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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노래 그리고 책/도종환

구원은 매일 오는 게 아니다

구원은 매일 오는 게 아니다


하는 일마다 잘 안 되고 힘이 들 때면 내 인생은 왜 이리 잘 안 풀릴까, 난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운명을 탓하게 된다. 같은 직장 동료이던 선생님은 자주 그런 말을 하곤 했다. 무슨 제도들이 꼭 자기 앞에서 바뀌어 왔다는 것이다. 자기 차례만 되면 입시제도가 바뀌고, 군 복무기간이 늘어나고, 규정이 달라져 지금까지 쌓아놓은 것이 소용없어지고, 승진제도가 바뀌어 불이익을 받고 그랬다는 것이다. 머피의 법칙이 자기를 두고 만들어 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분은 좋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젊은 날을 즐겁게 보냈으며 뜻하지 않은 상도 여러 번 받았다. 자기 친구들만큼 승진하지 못한 불만은 있지만 내가 보기엔 가지고 있는 달란트 만큼은 보상을 받은 것 같다.

 

나도 인생이 잘 안 풀린 사람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탄탄대로를 앞에 두고 있다가 갑자기 벼랑 끝으로 몰린 적이 여러 번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 그 길로 계속 갔었다면 지금 보다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그러나 이런 내 얘기를 들으면 복에 겨운 소리 그만 하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그 말이 맞다. 추락하는 날도 많았지만 은혜 받은 날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놓친 것만 생각하지 손안에 들고 있는 건 생각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살면서 구원의 날은 매일 오는 게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내 전체를 건져 올려주기 때문에 구원인 것이다. 은인은 날마다 만나는 게 아니다. 일생 동안 한두 명 정도 만나는 것이다. 나를 도와줄 사람들이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은인임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놓쳐 버린 사람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신께서 숨어 계신다는 점에 대해서 불평하지 말고 그분이 그토록 여러 번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셨다는 점에 대해서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그렇게도 거룩하신 신을 알기에 합당하지 못한, 오만하고 스스로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그분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다는 점에 대해서 더욱 감사하십시오.”

 

희망의 얼굴도 그럴 것이다. 평상시에는 구름에 가리어 잘 보이질 않을 것이다. 오만하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구태여 모습을 나타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그동안 여러 번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그 희망을 우리가 소중히 가꾸지 않아서 놓쳐 버린 적도 있고,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고 실망해서 소리 없이 몸을 감추어 버린 적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힘차게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절망적인 사람을 찾아 떠났을 수도 있다. 희망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실의와 좌절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때면 희망은 언제고 튼튼한 밧줄이 되어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