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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노래 그리고 책/도종환

내 안의 시인

내 안의 시인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었다는데

그 시인 언제 나를 떠난 것일까


제비꽃만 보아도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어쩔줄 몰라 하며 손끝 살짝살짝 대보던

눈빚 여린 시인을 떠나보내고 나는지금

습관처럼 어디를 바삐 가고 있는 걸까


맨발을 가만가만 적시는 여울물 소리

풀잎 위로 뛰어내리는 빗방울 소리에 끌려

토란잎을 머리에 쓰고 달려가던

맑은 귀를 가진 시인 잃어버리고

오늘 하루 나는 어떤 소리에 묻혀 사는가


바알갛게 물든 감잎 하나를 못 버리고

책갈피에 소중하게 끼워두던 고운 사람

의롭지 않은 이가 내미는 손은 잡지 않고

산과 들 서리에 덮여도 향기를 잃지 않는

산국처럼 살던 곧은 시인 몰라라 하고

나는 오늘 어떤 이들과 한길을 가고 있는가


내 안에 시인이 사라진다는 건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최후의 인간이 사라지는 거라는데

지팡이로 세상을 짚어가는 눈먼 이의

언 손 위에 가만히 제 장갑을 벗어놓고 와도

손이 따듯하던 착한 시인 외면하고

나는 어떤 이를 내 가슴속에 데려다놓은 것일까




이웃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는 시인의 고백이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한 구절과도 잇대어 생각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