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노래 그리고 책/도종환 썸네일형 리스트형 구원은 매일 오는 게 아니다 구원은 매일 오는 게 아니다 하는 일마다 잘 안 되고 힘이 들 때면 ‘내 인생은 왜 이리 잘 안 풀릴까, 난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운명을 탓하게 된다. 같은 직장 동료이던 ㅂ 선생님은 자주 그런 말을 하곤 했다. 무슨 제도들이 꼭 자기 앞에서 바뀌어 왔다는 것이다. 자기 차례만 되면 입시제도가 바뀌고, 군 복무기간이 늘어나고, 규정이 달라져 지금까지 쌓아놓은 것이 소용없어지고, 승진제도가 바뀌어 불이익을 받고 그랬다는 것이다. 머피의 법칙이 자기를 두고 만들어 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분은 좋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젊은 날을 즐겁게 보냈으며 뜻하지 않은 상도 여러 번 받았다. 자기 친구들만큼 승진하지 못한 불만은 있지만 내가 보기엔 가지고 있는 달란트 만큼은 보상을 .. 더보기 창조하는 일도 어렵고 짜증스러운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창조하는 일도 어렵고 짜증스러운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땠습니까. 오늘 하루의 삶, 오늘 하루의 생활은 만족할 만했습니까.무엇인가를 얻은 하루였는지요 다른 날보다 훨씬 새로웠던 하루였는지요.아니면 어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지루하고 답답했던 하루는 아니었습니까. 서류더미 사이에서 하루종일 쓰고 지우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정신없이 보낸 하루는 아니었습니까. 전화에 시달리고 똑같은 계단을 몇 번씩 오르내리거나 똑같은 대답을 수십 번씩 반복해야 하는 하루는 아니었는지요. 먹을 것을 준비하고 치우고 다시 차리는 동안 설겆이물통을 따라 아래로 빠져 내려가는 하숫물처럼 그렇게 땟물을 안고 흘러가 버리는 나날은 아니었는지요. 새롭게 생산하고 창조하는 삶이지 못했다고 느끼는 생활의 연속은 아니었는지.. 더보기 살아 있는 고기는 물을 거슬러 오르고 죽은 고기는 그냥 떠내려간다 살아 있는 고기는 물을 거슬러 오르고 죽은 고기는 그냥 떠내려간다 김광규 시인의 시 중에 ‘작은 사내들’이란 시가 있다. “작아진다 / 자꾸만 작아진다.... / 얼굴 가리고 신문을 보며 세상이 너무 평온하여 작아진다 / 넥타이를 매고 보기 좋게 일렬로 서서 작아지고 / 모두가 장사를 해 돈 벌 생각을 하며 작아지고 / 들리지 않는 명령에 귀기울이며 작아지고 / 제복처럼 같은 말을 하며 되풀이하며 작아지고 /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며 작아지고 / 수많은 모임을 갖고 박수를 치며 작아지고 / 권력의 점심을 얻어 먹고 이를 쑤시며 작아지고 / 배가 나와 열심히 골프를 치며 작아지고 / 칵테일 파티에 나가 양주를 마시며 작아지고 / 이제는 너무 커진 아내를 안으며 작아진다..... / 작아졌다 / 그들은 충분.. 더보기 너무 잘나고 큰 나무에는 좋은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너무 잘나고 큰 나무에는 좋은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산수유나무가 샛노란 손을 흔들며 제일 먼저 인사한다. 모든 것이 죽은 듯이 보이던 잿빛 대지 위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그들은 생명을 가진 것들은 얼마나 소중한가 얼마나 끈질기며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것을 봄마다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들여다보면 나무는 우리에게 많은 삶의 지혜를 일깨워 준다. 모과나무잎이 가지 위에 하나씩 돋아나는 걸 보면 거기에도 일정한 순서가 있다. 오른 쪽에 잎 하나를 내면 반드시 왼 쪽에도 하나를 내고 그 가운데 또 하나를 낸다. 해뜨는 쪽으로 잎을 내면 해지는 쪽으로도 꼭 한 잎을 내곤 한다. 많은 나무들이 잎새 하나를 내는데도 정교한 질서가 .. 더보기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 ‘연탄 한 장’중에서 이 시는 안도현 시인의 시 ‘연탄 한 장’의 뒷부분이다. 우리 주위에는 흔하게 만나고 금방 스쳐지나가 버리는 많은 것들이 있다. 차창가로 스쳐지나가면서 늘 보는 것들이지만 관심을 갖고 눈여겨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시인이나 예술가는 보통사람들.. 더보기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 밤바람이 나뭇가지를 심하게 흔든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에 맞서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을 지키려는 나뭇가지가 있는가하면 바람에 자신을 전부 맡겨버린 가지도 있고, 바람과 맞서다 부러지는 가지도 있다. 네가 나를 흔들면 나도 너를 그냥 두지 않겠다고 몸부림과 아우성을 치다 생살이 갈라지듯 마른 뼈가 부러지듯 그렇게 찢어지는 가지가 있다. 살다보면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막무가내인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말과 행동이 거칠고 사리에 맞지도 않고 막돼먹은 사람에게 수모를 겪는 때가 있다. 아랫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고 윗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가까운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고 처음 만나는 사람 중에도 그런 .. 더보기 새해산행 새해산행 어수선한 연말이 지나고 또 바쁘게 새해가 왔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연말 연시는 차분하게 한 해를 마무리 짓고 새해 계획을 세우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보다는 대개 바쁘게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연말에는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한 각종 송년 모임으로 분주하고 새해 첫날부터는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인사를 하기 위해 바쁘다. 신정 연휴를 보내면서 조용히 새로운 다짐을 해 보거나 새해 계획을 세울 시간도 없이 쫓기듯 한 해를 시작한다. 연초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산행을 했다. 겨울 산길은 언제 찾아도 좋다. 도심 속에서 쫓기는 생활, 무겁고 분주한 생각의 실타래들을 털고 빈 마음으로 산을 대할 수 있어서 좋다. 겨울 골짝을 얼지 않고 흐르는 물 소리의 신선함이 좋고 참나무 마른 잎새를 스.. 더보기 들은 꽃을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들은 꽃을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봄이 오면 들은 많은 꽃을 피운다. 그 언덕에 크고 작은 많은 꽃들이 피게 한다. 냉이꽃,꽃다지, 제비꽃, 할미꽃, 노랑민들레가 다투어 피어나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그 꽃들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내어 준다.계절이 바뀌고 새로운 꽃들이 다시 피고 지는 동안 들은 그 꽃들을 마음껏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소유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많은 꽃들로 가득차 있다. 강물은 흘러오는 만큼 흘려 보낸다. 그래서 늘 새롭고 신선할 수 있다. 제 것으로 가두어 두려는 욕심이 앞서면 물은 썩게 된다. 강물은 제 속에 많은 물고기들이 모여 살게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살게 할 뿐 소유하지 않는다. 산도 마찬가지다. 그 그늘로 찾.. 더보기 미워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고통스럽다 미워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고통스럽다 미워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고통스럽다 숲의 나무들이 바람에 몹시 시달리며 흔들리고 있다. 나도 지난 몇 달간 흔들리는 나무들처럼 몸을 가눌 수 없었다. 나무를 흔드는 건 바람이지만 나를 흔드는 건 내 속의 거센 바람이었다. 아니 불길이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분노와 원망과 욕설과 비난의 불길이었고 미움의 모래 바람이었다. 그래서 고통이었다. 미워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몇 배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그 사람이 녹이 슬어 못쓰는 연장처럼 망가지기를 바라는 일이다. 내 미움이 그에게 다가가 그의 몸이 산화되는 쇠처럼 군데군데 벌겋게 부스러지기 시작하여 연모 구실을 못하게 되길 바라는 일이다. 그래서 버림받거나 버려지게 되기를 바라는 일.. 더보기 기도를 배우던 시절 기도를 배우던 시절 적하리의 봄은 포도껍질을 태우는 연기와 함께 왔다. 학교가 논밭 한가운데 덩그라니 있었기 때문에 교문을 벗어나면 바로 포도밭이 있었다. 부지런한 농부들이 겨울을 지내느라 갈라지고 터진 포도나무 껍질을 벗겨내면서 드러난 속 가지의 빛깔은 참 맑았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하셨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가지도 못되고 그저 벗겨져 불에 태워지는 포도나무껍질에 지나지 않았다. 내 안과 밖에는 그렇게 벗겨져 태워버려야 할 허물들이 많았다. 나는 그때 또 그곳으로 쫓겨 와 있었다. 외롭고 지쳤고 힘들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절이었다. 그러나 쓰러지지 않으려고 자신을 가파르게 다스려 갔고, 절망 때문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가난하고 초라했으며, 고통스러운 일들이 끊임없이.. 더보기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