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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노래 그리고 책/도종환

축복

축복

 

이른 봄에 내 곁에 와 피는

봄꽃만 축복이 아니다


내게 오는 건 다 축복이었다

고통도 아픔도 축복이었다


뼈저리게 외롭고 가난하던 어린 날도

내 발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던

스무 살 무렵의 진흙덩이 같던 절망도

생각해보니 축복이었다


그 절망 아니었으면 내 뼈가 튼튼하지 않았으리라

세상이 내 멱살을 잡고 다리를 걸어

길바닥에 팽개치고 어둔 굴 속에 가둔 것도

생각해보니 영혼의 담금질이었다


한 시대가 다 참혹하였거늘

거인 같은, 바위 같은 편견과 어리석음과 탐욕의

방파제에 맞서다 목숨을 잃은 이가 헤아릴 수 없거늘

이렇게 작게라도 물결치며 살아 있는 게

복 아니고 무엇이랴


육신에 병이 조금 들었다고 어이 불행이라 말하랴

내게 오는 건 통증조차도 축복이다

죽음도 통곡도 축복으로 바꾸며 오지 않았는가


이 봄 어이 매화꽃만 축복이랴

내게 오는 건 시련도 비명도 다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