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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

들은 꽃을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들은 꽃을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봄이 오면 들은 많은 꽃을 피운다. 그 언덕에 크고 작은 많은 꽃들이 피게 한다. 냉이꽃,꽃다지, 제비꽃, 할미꽃, 노랑민들레가 다투어 피어나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그 꽃들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내어 준다.계절이 바뀌고 새로운 꽃들이 다시 피고 지는 동안 들은 그 꽃들을 마음껏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소유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많은 꽃들로 가득차 있다. 강물은 흘러오는 만큼 흘려 보낸다. 그래서 늘 새롭고 신선할 수 있다. 제 것으로 가두어 두려는 욕심이 앞서면 물은 썩게 된다. 강물은 제 속에 많은 물고기들이 모여 살게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살게 할 뿐 소유하지 않는다. 산도 마찬가지다. 그 그늘로 찾.. 더보기
미워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고통스럽다 미워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고통스럽다 미워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고통스럽다 숲의 나무들이 바람에 몹시 시달리며 흔들리고 있다. 나도 지난 몇 달간 흔들리는 나무들처럼 몸을 가눌 수 없었다. 나무를 흔드는 건 바람이지만 나를 흔드는 건 내 속의 거센 바람이었다. 아니 불길이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분노와 원망과 욕설과 비난의 불길이었고 미움의 모래 바람이었다. 그래서 고통이었다. 미워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몇 배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그 사람이 녹이 슬어 못쓰는 연장처럼 망가지기를 바라는 일이다. 내 미움이 그에게 다가가 그의 몸이 산화되는 쇠처럼 군데군데 벌겋게 부스러지기 시작하여 연모 구실을 못하게 되길 바라는 일이다. 그래서 버림받거나 버려지게 되기를 바라는 일.. 더보기
기도를 배우던 시절 기도를 배우던 시절 적하리의 봄은 포도껍질을 태우는 연기와 함께 왔다. 학교가 논밭 한가운데 덩그라니 있었기 때문에 교문을 벗어나면 바로 포도밭이 있었다. 부지런한 농부들이 겨울을 지내느라 갈라지고 터진 포도나무 껍질을 벗겨내면서 드러난 속 가지의 빛깔은 참 맑았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하셨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가지도 못되고 그저 벗겨져 불에 태워지는 포도나무껍질에 지나지 않았다. 내 안과 밖에는 그렇게 벗겨져 태워버려야 할 허물들이 많았다. 나는 그때 또 그곳으로 쫓겨 와 있었다. 외롭고 지쳤고 힘들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절이었다. 그러나 쓰러지지 않으려고 자신을 가파르게 다스려 갔고, 절망 때문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가난하고 초라했으며, 고통스러운 일들이 끊임없이.. 더보기
민들레 뿌리 민들레 뿌리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때가 되면 햇살 가득 넘치고 빗물 넉넉해 꽃 피고 열매 맺는 일 순탄하기만 한 삶도 많지만 사는 일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아 어느해엔 늦도록 추위가 물러가지 않거나가뭄이 깊어 튼실한 꽃은 커녕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다 눈치빠른 이들은 들판을 떠나고남아 있는 것들도 삶의 반경 절반으로 줄이며떨어져나가는 제 살과 이파리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다 겉보기엔 많이 빈약해지고 초췌하여 지쳐 있는 듯하지만그럴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때곁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를 곧게 곧게 아래로 내린다 꽃 피기 어려운 때일수록 두 배 세 배 깊어져간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 더보기
처음 가는 길 처음 가는 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 더보기
축복 축복 이른 봄에 내 곁에 와 피는봄꽃만 축복이 아니다 내게 오는 건 다 축복이었다고통도 아픔도 축복이었다 뼈저리게 외롭고 가난하던 어린 날도내 발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던스무 살 무렵의 진흙덩이 같던 절망도생각해보니 축복이었다 그 절망 아니었으면 내 뼈가 튼튼하지 않았으리라세상이 내 멱살을 잡고 다리를 걸어길바닥에 팽개치고 어둔 굴 속에 가둔 것도생각해보니 영혼의 담금질이었다 한 시대가 다 참혹하였거늘거인 같은, 바위 같은 편견과 어리석음과 탐욕의방파제에 맞서다 목숨을 잃은 이가 헤아릴 수 없거늘이렇게 작게라도 물결치며 살아 있는 게복 아니고 무엇이랴 육신에 병이 조금 들었다고 어이 불행이라 말하랴내게 오는 건 통증조차도 축복이다죽음도 통곡도 축복으로 바꾸며 오지 않았는가 이 봄 어이 매화꽃만 축복이랴내게.. 더보기
내 안의 시인 내 안의 시인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었다는데그 시인 언제 나를 떠난 것일까 제비꽃만 보아도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어쩔줄 몰라 하며 손끝 살짝살짝 대보던눈빚 여린 시인을 떠나보내고 나는지금습관처럼 어디를 바삐 가고 있는 걸까 맨발을 가만가만 적시는 여울물 소리풀잎 위로 뛰어내리는 빗방울 소리에 끌려토란잎을 머리에 쓰고 달려가던맑은 귀를 가진 시인 잃어버리고오늘 하루 나는 어떤 소리에 묻혀 사는가 바알갛게 물든 감잎 하나를 못 버리고책갈피에 소중하게 끼워두던 고운 사람의롭지 않은 이가 내미는 손은 잡지 않고산과 들 서리에 덮여도 향기를 잃지 않는산국처럼 살던 곧은 시인 몰라라 하고나는 오늘 어떤 이들과 한길을 가고 있는가 내 안에 시인이 사라진다는 건 마지막까지남아있던 최후의 인간이 사라.. 더보기
꽃다지 꽃다지 바람 한 줄기에도 살이 떨리는 이 하늘 아래 오직 나 혼자뿐이라고 내가 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처음 돋는 풀 한 포기보다 소중히 여겨지지 않고 민들레만큼도 화려하지 못하여 나는 흙바람 속에 조용히 내 몸을 접어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을 안 뒤부터는 지나가는 당신의 그림자에 몸을 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했고 건넛산 언덕에 살구꽃들이 당신을 향해 피는 것까지도 즐거워했습니다 내 마음은 이제 열을 지어 보아주지 않는 당신 가까이 왔습니다 당신이 결코 마르지 않는 샘물로 흘러오리라 믿으며 다만 내가 당신의 무엇이 될까만을 생각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당신에게 이름이 없는 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너무도 가까이 계심을 고마워하는 당신으로 인해 피어 있는 꽃입니다 더보기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몹시도 괴로웠다 어깨 위에 별들이 뜨고 그 별이 다 질 때까지 마음이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게만 느껴지는 날에는 내가 그에게 처음 했던 말들을 생각했다 내가 그와 끝까지 함께하리라 마음 먹던 밤 돌아오면서 발걸음마다 심었던 맹세들을 떠올렸다 그날의 내 기도를 들어준 별들과 저녁하늘을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사랑도 다 모르면서 미움을 더 아는 듯이 쏟아버린 내 마음이 어리석어 괴로웠다 더보기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그대 마음의 눈녹지 않는 그늘 한쪽을 나도 함께 아파하며 바라보고 있지만 그대여 우리가 아직도 아픔 속에만 있을 수는 없다 슬픔만을 말하지 말자 돌아서면 혼자 우는 그대 눈물을 우리도 알지만 머나먼 길 홀로 가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눈물로 가는 길 피 흘리며 가야 하는 길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밤도 가고 있는지 그대도 알고 있지 않은가 벗이여 어서 고개를 들자 머리를 흔들고 우리 서로 언 손을 잡고 다시 얼어서 가자 그대여 아직도 절망이라고만 말하지 말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