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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raly/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제자도_탐 샤인

시편으로 기도하자

시편으로 기도하자 

김기현/ 수정로침례교회 목사

 

스캇 펙은 자신의 3부작에서 인생에 관해 우리가 두고두고 되뇌어야 문장을 한마디씩 던집니다.

<아직도 가야 >에서는 ‘인생은 고통이다’라고,

<끝나지 않은 여행>에서는 ‘인생은 복잡하다’라고,

<그리고 너머에>에서는 ‘인생은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지금 저는 그의 마지막 , ‘인생은 쉽지 않다’는 말이 닿습니다.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복잡하기 때문도 그렇고, 고통으로 가득한 바다이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처럼 쉽지 않고 이상으로 퍽이나 까다롭습니다.

사람의 신자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제게 어려운 하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분과 동행하는 나그네요, 순례자의 여정을 30 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어려운 것은 기도입니다. 그래도 힘들고 복잡한데 기도는 인생과 신앙을 어렵게 합니다. 삶은 고통이고, 성경은 무척 복잡합니다. 고통 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구원을 발견하고, 혼란스러울 정도로 복잡함 속에서 하나님의 풍성함을 발견합니다. 그렇다면 어렵기만 기도에도 무언가 의미와 신비가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기도에 관한 얀시의 두툼한 책을 번역하면서 출판사 편집인은 본래 없던 부제목을 붙였습니다. <기도: 하나님께 가는 가장 쉽고도 가장 어려운 >. 누구나 기도가 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지만, 정작 기도에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는 이들은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역으로 ‘기도를 기쁨이 아니라 짐으로 여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얀시는 솔직히 기도라는 주제와 맞닥뜨리면 ‘죄책감과 열등감’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의 말이 공감합니다. “기도에 관해서라면 누구나 초보자다.

기도의 초보자들이 기도를 학습하는데 유용한 최적의 자료는 성경이고, 단연 시편이 으뜸입니다. 시편은 여러 얼굴을 갖고 있어 용도가 다양합니다. 성경책이니 하나님 말씀이고, 예배를 위한 책이고, 찬송가요, (), 기도입니다.

트렘퍼 롱맨은 “시편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묻고 이렇게 답합니다. “대부분의 증거를 살펴보건대 시편이 주로 공적 예배에 사용되었다고 말할 있다”(<어떻게 시편을 읽을 것인가?>, 59) 하였다. 시편을 읽는 자체는 성경을 읽는 것이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찬송을 힘껏 부르는 것이고, 기도를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롱맨은 시편이 반드시 공적인 예배에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개인의 예배와 기도 생활에도 많이 쓰였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번에 걸친 한나의 기도를 언급합니다.(삼상 1:12~14, 2:1~11) 특히 번째 기도는 시편 113편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한나는 ‘잘 알려진 시편을 사용해 기도하면서 그것을 그녀 자신의 상황에 적용했음’을 있습니다. 성도들이 시편으로 자신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널리 행해진 관례입니다.

 

기도훈련에 시편이 좋은 이유

기도 훈련에 시편이 없이 좋은 것은 가지 측면입니다. 하나는 시편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태어난 아이를 상상해보세요. 아이는 부모가 건네는 말을 흉내 내는 것으로 언어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부모의 언어를 자기 것으로 삼는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자기 언어를 독창적으로 말할 없습니다. 기도의 초보자인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을 말로 삼아 말을 하는 것을 통해 기도를 배우게 됩니다. 다른 측면은 시편이 기도하는 우리의 상황과 정서를 너무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보프는 시편을 일컬어 우리 영혼의 엑스레이(X~Ray)라고 합니다.

“우리가 시편으로 기도할 , 우리는 안에서 우리 영혼과 개인과 그룹의 X~ray’를 발견한다. 시편은 우리 영혼의 상태와 동일시된다. 예컨대, 절망과 기쁨, 두려움과 신뢰, 비탄과 , 앙갚음을 하려는 소원과 용서하려는 욕구, 별이 총총한 하늘의 장엄함에 매료되는 것과 함께 내면으로 파고들려는 마음이다. (중략) 시편은 우리 영혼의 자서전을 누설하기에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말을 대변하고 동시에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말이기도 하다.(< 레오나르도 보프, The Lord Is My Shepherd>, 23)

내가 기도하면서 하고 싶었던 바로 말이 시편에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용할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그저 읽기만 해도 시편은 자체가 기도이기 때문에 기도가 됩니다.

 

“우리는 단지 시편을 매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기도책을 통해 성장해나가기 때문입니다. 시편의 기도들은 가끔 읽기만 해도 우리가 또다시 가벼운 음식물에 매달리지 않도록 우리의 생각과 힘을 매우 강하게 줍니다.(본회퍼, <본회퍼의 시편이해>, 30)

시편을 소리 내서 읽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간단합니다. 그러기에 시편은 기도의 초보자가 기도를 배우는데 안성맞춤인 게지요. 좋다면 시편은 본래 운율이 있는 시이므로 운치 있게 낭송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말로, 음악적인 낭송은 마음이 정돈되어 있고 평온하다는 증거이다.( 아타나시우스, < 안토니의 생애>, 192)

 

시편으로 묵상하는 여러 방법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성경들은 공동번역을 제외하고 시의 감흥을 살려내지 못했습니다. 이는 번역된 시의 운명이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히브리어로 읽기는 더욱 어려운 . 아쉬운 대로 지극한 마음을 모아 조용히 읊조리면 워낙 시편은 좋은 기도요, 하나님 말씀인지라 자체로도 탁월하여 부족하지 않습니다.

허나, 전체 150편으로 기도하기란 번거롭습니다. 필요에 따라 골라 읽으면 됩니다. 아타나시우스의 말입니다.

“시편 안에 담긴 모든 말씀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 쓰였지만,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필요한 시편을 선택하여 은혜를 받는 것이 좋겠다. 정원의 과일들 중에서 우리가 먹고 싶은 과일에 눈길을 던지듯이 말이다. (중략) 모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가르침을 우리는 성스러운 시편 안에서 찾을 있다. 그러므로 상황에 해당되는 시편을 찾아서 자신에 대해 쓰여진 말씀을 낭송하고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구절들로 찬송을 드리자.(193)

그러면 어떻게 자기 상황에 맞는 시편을 골라 기도할 있을까요? 아타나시우스가 권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누군가 터무니없이 화나게 때마다 주님 안에서 담대함을 얻고 11편을 노래하라.(178) “당신을 대적하고 당신의 영혼을 포위하는 사람들 때문에 기도가 필요할 때에는 시편 17, 86, 88, 141편을 노래하라.(179) “죄를 짓고, 부끄러움 속에 회개하며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간구하기를 원한다면, 고백과 참회로 이루어진 시편 51편을 낭송하라.(182) “심신이 지쳐 위로가 필요하거든, 102편을 낭송하라.(186)

 

하지만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시편의 주제와 장르, 성격을 파악하고 자신의 기도에 활용하라고 하는 것은 외려 부담만 가중될 같습니다. 그런 분이라면 세이비어공동체교회 창립자인 고든 코스비 목사님의 방법이 좋을 듯합니다.(오코너, <그리스도인의 내적 성숙과 세상 속의 교회>, 42~43) 이분은 먼저 전체 시편을 두어 통독하면서 은혜가 되고, 이해가 되고, 자신에게 말하는 시편을 체크합니다. 그랬더니 30~40편이 정해졌고, 시들을 읽으면서 현재 자신의 상황에 가장 부합한 시편을 골라 1주일 내내 묵상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시편 전체를 읽어나가다가 기도를 촉발시키는 시편이 있다면 그곳에 멈추어 서서 시편으로 기도해도 좋습니다. 또한 시편을 가사로 삼은 곡을 노래하는 것도 아주 훌륭한 기도입니다. 어떤 분은 영성 훈련의 방법으로 ‘걸으면서 묵상하기’(peditation) 통해 기도합니다. 아니면 시편을 낭송한 테이프나 CD 듣는 것도 좋습니다. 외에도 각자가 창의적인 방식으로, 각자의 스타일과 기질에 맞게 시편으로 기도하는 법을 모색하면 그것이 최상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방식을 하나 소개한다면 시편 23편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편 중에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암송되는 시편을 두고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내가 지금껏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에 시편 23편의 구절처럼 내게 빛을 주고 위안을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The Lord Is My Shepherd>, 27)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구하고, 자신의 영혼과 고통에서의 구원과 원수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달라는 것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편 속에 우리가 간구해야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이를 능가하는 것이 있다면 주기도문이지요.

시편으로 어떻게 기도하든 우리 마음이 간절하다면, 시편에 내재된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에 우리의 기도를 향상시켜주고, 내용을 풍성하게 해주어서 기도가 익숙해지고, 좋은 습관이 되도록 해줄 것입니다. 더욱이 영성이 깊어지고, 믿음이 강해지고, 마음이 담대해지고, 새로운 안목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시편은 우리의 경험이요 언어요, 심정이요, 간구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이요, 말씀이요, 마음이요, 응답입니다.

                  마지막으로 디트리히 본회퍼가 전하는 루터의 말로 다시금 시편으로 기도할 것을 권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주님은 시편과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가르치시고 기도의 영을 부어주시어, 우리가 진지한 믿음과 기쁨으로 끊임없이 바르게 기도할 있도록 은혜를 주셨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기도를 명령하셨고 우리가 이것을 소유하기 원하신다. 그에게 찬송과 영광과 감사를! 아멘!(루터)(본회퍼, <본회퍼의 시편 이해>,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