 


16장 | 이스라엘과 유다의 충돌 (왕상 15:17-22)


역대하 16장은 아사 왕의 화려했던 종교개혁 통치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반전을 기록한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충돌 (1-6)

오렌 번영을 누리던 끝에 아사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다. 그는 통치를 정치적으로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서는 아람 왕을 매수하여 이스라엘을 치려는 목적을 달성했다. 아람 군대는 약속의 땅 일부를 침입하여 치고 그 주민들을 죽였다. 유다는 안전하였다. 아사가 자기 영토는 안전하게 지켰으나 그 방법은 나봤다.


*선견자 하나니(7-10)

하나니가 즉시 권고를 했지만 아사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사가 정치적 능력이 탁월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로 말미암아 정책상 좋지 못한 전례가 남게 되었다. 그는 남북왕국의 분쟁을 외부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고 했다. 아사가 보다 큰 힘이 필요했다면 당연히 이때까지 그가 의지했던 하나님께 호소했어야 했다. 그렇게 했더라면 자기와 손잡은  수리아인들의 승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승리를 맛보았을 것이다(7-8).그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았기에 그가 추구한 평화는 그를 외면했다.


[역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For the eyes of the LORD run to and fro throughout the whole earth, to give strong support to those whose heart is blameless toward him. 


*아사의 죽음(11-14)

그는 자신을 신뢰한 것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고통을 겪었다. 그의 주치의들의 실력과는 관계없이 왕의 병은 그들이 치료할 수 없는 한 원인이 있었다. 아사가 죽자 성대하게 장례를 지냈다. 그는 초기에 가진 신앙의 태도를 많이버렸지만 그의 통치기간은 그래도 진정한 종교개혁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역대하 16:12]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17장 | 여호사밧이 왕위에 오르다


여호사밧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역대하 17-20장은 여호사밧 왕에 대한 기록으로 북이스라엘의 아합왕과 대비하여 기록이 되었다. 여호사밧에 대한 기록은 열왕기에 비해 역대기의 기록이 더 많다. 역대하 17 ~20장의 상당부분이 열왕기에는 없다. 이런 내용의 첨가를 통해 역대기의 저자는 여호사밧을 더욱 경건하고 신앙심이 깊은 인물로묘사하고 있다.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되다(1-9)


그는 최선을 다해 자기 왕국을 지켰고 자기 부친이 처음에 붙들었던 신앙의 길을 고수했으며 백성의 신앙을 격려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복 주심이었다.(1-6)


[역대하 17: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


특히 여호사밧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율법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율법을 교육할 특별 조를 편성해 전국적으로 순회 교육을 시킨다. 


[역대하 17:9]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유다 성읍들로 두루 다니며 백성들을 가르쳤더라 


여호사밧은 현실적으로 매우 미련스럽게 보이는 방식으로 나라를 다스린다. 그렇게 하면 큰 코 다칠 것이라고 따끔하게 충고를 들을 만한 방식으로 나라를 다스린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복주심이 거기에 있었다.


*여호사밧이 강대해지자(10-19)


하나님이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10-19절에서 구체적으로확인할수 있다. 하나님은 유다 주변 나라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공포’가 퍼지게 하셨다. 나아가 블레셋과 아랍인들이 그들에게 조공올 바치라고 강요한 적도 없는데 유다에 조공을 바친다. 


18장 | 여호사밧과 아합왕과의 관계와 갈등



*선지자 미가야가 아합에게 경고하다(1-27)

장인인 아합왕을 만나러 가다.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함께 길르앗 라못을 치자고 제안한다. 이에 대해 여호사맛은 매우 정중하면서도 신앙적으로 대답하는데 여호사밧이 아합의 말을 거절할수 없는 관계나 형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리의 영이 아니라 거짓의 영에 사로잡힌(18-22) 아합의 선지자 400명은 하나님이 이기게 하실 전쟁이라 하였으나 선지자 미가야는 만일 전쟁에 나가면 아합이 죽을 것이라 경고했다. 그러자 아합은 미가야를 감옥에 넣어버렸다(26). 


*아합이 죽다(28-34)

미가야의 경고를 비웃고 전쟁에 나간 아합은 불안했는지 변장을 하고 전투에 나가나 걸국 우연히 날아온 화살을 맞고 극심한 고퉁을 당하다 죽고 여호사밧은 평안히 돌아온다.



19장 20장 21장 

19-20장 역시 여호사밧왕에 대한 기록이다.



19장 | 여호사밧의 개혁정책


아합과는 달리 여호사밧은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예후의 책망을 듣고 그는 다시 신앙개혁정책을 펼친다. 그는 직접 나서서 백성들의 신앙회복을 격려하고 재판기능을 바로잡고 강화했다.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신뢰와 순종의 표시이다. 


기름부음 받은 왕이라 할지라도 기름부음 받은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굴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를 존중하는 것이다. 선지자를 미워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왕과 왕조는 선지자를 멀리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과 그분의 질서를 버렸다.


[누가복음 16:31]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비록 죽은 사람들 가운데 누가 살아난다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He said to him, If they do not hear Moses and the Prophets, neither will they be convinced if someone should rise from the dead.’ 




20장 | 여호사밧의 전쟁과 행적


*여호사밧과 아람의 전쟁 (1-30)


모압과 암몬의 침공에 그는 두려워하여 국가적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그의 간구는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말씀의 근거한 기도이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나님의 영이 야하시엘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응답과 위로의 말씀이 전해진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는 전쟁과 찬송


[역대하 20:17-19]  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18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역대하 20:20-22, 26] 20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 26 넷째 날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역대하 20:29-30] 29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30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여호사밧의 엇나간 행적(31-37)

여호사밧이 평생토록 애쓴 것이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인데(19:4). 여호사밧은 이름 그대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만들고자 최선올 다했다. 그러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업적이 상당하지만 그의 허물도 상당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시선과 평가다. 여호사밧은 본받을 점이 많은 사람임에 틀림없지만 그는 온전하지 않고 실수도 많이 저지른 왕이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우리의 시선을 여호사밧이 아닌 하나님께로 향하게 한다.



21장 | 유다왕 여호람


21장은 여호람의 통치(주전 849-843년)에 대한 기록이다. 여호사밧이 죽은 후 여호람이 왕위에 오른 것과 그의 재임 기간에 벌어진 일들 그리고 그의 종말에 대해 다룬다.

당시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와 결혼을 통해 우호 관계에 있었고 오므리 왕조가 이세벨을 통해 바알숭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영향도 함께 받고 있었다.


여호람이 왕위에 오르고 북왕국 아합왕의 딸과 결혼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길로 간다. 그의 행태는 북 이스라엘의 왕들과 다를 바 없고 그가 다윗 왕가에 속했다는 사실만 달랐을 뿐이었다. 그나마 그가 왕위를 지속할 수 있었고 하나님이 당장에 벌하지 않으심은 다윗에게 하신 언약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치세기간 중에 에돔의 배반(8-10)으로 전쟁은 이기나 영토와 지배권을 상실케 하신다. 또한 계속되는 여호람의 악행으로 엘리야를 통해 심판이 예고하시고(11-15) 결국 하나님께서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을 움직여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찍으로 그들을 징계하신다(16-17). 결국 돌이키지 않는 여호람에게 비참한 종말이 찾아온다(18~20절).


[역대하 21:18-20] 20 이 모든 일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람을 치사 능히 고치지 못할 병이 그 창자에 들게 하셨으므로 19 여러 날 후 이 년 만에 그의 창자가 그 병으로 말미암아 빠져나오매 그가 그 심한 병으로 죽으니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분향하던 것 같이 그에게 분향하지 아니하였으며 20 여호람이 삼십이 세에 즉위하고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다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무리가 그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두지 아니하였더라 


덧붙이자면 여호람의 이야기는 결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물론 여호람의 결혼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에 의해 정략적으로 추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달랴와 결혼을 통해 나타난 나쁜 결과는 피할수 없었다. 그 영향은 당대 뿐 아니라 후대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국가의 정책 기조가 흔들렸을 뿐 아니라 손자들이 그에 의해 살해당하는 가족사의 비극을 초래했다. 따라서 배우자에 대한 결정은 신중하되 무엇보다 신앙적 조건을 중시해야 한다. 결혼의 선택을 통해 그가 가진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22장 23장 24장



22장 | 아하시야의 통치


*아하시야의 대를 이은 악행(1-4)

아합과의 동맹이 빚어낸 해로운 영향은 아하시야의 1년간의 짧은 통치 동안에도 계속되었다. 아합의 길로 걸었다. 요람과 불필요한 전쟁에 함께 동맹을 맺고 참여했다(5-6).


*아하시야, 예후에게 죽임당함(5-9)

이스라엘의 여호람에 대한 요아스의 우호적인 행동은 자신의 죽음을 불러 왔다. 아하시야의 죽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았고(7) 예후의 손에 잡혀 죽게 된다.(9)


[역대하 22:7] 아하시야가 요람에게 가므로 해를 입었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But it was ordained by God that the downfall of Ahaziah should come about through his going to visit Joram. 


이에 대해 역대기 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그 사건은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기름 부으셔서 아합의 집을 멸하게 하시려는 과정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아하시야의 죽음은 아합 가문에 대한 심판의 일부분에 속한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나봇의 밭에 버려진 요람(왕하 9:25-26)과 달리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정식으로 장사된다(참고 왕하 9:28).


*아달랴의 통치와 요아스의 피신(10-12)

그의 죽음으로 그 모친 아달랴가 전횡하게 되었다. 6년 동안 아달랴는 유다에서 자기 가족의 우상 숭배를 마음껏 퍼뜨렸다. 그녀는 자기 자식을 모두 잃었었는데 그러나 이번에는 자기가 손자들을 몽땅 살해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윗 가문의 왕위 계승자의 씨를 말리려 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악이 득세하는 듯할 때조차도 당신에게 신실한 자가 누구인지를 아심 언약을 지키신다. 아달랴는 왕이 될 수는 있었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마치 하나님께서 산파들의 손을 통해 모세를 건지신 것처럼 그렇게 요아스는 여호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인 여호사브앗의 손을 통해 건짐을 받는다. 



23장 | 요아스의 등극


*여호야다의 반란계획(1-7)

여호야다의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반란이 이뤄진다. 이 제사장은 모든 일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세심한 배려를 기울였다. 그리고 역대기 저자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의 역할을 특히 강조한다. 제사장의 목적은 분명했다. 즉 유다가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이다. 실패하는 날이면 비극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신중하게 그것을 시도했다. 하나님올 위해 한 행동은 어떤 것도 그 일이 심지어 반란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에 일치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요아스를 왕으로 세움(8-15)

여호야다의 계획대로 일은 진행된다. 철저한 경계 속에서 왕자에게 왕관을 씌우고 왕이 지켜야 할 율법을 낭독하며 기름을 부어 즉위식을 마친다. 이 광경을 목격한 백성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그러나 이 소리를 듣고 달려온 아달랴는 옷을 찢으며 ‘반역’이라고 외쳐보지만 호위병들에 의해 성전 밖으로 끌려가 살해된다. 여기서도 성전의 구별됨을 강조하는 제사장 여호야다의행동이 부각된다.



*언약체결과 바알우상척결(16-21)

여호야다는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가장 펼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주신 언약올 되새기는 언약의 갱신임을 확신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백성과 왕이 여호와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체결한다(16). 

언약갱신 후 온 백성이 바알신당으로 가서 바알 우상을 없애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 성전 직무를 정비한다(17-18). 그리고 왕을 왕위에 즉위시킴으로써 모든 절차를 끝낸다. 온 백성은 즐거워하고 예루살렘에 평온이 찾아왔다.



24장 | 요아스왕의 행적 : 좋은 출발 나쁜 마침


24-25장은 남유다 왕 요아스와 아마샤에 대해 구약교회인 남유다 왕국을 이끄는 왕으로서 적절한지 그 여부를 자신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있다.


*요아스의 초기통치(1-14)

요아스는 유다의 역대 왕들 중에 가장 어린 나이인 7세에 왕위에 올라 40년을 다스렸다. 그의 행적에 대해 역대기 저자는 “여호야다가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라고 평가함으로써(2) 요아스의 삶에 제사장 여호야다가 매우 큰 영향을 끼쳤음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여호야다가 죽었을 때 요아스가 더 이상 여호와를 섬기지 않았다.


또한 3절에서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선별한 두 아내에게 장가들어 자녀를 낳았다고 기록한다. 여호야다는 왕의 아내를 간택할 정도로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다. 지난 몇 대에 걸쳐 우상숭배와 아달랴의 위협 등 혈통이 끊어질 위기가 있었기에 이런 위기 상황이 다시 오지 않도록 경건한 결혼을 이끌어내었다. 


선지자와 제사장이 함께 기름부음받은 왕의 신앙적 사고와 행위에 깊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좋은 것이며 신약교회의 직분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직분의 동등성을 가짐을 보여준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여서 왕을 정점으로 하는 하이어라키, 수직적인 구분이 나타나지만 본질적으로 직분은 동등하다. 신약교회는 이것이 더 분명히 나타난다. 목사와 장로와 집사는 역할은 다르나 동등하다.



*요아스의 범죄(14-22)

하지만 요아스가 여호와 하나님께 정직히 행했던 것은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았던 시기에 국한된다. 그러나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자그때를 노리고있던 사람들, 예루살렘 중심의 성전 정화운동으로 인해 타격을 입었던 유다 방백들이 방해자인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를 방문해 왕을 부추겨 자신의 말을듣게 했다(17절). 그러자 요아스는 그들의 말을 따랐고 자연스럽게 이전 왕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호와의 성전을 외면하고 아세라 목상과 이방 우상들을 섬기게 되었다.


물론 당시에도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선지자는요아스가 믿고 따랐던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였다. 스가랴는 요아스의 변심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며 그의 잘못을 질책했다(20). 하지만 요아스는 회개치 않고 여호와의 성전에서 선지자를 죽임으로써(21) 여호야다를 향해 배은망덕한 행동을 하고 여호와를 향해 패역을 범했다(22).


마태복음 23:35와 누가복음 11:51을 보면 예수님께서 스가랴의 죽음을 인용한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통해 의인 아벨의 피에서(창세기) 스가랴의 피까지(역대하를 구약시대의 의로운 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역대하가 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순서에서 마지막 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인용은 본질적으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과 요아스 시대의 영성은 같은 것이라고 폭로하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so that on you may come all the righteous blood shed on earth, from the blood of righteous Abel to the blood of Zechariah the son of Barachiah, whom you murdered between the sanctuary and the altar.



*요아스의 통치말년(23-27)

하나님을 떠난 요아스 왕의 말년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아람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유를 요아스가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 하시려고 적은 수의 아람 사람들에게 패배케 하셨다고 신학적 해설을 한다.


[역대하 24:24]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들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



25 26 27


25장 | 아마샤왕의 행적


아마샤에 대한 평가는 이 한 절로 요약된다(2) 그런데 열왕기하에선 아마샤의 잘못을 보다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역대하 25:2]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야고보서 1:8] (그는)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he is a double-minded man, unstable in all his ways.


하나님의 도움으로 에돔과의 전쟁은 승리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승리케 하신 하나님 보다 자신에게 더 많은 안정감을 제공해주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이방 우상에게로 향한다(14) 


전쟁이 일어남은 왕과 나라가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을 떠날 때일어나는 언약적 저주이다. 그러므로 이런 징조가 일어나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한다. 


선지자를 통한 여러차례의 경고에도 귀를 닫아 버린다. 결국 그는 북왕국과의 전쟁에서 비참하게 패하고 하나님을 버린 후부터 일어난 반역의 무리들이 그를 죽인다.(27) 이는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결과이다.


요아스와 아마샤

요아스와 아마샤, 두 명의 유다왕은 부자지간이면서 많은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모두 처음에 마음을 오로지하여 하나님을 경외 했지만 이후 우상숭배를 자행하고 선지자의 외침을 듣지 않으며 결국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다른 나라의 첨입을 받아 국력을크게 손실시켰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반란에 의한 암살이라는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역대기 저자는 이방 종교와 문화의 홍수 속에 살던 페르시아 시대에 순수한 구약교회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만이 살 길이며 그러지 못할 때는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임한다는 라는 메시지를 이 두 왕의 행적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26 27 28장 : 웃시야 요담 아하스의 통치



26장 | 웃시야의 통치


*웃시야의 형통과 범죄(1-23)

웃시야는 열왕기상에서 아사랴라고 불리지만 역대기에서는 웃시야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져 있다. 무려 52년간을 재위한다. 그에 대한 요약된 평가는 4-5절에 나오며 대체로 긍정적이다.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그는 교만하여 악을 행하고 범죄하며 징계를 받는다(16) 그는 병을 얻은 후 다시는 하나님의 성전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역대하 26:4-5] 4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4 And he did what was right in the eyes of the LORD, according to all that his father Amaziah had done. 5 He set himself to seek God in the days of Zechariah, who instructed him in the fear of God, and as long as he sought the LORD, God made him prosper.


[역대하 26: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But when he was strong, he grew proud, to his destruction. For he was unfaithful to the LORD his God and entered the temple of the LORD to burn incense on the altar of incense.


[역대하 26:20-21] 20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21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 20 And Azariah the chief priest and all the priests looked at him, and behold, he was leprous in his forehead! And they rushed him out quickly, and he himself hurried to go out, because the LORD had struck him. 21 And King Uzziah was a leper to the day of his death, and being a leper lived in a separate house, for he was excluded from the house of the LORD. And Jotham his son was over the king’s household, governing the people of the land.



27장 | 요담이 웃시야를 대신하여 왕이 되다


요담의 통치 기간 내내 번영이 계속되었다. 영토의 수비가 강화 되었고, 더 나아가 요단강 너머에 있는 암몬으로부터 조공을 받기도 하였다. ‘영채’와 ‘망대 ’는 침략자들을 막고, 그들의 접근을 경고하기 위한 것으로 사슬모양으로 이어져 있었다. 요담 자신은 하나님께 신실했다(27:6). 그러나 자기백성도 그렇게 하도록 이끌었다는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역대하 27:6]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 So Jotham became mighty, because he ordered his ways before the LORD his God.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쉬운 길을 쫓아 입술로는 여호와를 경외하면서도 동시에 자기들이 따르기 힘든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다(27:2)


[역대하 27:2]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더라. And he did what was right in the eyes of the LORD according to all that his father Uzziah had done, except he did not enter the temple of the LORD. But the people still followed corrupt practices.


[참조]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힘썼던 왕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이한 도움을 얻었던 반면(대하 26:15), 그렇지 않았던 왕들은 안정적인 상황에서도 위기를 겪었습니다. 우리 삶은 하나님의 은혜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가 예배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예배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예배가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 지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성도를 위한 365 성경통독 주석, 155)



28장 | 아하스


역대기하 28장은 열왕기하 16장과 내용상 겹치지만 평가와 평가의 기준은 차이가 있다. 1-4절과 26-27절은 열왕기하 16장과 비슷하지만 5~25절은 역대기만의 기준과 평가를 한다. 

아하스에 대한 평가는 한 가지다. 웃시야는 하나님을 찾아서 형통하다가 교만해지면서 형벌을 받은 왕이고 요담은 정직하여 형통한 왕인데 반해, 아하스는 우상 숭배만 하다가 형벌을 받고도 마지막까지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지 않은 왕으로 평가한다. 


*아하스의 범죄(1-4)


[역대하 28:1-4] 1 아하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 동안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아니하고 2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3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4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니라 



*아하스의 범죄로 인한 유다의 정치적 · 군사적 곤고함(5-21)

아하스 통치기의 남유다는 바람 앞의 촛불과 같았다. 북으로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이(5), 동과 남으로는 에돔과 블레셋이 침략을 일삼았다(17-18). 

그래서 아하스가 시도했던 유일한 희망은 앗수르의 호의와 도움이었다.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는 무시되었다(사 7장). 그러나 아하스가 얻었던 구원은 극히 미미했다. 

다메섹과 사마리아가 앗수르인들에게 함락되어 그들이 더 이상 유다 위에 군림하는 일은 없었지만, 이제는 반대로 아하스는 앗수르의 가신이 되고, 유다 왕국은 속국이 되어 해마다 공물을 갖다 바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남쪽과 서쪽으로 상당 부분의 영토를 상실하기 까지 했다.


*아하스의 신앙적 범죄 (22-27)

앗수르 왕의 도움을 청했던 아하스가 앗수르 왕으로 인해 다시금 곤경에 처하는데 그는 곤경 중에 여호와를 찾지 않고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했다. 왜 아하스는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했는가? 그는  전에 아람의 왕들이 승리한 것(5)을 아람의 신들 때문이라고 생각한 결과다. 그는 전국 곳곳에 우상을 세우고  하나님 대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고 여호와의 성전을 부수고 패쇄하여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했다. 



29 30 31 32 

이스라엘을 회복한 개혁자 히스기야


히스기야의 시대는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남 유다의 선왕 아하스의 악정 탓으로 종교적으론 예루살렘 성전 제사가 마비되고, 정치적으론 최악의 상태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즉위 직후 종교개혁을 단행해 예루살렘 성전 제사를 회복하는 동시에(대하 29-31장) 예배를 통해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올 껴안는 정치적 통일을 이룬다(30장).

한면 히스기야는 정치적 위기를 맞아 여호와를 신뢰함으로(32장)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버금가는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마련한다.


A 도입구(29:1-2)

B 히스기야 통치 원년의 제사(예배) 개혁(29:3-31:21)

a 첫째 달: 성전 재봉헌과 속죄제사 (29:3-36)

b 둘째 달: 온 이스라엘의 유월절/무교절 축제(30:1-31:1)

c 셋째 달에서 일곱째 달까지: 성전 임무의 개정(31:2-19)

d 제사(예배) 개혁에 대한 평가(31:20-21)

C 정치적 활동(32:1-31)

a 산헤립의 예루살렘 포위(32:1-23)

b 히스기야의 교만과 회개, 히스기야의 부와 명예(32:24-30상)

c 정치적 치적에 대한 평가(32:30하-31)

D 결구(32:32-33)



29장 |  히스기야왕의 등장과 개혁의 시작


사악한 자들의 모든 악에는 불구하고 하나님의 진리는 계속 남아 있다. 그래서 전에 누군가가 아하스의 아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가르쳤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왕위에 오르자마자 그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히스기야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 누구인지 나와있지는 않지만 무명의 지도자와 성령님의 감화하심이 택하신 자에게 분명히 나타나는 것을 볼수 있다.


*유다왕 히스기야의 성전 정화(1-19)

히스기야왕은 조상들의 종교적 죄 즉 성전과 예배에 대한 소홀함을 지적하면서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왔다고 말한다. 

조상들의 죄는 구체적으로 성전의 문을 닫고 등불을 끈채 제사를 드리지 않은것이었다(7). 즉 아하스 왕의 통치 기간에 성전에서 제사(예배)가 일절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조상들의 죄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켜 징벌올 불러왔다는 것을 깨닫는다(8). 유다는 아직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으므로(9) 이를 피하기 위해 히스기야 왕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갱신하고자 한다(10).

이런 인식은 성전 정화와 백성들을 위한 속죄제로 그치지 않고 개혁의 원동력이 된다. 예배의 타락은 생활의 타락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성전의 일이 갖추어 지다(20-36)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 의해 성전이 정화되고 성전 기물이 봉헌되자 히스기야 왕은 속죄제사를 드리고자 신하들과 함께 ‘왕조와 성전과 유다’를 위해 제물을 드린다.

히스기야 왕은 속죄제를 마친 후 성결케 된 백성들을 감사제에 초대한다(29:31). 회중들이 제사장을 필요로 하는 번제물을 예상 외로 많이 가져오자(32-33, 35) 제사장들의 힘만으로 번제를 드리기에 역부족이어서 레위인들을 도움의 손길로 불러 함께 일하게 한다. 

제사장들에게 한정돼 있던 제사 업무에 레위인들이 참여케 된것은 상황에 따른 임시조치였다. 레위인들이 제사장들보다 성결에 열심이었고(34) 그들의 봉사를 통해 성전 제사(예배)가 회복 되었으며(35)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해 예비하신 일’이라고 강조함으로써(36) 레위인들의 제사 업무 참여와 협조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레위인의 협력이 있었기에 제사(예배)가 아무 탈없이 진행될 수 있었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새로운 형태의 통역을 통해 제사(예배)가 회복된 것이다.


참된 종교개혁은 예배개혁, 성경적 예배로의 전환으로부터 시작된다. 또한 예배개혁은 직분의 개혁과 함께 일어나야 한다.



30장 | 온 이스라엘의 유월절을 회복하다.


성전이 재봉헌되고 백성들이 성결케 되며 성전제사(예배)가 회복되자,  히스기야 왕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편지를 보내 ‘규례대로’ 온 이스라엘이 모여 함께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키자는 뜻을 전한다(30:1,  5). 히스기야 왕은 아하스 시대에 멸망했지만 그 땅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 형제인 북 이스라엘 백성틀(28:8-15)과 함께 하는 유월절을 처음부터 계획하고 있었다.

상당수는 히스기야의 요청을 조롱하고 비웃었다(10). 하지만 이 요청에 응한 ‘몇 사람’이 있었는데(11), 여기에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비록 북이스라엘이 멸망했을지라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유월절 의식에 동참한 자들은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 받았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26절은 히스기야 시대에 ‘온 이스라엘’이 함께 지킨 유월절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기록한다. 


[역대하 30:25-26] 25 유다 온 회중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에서 온 모든 회중과 이스라엘 땅에서 나온 나그네들과 유다에 사는 나그네들이 다 즐거워하였으므로 26 예루살렘에 큰 기쁨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기쁨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


역대기 저자에 따르면 ‘온 이스라엘’은 왕국이 분열되기 이전 다윗과 솔로몬의 때처렵 다시 한번 예루살렘 성전 예배에서 통일을 이룬다.


[역대하 30:27]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하늘에 들리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이르렀더라. Then the priests and the Levites arose and blessed the people, and their voice was heard, and their prayer came to his holy habitation in heaven.


참된 신앙의 회복과 개혁은 자신은 부족하지만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갈망과 예배자로서의 자신을 발견함에 있고 그러한 새로운 갈망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말미암는다.


31장 | 히스기야의 종교개혁


31장에는 더 이상 패역한 열조들과 같이 우상을 숭배해 여호와를 진노케 하지 않고 참 신앙을 지속하기 위해 히스기야가 한 노력들이 나타나 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성전을 정화하고, 온 백성들로 하여금 유월절을 지키게 한 후에 보다 구체적인 개혁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히스기야는 성전 일을 맡은 자인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책을 회복시킴과 더불어 일련의 종교 개혁을 일으킨다.

 

*백성들의 우상 타파와 제사 직무 정비(1-3)


*제사장과 레위인의 응식과 성물의 분배(4-19)


히스기야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려고,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에게 명령을 내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몫을 가져 오게 하였다. 

백성들이 가지고 온 십일조를 쌓는데 4개월이나 걸렸고 히스기야와 신하들은 이것을 보고 여호와를 찬양하고, 백성을 축복하였다. 사독의 자손인 아사랴 대제사장이 이 일에 대해 왕에게 이렇게 해석하여 말한다. 


[역대하 31:10] 사독의 족속 대제사장 아사랴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만족하게 먹었으나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for the LORD has blessed his people)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 


소산의 처음 것과 십일조는 제사장들을 먹여 살리고(민 18:12-13), 레위인들이 성전에서 봉사하는 중에 자기 가족들을 어떻게 부양할까에 관한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민 18:20-24) 제정되었다. 그런데 이 경우에 백성들이 자기틀의 의무에 충실해서 넘치도록 냈다(31:12). 이는 백성들의 단순한 종교적 열정이 아니라 제사(예배)가 온전하게 이루어지고 드려지는 일을 위해 자신의 것을 기쁨으로 드린 것이다. 신약교회는 이 일을 위해 헌금을 하며 그것을 관리하고 집행하는 집사의 직책이 있다. 그러므로 직분, 신약교회의 직분 역시 예배를 예배답게 하는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히스기야의 형통의 이유(20-21)


[역대하 31:20-21] 20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good and right and faithfu) 행하였으니 22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seeking his God) 한 마음으로(with all his heart)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32장 | 히스기야의 위기와 그의 죽음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위협하다(1-23)

*히스기야의 병과 교만(24-26)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큰 위기와 시험을 통과했지만, 그는 좀 더 개인적인 시험에 직면해서는 잘 통과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죄의 결과들은 취소되지 않았다. 그가 그 모든 고통을 겪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대신 그의 백성들이 죽었다.


*히스기야의 부와 영광 그리고 교만(27-31)

멀리 떨어진 바벨론에서 사절단이 도착했을 때 그는 그만 또 교만에 사로잡혔다. 그들이 찾아온 온 것은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 ’ 때문이었다(왕하 20:12). 그런데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해야 했던 것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는 실수를 또 다시 범했다(왕하 20:13-15) . 그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었는데도 말이다(23, 27-29).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시고 달아보시는 분이시다.(31)


[역대하 32:31]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God left him to himself, in order to test him and to know all that was in his heart)


[잠언 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Toward the scorners he is scornful, but to the humble he gives favor.


[야고보서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But he gives more grace. Therefore it says, “God opposes the proud but gives grace to the humble.”


[베드로전서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Likewise, you who are younger, be subject to the elders. Clothe yourselves, all of you, with humility toward one another, for “God opposes the proud but gives grace to the humble.”



C.S.루이스는 "교만한 자는 항상 밑을 보고 있다. 말을 내려다보느라 바빠서 자기 위에 계신 분을 제대로 쳐다보질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교만의 반대는 자기 경멸이나 자학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는 것, 그분 앞에 서는 것, 바로 그것을 우리는 '겸손'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인정을 넘치도록 받는 사람은 더는 인간의 박수갈채와 인정에 예민해지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영혼의 상처가 치유되고 생각이 건강해지고 재능이 아름답게 쓰이게 된다.


*히스기야가 죽다(32-33)




33장 | 므낫세와 아몬


열왕기하 21:11~16은 므낫세에 대한 선지자의 비난을 길게 기록함으로써 므낫세에 대한부정적인 입장을보여준다. 반면에 역대하 33장은 열왕기하 21:11-16의 내용을 빠뜨리고 있고 오히려 열왕기하 21장에 언급되지 않은 므낫세의 유배와 회개 그리고 그의 회복에 대한 내용을 추가한다.

이런 차이점은 열왕기 저자와 역대기 저자의 신학적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열왕기 저자는 므낫세의 죄악을 예루살렘 멸망의 원인으로 평가하는 반면, 역대기 저자는 므낫세에 대해 포로로 잡혀가서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약속의 땅으로 귀환한후 하나님의 회복된 백성이 되는 자들의 한 모델로서 제시한다. 종합해보면 열왕기는 므낫세의부정적인 면에, 역대기는 그의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다.


A 역대하 33:1-20의 구조

a 므낫세의 통치 시작(1)

b 므낫세의 악행(2-9)

c 므낫세의 유배(10-11)

d 므낫세의 회개와 구원(12-13)

c’ 므낫세의 선행(14)

b’ 므낫세의 회복(15-17)

a’ 므낫세의 통치 종결(18-20)


B 역대하 33:21-25의 구조

a 암몬의 통치 시작(21)

b 암몬의 악행(22-23)

a’ 암몬의 통치 종결(24-25)



*므낫세가 왕위등극과 악행(1-9)

므낫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악행을 저지른다. 대표적인 두가지 악행은 다음과 같다. 첫 째, 여호와께서 가중하게 여기시는 우상숭배의 죄악에 깊이 연루된다(신명기 18:9-13)

무엇보다 므낫세는 자신의 자녀들올 이방 제사의 제물로 바첨으로써 우상숭배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 또한 므낫세가 저지른 두 번째 큰 잘못은 하나님의 성전올 더럽힌 것이다.

역대기 저자는 므낫세의 악행뿐 아니라,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그의 교만이 심판을 더욱 가속화시쳤다고 진단한다(10). 여호와의 경고 메시지 즉 여호와께서 보낸 선지자들의 말씀을 듣는 것과 듣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의 운명을 좌우할 수밖에 없다. 선지자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하나님의 회복과 축복을 보장하지만,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은 심판을 확증해 줄 뿐이다.


*므낫세의 유배, 회개, 구원, 선행, 죽음(10-20)

언약에 대한 불순종과 아울러 경고의 메시지에 대한 무시는 앗수르에 의한 바벨론으로의 유배라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다. 므낫세는 앗수르 군대에 의해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압송된다. 그러나 므낫세는 자신에게 닥친 위기의 순간에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므낫세는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여(12) 하나님의 긍휼로 다시 왕위에 앉게 된다(13).

절망의 나락에서 회개와 겸손을 통해 회복의 축복을 경험한 므낫세의 통치 방식은 이전과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그는 먼저 여호와께서 자신의 하나님이심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하나님의 축복에 따른 국가의 안전에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며, 우상숭배의 가증한것들을 제거한다.

므낫세의 이런 변화는 그의 회개와 겸손의 진실성을 잘 반영한다. 특히 역대기 저자가 므낫세의 회개와 겸손의 중요성을 다시 언급하며 므낫세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음은 그의 포로 귀환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던져준다.


“비록 심판이 임하여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여전히 희망은 남아있다. 죄인 중에 괴수인 므낫세도 바벨론의 유배 중에 회개하여 회복되었다. 이스라엘도 그와 같이 할 수 있으며, 그와 동일한 회복을 경험할 수 있다 "



*아몬(21-25)

므낫세의 아들 아몬이 악한 므낫세 아래서 그의 유년기를 보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므낫세의 뒤를 이은 아몬의 통치는 므낫세의 선행보다 더욱 악행을 답습한다(22). 그의 2년 간의 통치는 그의 신복들의 손에 죽음을 당할 만큼 악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를 죽인 자들은 벌을 받아야만 했고, 다윗 족속에 대한 일반 백성들의 충성은 계속해서 그의 자손으로 왕위를 잇게 한 데서 입증되었다.

흥미롭게도 역대기 저자는 아몬의 문제를 지적할 때 므낫세의 겸손한모습을 언급한다. 


[역대하 33:23] 이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스스로 겸손함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더니 And he did not humble himself before the LORD, as Manasseh his father had humbled himself, but this Amon incurred guilt more and more.


이것은 여호와의 얼굴을 구한 겸손한 신앙이야 말로 므낫세의 개혁의 길과 장기 통치의 비결임을 암시하고, 암몬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신의 죄악올 회개하지 않는 교만에 있음을 시사한다.


ㄴ아몬의 통치 시작(21)


ㄴ아몬의 악행(22-23)


ㄴ아몬의 통치 종결(24-25)


34, 35, 36


34-35장은 선한 왕 요시야왕의 행적과 죽음을 다루고 있고 36장은 유다말기의 왕 4명과 바사왕 고레스 그리고 유다의 멸망과 소생에 대한 기록이다.  34-35장에 나오는 요시야 왕같은 경우는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열왕기하 23: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


반면 유다말기의 네 왕들은 포로귀환과 성전재건을 명한 바사왕 고레스왕보다 초라하게 조명된다.


A 요시야의 행적(34:1-35:19)

a 26세 이전의 행적(34:1-7)

b 26세 때의 행적(34:8-35:19)

1) 율법 책 발견(34:8-33)

2) 유월절 준수(35:1-19)

B 요시야의 죽음(35:20-27)



34장 | 요시야왕의 개혁의 시작


*요시야왕의 개혁(1-7)

그는 어리고 또 주위에 그를 돕는 선지자도 없었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었다.


[역대하 34:1-3] 1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 동안 다스리며 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he did what was right in the eyes of the LORD)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walked in the ways of David his father; and he did not turn aside to the right hand or to the left) 3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he began to seek the God of David his fathe)… 


하나님을 “찾다” 라는 히브리어 “다라쉬”는 ‘상의하다’, ‘열정적으로 알려고 애쓰다’(전 1:13. ‘궁구하다)라는 뜻이다. 즉 요시야는 어려서부터 매사에 하나님과 상의하려 했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힘 썼다는 것이다. 유다와 예루살렘을 깨끗케 하는 원동력은 이런 훈련된 영성에서 나온 것 임에 틀림없다.


또한 그는 통치 12년 째인 20세가 되자 작심을 하고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케 한다. 산당들, 아세라 목상들, 아로새긴 우상들, 부어 만든 우상들,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 있던 태양신의 신상을 모조리 제거한다.


*성전재건 중에 율법책을 발견하다(8-21)

성전재건 중에 무리가 율법책을 발견해 힐기야에게 건네준다. 이 책은 곧바로 요시야가 보낸 서기관 사반에게 건네지고 사반은 즉시로 요시야에게 가져가 그 앞에서 읽는다. 요시야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한다.

본문은 곳곳에서 ‘기록된 대로’, ‘규례대로’라는 말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 ‘책’,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한 것이다. 우리는 권위의 붕괴와 해체를 요구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살고있지만 양보할 수 없는 절대권위는 반드시 지켜나가야 한다.


*선지자 훌다, 재앙을 선포하다(22-28)

요시야는 사람들을 여자 선지자 훌다에게 보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묻게 한다. 훌다는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행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강조하며 유다에 임할 그분의 진노를 선포한다.


*여호와께 돌이켜 순종하기로 하다(29-33)

말씀을 듣고 회개한 요시야 당대에는 그 재앙을 면할 것임을 아울러 일러준다. 백성들은 그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을다짐한다.


경건한 왕들의 종교개혁은 단지 우상을 척결하는데 그치지 않고 예배의 개혁으로 나타난다. 예배의 개혁은 직분의 개혁을 동반한다. 이러한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의 재발견과 말씀중심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35장 | 요시야왕의 개혁과 그의 죽음


*요사야가 유월절을 지키다(1-19)

요시야는 율법책을 발견함으로써 율법 준수의 일환으로서 유월절을 제대로 지키게 한다. 또한 그는 유월절을 유다 민족 만의 축제로 끝나지 않고 이스라엘의 거민들도 함께 참여한 축제로 발전시킨다(18). 20세에 행한 개혁에서 멸망한 북이스라엘을 소외시키지 않았던 요시야는 유월절 절기에도 그들을 포용함으로써 온이스라엘이 하나가 될 미래를소망한다.



*요시야가 전쟁에서 죽다(20-27)

앗수르의 멸망을 고대하던 요시야는 그때 느고의 원정을 막기 위해 므깃도로 올라갔다가 불행하게도 그곳에서 부상해 전사하고 만다. 선한왕 요시야는 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열왕기에선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역대기에선 느고는 자신의 원정에 대해 하나님 계획의 일환이었음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요시야가 그 경고를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21). 요시야와 같은 선한 왕도 판단의 실수를 범할 수 있다. 비록 그것이 하나님 앞에 결정적인 잘못은 아니지만 말이다.



36장 | 유다 말기의 왕들과 바사왕 고레스


아담(대상 1:1)으로부터 시작된 역대기서 저자의 기록은 역대하 36장에서 유다말기의 네 왕들에 대한 기록과 바사왕 고레스의 칙령에 근거한 회복의 소망으로 결론을 맺는다. 유다의 멸망을 마무리 하고 기록된 고레스의 칙령은 포로 후기 시대를 열어줄뿐 아니라그당시 백성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부여한다.


*여호아하스의 사적(1-4)


*여호야김의 사적(5-8)


*여호야긴의 사적(9-10)


*시드기야의 사적과 예루살렘 멸망(11-21)


*고레스의 칙렁을 통한 회복의 소망과 사명(22-23)


20절에서 유다의 포로 기간을 바사 제국의 주재 때까지 언급하고 안식의 개념과 70년 포로 예언의 성취로 포로기간을 다룬 후, 바사왕 고레스의 칙령(BC 538년)을 언급하면서 곧바로 포로 후기의 상황으로 전환한다. 


역대기 저자는 고레스의 칙령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준 이스라엘 회복 예언의 성취로 전하고 있으며(렘 25:11-14 ; 29:10),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처럼 바사(페르시아) 제국을 회복의 도구로 사용하고 계심을 밝힌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과 주권의 결과임을 말한다. 


역대기를 마무리 짓는 이 본문은 포로 후기의 백성들에게 회복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를 전할 뿐 아니라 국가 재건의 사명도 함께 제시한다.  왜냐하면 국가 멸망의 중심에 성전의 운명이 있었던 것처럼 국가재건의 핵심에 성전 건축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참된 예배의 회복이야 말로 구약교회의 회복이기 때문이며 사명의 회복이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